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부시 대통령이 애용하는 유머가 하나 있습니다.

올 초에도 몬태나 주 방문 때 꺼내들었는데

부시 혼자만 웃고 끝나는 바람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는군요.

바로 이 유머인데요,

한 도시내기가 서부의 한 시골을 방문했는데

도통 방향을 종잡을 수 없어 시골 사람에게 길을 묻습니다.

시골 사람이 대답하길,

곧장 가다가 Cattle guard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돌아가슈

Cattle guard는 소나 말을 가둬두는 목축용 기구입니다.


그랬더니 도시내기가 다시 묻더랍니다.

Cattle guard가 무슨 색 옷을 입고 있습니까?

이 걸로 끝입니다.

정말 썰렁하죠?

 그런데 이 유머와 부시와의 인연이 재밌습니다.

1978년 부시 나이 31살 때입니다.

부시가 하버드 대학 MBA 졸업하고 텍사스로 돌아와서

에너지 관련 사업을 벌이던 도중

텍사스주 의회 의원 선거에 공화당 공천을 받아 입후보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 켄트 핸스 후보가 유세장에서 이런 유머를 하고 다닙니다.


부시 후보가 코테티컷주 번호판이 달린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타고

자기네 목장을 찾아가다 길을 잃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부시 후보에게

Cattle guard가 보이면 우회전하라고 일러줍니다.

그랬더니 부시 후보가 뭐랬는 줄 아십니까.

 그런데 Cattle guard가 무슨 색 옷을 입고 있지요?’”


 부시 후보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출신에

대학도 뉴헤이븐의 예일대를 다닌 동부 사람이라는 점을

은근히 부각시킨 전략이었습니다.

부시는 낙선했습니다.

당시의 부시는 자신이 조롱거리가 된 이 유머를

무척 싫어했을겁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이 유머를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보면,

부시는 텍사스 카우보이들의 유머를 잊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부시의 텍사스 사랑은 각별합니다
.

대통령 취임식 전날인 지난 1 19일 밤,

TV를 통해 워싱턴 시내 곳곳에서 개최된 축하 무도회를 지켜봤는데

부시는 텍사스 후원자들이 모여있는

Black tie & boots Hall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더군요.

아마 그 곳이 부시가 가장 말을 많이하고

가장 오래 머문 무도회가 아닌가 싶네요.

부시가 그날 밤,

 샘 휴스턴의 고향인 텍사스의 재선 주지사가 이제 재선 대통령이 됐다는 체니 부통령의 소개로 연단에 선 후,

나는 내 고향을 잊을 수 없다. 4년 동안 봉사한 뒤 텍사스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던 모습이 제게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텍사스 자랑을 하지 않으면

텍사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긴 자랑할 게 많기는 합니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벌판이면 벌판,

다양한 인종 구성 만큼이나 다채로운 자연 경관,

2000만 명이 넘는 인구에 미 연방에서 두 번째로 넓은 주,

석유를 비롯한 풍부한 자원

솔직히 뻐길 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텍사스 사람들은 오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마치 고개를 한껏 쳐든 채 서 있는 부시의 모습처럼.
그리고 독립심이 무척 강합니다.

텍사스는 1845년 미 연방의 28번 째 주로 편입됐는데

텍사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 기질이어서

Lone star로 불렀다는군요.

부시의 기질이 바탕하고 있는 텍사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곳이며 사람인지

한 번 가봤습니다.

 

도로 표지판이 없더라도

건조한 풍경만으로도 텍사스 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칠다는 표현은 텍사스를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는 듯한 태양과 메마른 대지, 거센 바람.

이런 풍토 속에서도 텍사스 들판에 흔전 만전인 수레 국화와


 
인디언 페인트브러시는



텍사스의 메마른 풍경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듯 합니다.
텍사스의 전갈과 독거미, 방울뱀 등은

적자 생존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입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타바스코 소스와

독주 데킬라도 멕시코와의 문화 접변이 빚어낸 텍사스적 요소.

카우보이도 빼놓을 수 없죠.
요즘은 챙 넒은 모자에 네커치프를 목에 두르고 랭글러 진이나 가죽 바지,
그리고  부츠와
拍車로 무장한 전통적 카우보이는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현대판 카우보이들은 힘 좋은 미제 픽업 트럭을 타고 먼지 바람을 날리며

질주합니다.

벌판 곳곳에 서 있는 시추기는 20세기 초반 석유가 발견되면서
하루 아침에 벼락 부자가 된 이들의 신화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은

텍사스의 첫 미국인 식민자, 스테판 오스틴의 이름을 딴 도시입니다.

도시의 스카이 라인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이전 모습과 달라졌지만

1888년 지어진 주 의사당(워싱턴 국회 의사당을 본떴다는군요)



 텍사스 주립대학의 시계탑은 의연합니다
.


 


                                                     <왼쪽은 저의 신문사 후배로 외교부를 같이 출입한 김치욱씨. 현재
                                                       텍사스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화이팅!!!>
 

 오스틴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아파치와 코만치 인디언의 터전이었던 샌 안토니오입니다.

백인 식민자들에 의해 인디언이 쫓겨난 후론

미국 식민자들과 멕시코의 각축장이 된 곳입니다.

1836 3 6,

샌 안토니오의 알라모 요새에서

189명의 텍사스 방어 부대가 산타 안나 휘하의

멕시코군 4000여명에 끝까지 항전하다 전원 몰살당합니다.



 그로부터
6주일 후,

샘 휴스턴이 이끈 텍사스군은 Remember the Alamo!를 외치며

산타 안나의 멕시코군을 불과 18분 만에 격퇴시키는데

역사상 유명한 이 전투가 텍사스 독립의 전기가 됩니다.

마르궤즈 제임스가 쓴 ! 알라모라는 소설에

당시 알라모 전투를 지휘한 트레비스의 편지가 소개돼 있습니다.


텍사스 및 전 미국 국민에게.

본인은 산타 안나의 지휘 아래 있는 천 명 이상의 멕시코군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적은 본인에게 항복을 요구했고 만일 항복하지 않을 때엔 요새의 점령과 함께 본인 등은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본인은 그 요구에 포탄 한 발로 응수했습니다. 본인은 항복하거나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의 국기(텍사스 국기)


 요새 위에서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습니다. 본인은 지원 요구가 묵살된다 하더라도 국가와 명예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군인답게 죽을 것입니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알라모 전투는



 자신들의 땅(물론 인디언에게서 강탈한 것이지만)
자유(역시 인디언들의 자유를 속박한 대가로 얻은 것이지만)를

지키기 위한 텍사스인들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189 4000이면

이길 승산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인데도

텍사스인들은 일부의 작전상 후퇴 권유도 마다하고

등을 보이기 보다는 꼿꼿이 서서 죽는 길을 선택합니다.
멕시코군의 총 공격이 임박하자
트레비스는 칼을 뽑아 땅바닥 위에 선을 그어놓고
끝까지 알라모를 사수하길 원하는 자는 그 선을 넘게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트레비스의 뒤를 따랐다고 전해집니다.

어리석을 만큼 고집스런 기질입니다.
초기 텍사스인들의 이런 기질이 부시의 혈관에도
흐르고 있는 느낌입니다.
 

 오스틴과 달라스 사이에 위치한

부시가의 크로포트 목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가 됐지요.




 오는
6월 한미 정상회담이 '서부의 백악관'으로 부르는
크로포드 목장에서 열릴 가능성이 거론되더군요
.

부시 대통령은 우선 순위가 높은 정상들만을

크로포드로 초청했습니다.
한미 크로포드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그 의미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 목장을 가보지 못했는데
김치욱 후배가 갔다와서 전하는 말이,
경비가 삼엄해서 접근 불가라고 하는군요.
차 타고 가면서 크로포트 목장의 지붕 정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소 몰이꾼과 총잡이들의 땅이었던 텍사스가
부시 가문 덕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역사적 현장이 됐습니다.
유일 초강대국의 최고 통치권자인 부시의 텍사스 기질 또한
세계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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