투자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은 첫번째 부인인 수잔과 1977년 사실상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수잔은 주식에 미친 버핏이 가정에 좀 더 충실하길 원했다고 최근 출간된 버핏의 자서전은 적고 있다. 그는 수잔과 별거하던 기간에 16살 연하의 아스트리드 멘크스와 살림을 차렸으나 수잔과 법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다. 버핏은 수잔이 암으로 숨질 때까지 법적 부부 상태를 유지했다. 버핏과 멘크스는 수잔이 2004년 암으로 숨진 뒤에야 결혼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리엄 드 쿠닝도 그의 부인이 1989년 죽을 때까지 34년 동안 이혼 수속을 밟지 않은 채 별거했다.

미국 사회에서 이혼 대신 별거를 선택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버핏이나 쿠닝 같은 유명 인사들 만의 얘기는 아니다.

미 버지니아주에 살고있는 존 프로스트와 그의 아내는 25년 차 부부이나 애정이 식은 지 오래다. 두 부부 사이의 결혼 생활은 2000년 프로스트가 테네시주 녹스빌로 파견 발령을 받으면서 사실상 끝이 났다. 혼자 녹스빌로 떠난 프로스트는 이혼을 생각했으나 별거 생활이 지속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부부 모두 별거 생활에 익숙해졌고 함께 살 때 보다 더 잘 지내고 있다”면서 “당분간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보험이나 세금 문제에서도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린 골드 비킨은 “이혼은 하지 않고 서로 친구 처럼 지내면서 각자 생활을 꾸려가는 별거 부부들이 도처에 있다”면서 “그들은 함께 살기를 원치 않을 뿐, 상대방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부부들”이라고 말했다. 이혼 변호사인 실레스트 리버시지는 “이혼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 두고 별거하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런 별거 부부들이 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다.

금융위기 와중에 집 값이 폭락하고 건강보험료 등이 치솟으면서 사이가 멀어진 부부들이 선뜻 이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배우자 일방이 경제적 능력을 갖지 못했을 경우, 이혼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이혼 보다 별거를 선택하는 부부들도 많다고 신문은 전했다.

배우자가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 수혜 연령이 될 때까지 법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지병이 있는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보험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혼 대신 별거를 선택하는 식이다. 연방법에 따르면 부부가 결혼 생활을 10년 동안 유지하면 전 부인이나 전 남편도 배우자의 사회보장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혼 변호사들은 우호적 이혼 소송에서 해당 법정 기간을 채울 때까지 이혼 대신 별거를 하도록 당사자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은 따로 하면서 법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데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뉴욕주 처럼 별거 배우자에게도 재산 상속을 인정하는 주에서는 한 쪽 배우자가 숨진 뒤 재산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별거 중에 한 쪽 배우자가 외국으로 나가거나 실종됐을 때, 이혼 절차를 진행시키기 힘들다는 어려움도 있다. 혹시라도 복권에 당첨되면 별거 중인 상대 배우자와의 공동 재산으로 간주된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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