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공원 디즈니 랜드로 유명한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동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대서양 파도가 넘실거리는 Space Coast와 만나게 됩니다.
해변 이름 그대로 이 곳에
우주를 향한 미국인의 도전 정신이 응축된
Kennedy Space Center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NASA(미 항공우주국)의 로켓 발사 센터였던 이 곳은
케네디 대통령이 63년 암살된 이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60년대가 저물기 전에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遺志는
69년 7월16일 실현됐습니다.
케네디 센터의 로켓 발사대(Launch Pads 39A)를 떠난 아폴로11호가 나흘 뒤 Neil Armstrong과 Buzz Aldrin을 달에 내려 놓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케네디 센터를 찾았습니다.
관광객 대부분은 자녀들을 동반한 부모들이더군요.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의 눈빛 속에
과학 선진국의 미래가 투영돼 있는 듯 했습니다.
67년 케네디 센터 일반 관람객을 위해
비지팅 센터가 문을 연 이래
매년 83만여명이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우주 탐험대의 도전과 성취, 희생의 궤적을 좇다보면
어른인 저도 벅찬 감동에 몸이 떨리는 순간이 있었는데
눈 맑은 어린이, 가슴이 뜨거운 청소년들의 감동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60년대라면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었을 시절인데
어떻게 미 정부는 일반 국민들에게
이처럼 중요한 시설을 공개할 생각을 다 했을까요?
남북 대치 상황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던 시절,
사방에 도배된 '민간인 출입 금지' 표지판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주 개발 초창기 역사를 장식한 로켓들이 전시된
로켓 가든이 맨 먼저 눈에띕니다.
투어에 참가하면 버스를 타고
실제 로켓이 조립되고 있는 건물과 발사대 등이 있는
제한 구역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버스는 한쪽 벽면에 NASA 로고가
미국 국기와 함께 선명한 빌딩을 끼고 한 바퀴 돕니다.
가이드를 겸하고 있는 운전 기사는 이 로고를
98년 NASA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그려 넣었다고 설명하더군요.
운전 기사는 환갑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였습니다.
일하는 노인들은 여행 기간 내내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고속도로 상의 관광 안내소나 국립공원 매표소 등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개가 노인이었습니다.
그 연세에 모두가 용돈을 벌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대부분이 자원 봉사라고 답변했습니다.
NASA 로고가 새겨진 빌딩이 바로
우주 왕복선이 조립돼 발사대로 옮겨지는
Vehicle Assembly Building입니다.
우주왕복선 발사가 있는 날마다 TV카메라가 부각시키는 이 빌딩은
이제 케네디 센터의 상징이라 할 만하지요.
당초 로켓 저장 창고로 지어진 이 빌딩은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창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우주왕복선이 착륙하는 활주로는
길이가 4572m에 이릅니다.
활주로 옆 수로는 인근 습지에 서식하는 악어들이
일광욕하는 단골 장소이니 잘 찾아 보라고,
가이드는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조립된 우주 왕복선은
축구장 절반쯤 되는 크기에
무게가 3000톤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큰 우주 왕복선을
조립 빌딩에서 어떻게 발사대까지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가이드는 저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 목적만을 위해 특수 수송차를 만들었는데
속도는 시속 1마일 정도지만
언덕을 오를 때는 평형을 유지하는 등의
첨단 장치가 내장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어 버스는 발사대와 로켓 모형(달 탐험 로켓으론 처음으로
우주인을 태우고 발사된 Saturn V)이 전시된 Apolle/Saturn V 센터 두 곳에서
승객을 풀어 놓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발사대는
우주 왕복선을 지탱하는 단순한 철골 구조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주 왕복선 발사 직전 무려 30만 갤런의 물이 채워진다는
발사대 물탱크 하나만 놓고 봐도,
이 물의 용도가 발사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소리 에너지를
흡수토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고 하니
사람은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Apollo/Saturn V센터에는 볼 거리가 풍성합니다.
이 곳을 찾은 이들은 미국이,
57년 10월 사상 처음인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 이후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희생을 치러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켓 발사 장면을 당시의 발사 관제실을 재현한 방에서
생생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실제와 똑같이 이뤄져 박진감을 더합니다.
<달 탐험 로켓 발사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The Firing Room Theater>
무려 40만명이 넘는 과학자와 공학자, 기술자들이
우주선을 만들고 발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달 표면을 걸어 본 12명을 포함해 소수만이 우주 여행을 떠날 수 있답니다.
Apollo/Saturn V 센터는
소수를 위해 땀을 쏟은 수많은 이들을 위해 바쳐진 전당입니다.
압권은 실제 크기 그대로 전시된 Saturn V 로켓입니다.
<내 디카로는 로켓 전체를 담을 수 없어 밑부분만>
딸 아이는 달에서 가져왔다는 돌(?)이 신기한 지 손을 대봅니다.
60억 인류 중에 대기권의 두터운 벽을 뚫고
우주로 날아간 행운아들은 500명 미만이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주비행사들이 찍어온 우주의 모습을
5층 건물 높이의 스크린을 통해 입체 영상으로 즐길 수 있는 IMAX 영화관은
필수 관람 코스이겠지요.
우리는 관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
검은색의 커다란 화강암 추모비를 발견했습니다.
추모비 위엔 S.Christa McAuliffe, Michael J.Smith, Ronald E.McNair 등
20명 가까운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모두 우주 비행이나 훈련 도중 목숨을 읽은 우주 비행사들입니다.
매컬리프,
86년 1월 발사 직후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처호 승무원입니다.
고등학교 교사이자 최초로 일반 국민 중에 선발된 여성 우주인.
당시 대학생이던 저는 TV를 통해 환하게 웃던 그녀의 사진들을 바라보다가
학생들에게 우주의 신비를 전하고 싶어했다는 그녀의 너무도 소박한 소망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화강암 구조물은 'Space Mirror'로 부릅니다.
화강암 표면이 거울입니다.
정확한 과학적 원리는 알 도리가 없지만
화강암 거울에 비친 하얀 구름 속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둥둥 떠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그토록 동경했던 우주 속에서
안식처를 찾은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팸플릿을 읽어보니 이 추모비는 정부가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86년 첼린저호 참사 직후
중부 플로리다 지역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우주 비행사 추모 재단'이 건립한 것더군요.
그렇다고 추모 재단의 운영과 이 재단에 부속된 우주 교육센터가
몇 몇 기업인의 자금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첼린저호 승무원을 기리는 자동차 번호판을 구입한 플로리다 주민 모두가,
미 전역에서 추모비를 방문한 수 천 만명의 미국민 모두가
운영의 주체였습니다.
넓은 땅 덩어리와 풍부한 자원,
과학 기술만이 미국을 강한 나라로 만드는 요인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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