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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 천사’가 버락 오바마 정부의 공중보건 사령탑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7월 13일 미 앨라배마주 벽촌에서 저소득층 주민을 상대로 의료구호 활동을 해온 흑인 여의사 레지나 벤저민(52·사진)을 공중보건국장(surgeon general)에 지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진행된 지명발표에서 “벤저민 지명자는 가난한 환자에게 병원비를 물리지 않았으며 병원이 수익을 내지 못했을 때 월급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질병 퇴치 전쟁에서는 무자비한 전사였다”고 덧붙였다. 벤저민은 미 상원의 인준을 거쳐 공식 임명된다.
그의 삶에는 성녀의 역정이 녹아 있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벤저민 지명자는 1990년 미 남부 걸프만에 접한 어촌으로 내려가 비영리 보건소를 열었다. 무의촌 봉사를 조건으로 학비를 지원하는 미 연방정부 프로그램이 봉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봉사 기간이 끝난 뒤에도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2500여명의 주민 대부분이 병원에 가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으며, 그 마을에는 의사라고는 벤저민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 의료봉사에 나선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를 찾아온 환자들이 소득과 지위에 관계 없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 출신 이민자를 비롯한 무보험 환자가 몰려들면서 보건소 재정이 악화되자 벤저민은 집을 저당 잡혀 꾼 돈으로 운용 자금을 충당했다. 가난한 주민들은 병원비 대신 굴이나 고기 등을 놓고 가기도 했다.
보건소가 화재로 전소되거나 태풍으로 반파되는 시련도 닥쳤다. 그럴 때마다 벤저민은 팔을 걷어붙인 채 병원 재건에 나섰고 주민들은 힘을 보탰다. 그가 픽업 트럭을 몰고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진료 활동을 벌이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나 목격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존 앤드 캐서린 맥아더 재단’은 지난해 벤저민의 의료구호 활동을 돕기 위해 50만달러를 지원했다.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벤저민을 ‘미국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벤저민은 포기를 몰랐고, 그의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고 경의를 표했다.
벤저민이 주인공이 된 이날 행사에 그의 가족은 참석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어머니는 폐암으로 숨졌으며 하나뿐인 오빠 또한 에이즈로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가족의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의 건강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수천만명이 무보험 상태에 놓인 미국 의료보험 체계를 개탄하며 “의료보험 체계를 개편하면서 그 누구도 갈라진 틈 사이로 추락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 가난한 이웃들의 상처를 치유했던 벤저민은 미국을 바꾸기 위한 도전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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