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 경험해 보셨습니까?
처음인데도 언젠가 왔던 곳 같은 착각.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교회가 나오고 교회 옆에 조그만 공터가 있었지,
하고 생각하면서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그 생각 그대로 공터가 나왔을 때의 전율감.
이런 초자연적인 느낌을 기시감(旣視感, deja vu)이라고 한다지요?
뉴 멕시코주의 산타 페는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한 때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황토를 물에 이겨 만든 어도비 벽돌로 집을 짓고 살았던 곳.
<어도비 벽돌로 벽을 쌓은 집>
그로부터 1000년도 넘게 흐른 1607년.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수 세기 전에 버리고 떠난 이 곳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해 이전 거주자들의 방식대로 집을 짓고
북미 대륙 개척의 교두보로 삼습니다.
산타 페는 외양부터가 고풍스럽습니다.
20세기에 지어진 것이 분명한 주차장이나 상점들이
좀 과장하면 수 백 년은 족히 된 듯 하구요.
명색이 뉴 멕시코주 주도이자 관광지인데
개발 붐이 왜 일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주변 환경과의 조화 속에 개발이 이뤄진 것은
유독 뉴 멕시코주 개발업자들의 안목이 높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의식있는 주 의회 의원들이 수 십 년 전
신축 건물의 외관을 철저히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한 덕분입니다.
뉴 멕시코주 의사당 또한
미국의 다른 주 의회 의사당들이 워싱턴 의사당을 본 따
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환경 친화적인
어도비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뉴 멕시코 주 의회 의사당>
의사당은 푸에블로 인디안의 Zia(태양) 상징을 형상화했다고 하더군요.
뉴 멕시코주 州旗에도 들어가 있는 이 상징을 보면
태양을 중심으로 4방향으로 에너지가 방사되는 모습입니다.
푸에블로 원주민들은 숫자 4를 만물의 근본 수로 인식했다고 하더군요.
주역이나 태극기의 4괘와 일맥 상통하는 대목입니다.
수 천 년의 세월과 수 만 마일의 공간을 초월한 인식의 공유이고 보면,
진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17세 초반 스페인의 영토가 된 후
스페인령 뉴 멕시코 왕국의 수도가 된 산타 페는
리오 그란데 강 이북 지역 공략을 위한 스페인의 거점 도시가 됩니다.
‘한 손엔 총, 다른 한 손엔 성경’
유럽인의 이같은 식민 원칙은
산타 페에도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1610년 지어진 샌 미구엘 전도소는
스페인 통치 권력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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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소 내부>
원주민 전도에 나선 예수회 신부들은
1617년 1만 4000명의 영혼을 구제했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혼신의 열성을 보였으나
1680년 원주민 반란 당시 전도소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하니
전도가 신사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든 어도비 벽돌만은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됐습니다.
전도소 안에는 1356년 스페인에서 주조된 종이 전시돼 있는데
19세기 초반 이 곳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스페인과 멕시코에서 사용됐다고 하니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 역사를 줄곧 지겨본 산 증인이라 할 만 합니다.
아시시 성당은 산타 페에서,
푸에블로-스페인 양식으로 건축되지 않은
몇 안되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아시시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푸에블로 건물들의 부드러운 곡선과 산뜻한 대조를 이룹니다.
아시시 성당 옆에 있는로레토 채플은 '기적의 계단'으로 유명합니다.
360도 회전하면서 올라가는 이 계단에선
그 어떤 버팀목도 발견할 수 없어
어떻게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는지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으레 종교적 일화가 그렇듯,
교회측이 계단 설치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름 없는 목수가 찾아와선 톱과 망치, T자형 자, 나무 못만 가지고
이 계단을 만든 뒤 홀연히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갤러리와 원주민 공예품 상점이 즐비하지만
웬만하면 천 달러 이상를 호가하는 만큼 눈요기로 만족해야 합니다.
거리 곳 곳에 작품들이 널려 있는 산타 페는
수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모여드는 곳입니다.
근무지인 산타 페에서 ‘벤허’를 출판한 류 월리스를 비롯해
시인 에즈라 파운드, 여류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 등이 산타 페를 찾았고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도 10년 넘게 산타 페에서 여름을
보냈다고 하는군요.
황토로 빚은 벽돌에
미국 남서부 특유의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입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황토색이 떠오릅니다.
노란 물감과 빨간 물감을 절반씩 섞으면 나올 것 같은 색깔.
무능하고 썩어 문드러진 李朝를 엎어뜨리기 위해
동학군이 집결했던 황토현 주변은
산타 페의 풍경을 지배하던 황토색 천지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단골 소풍 장소였던 황토현 가는 길이,
파란 하늘 아래 황토빛 내장을 드러낸 밭떼기들의 잔상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립니다.
어도비 건물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고 하니
황토 반죽에 볏 짚 섞어 집 벽을 하는
한국의 초가집과 유사합니다.
메마른 벌판 가운데 들어 앉은 건조한 도시,
<텍사스 주 엘 파소와 산타 페를 잇는 지선 도로>
곳곳에 정겨운 빨간 고추가 걸려있는 도시,
마치 전생을 보낸 듯한 낯 익은 도시,
산타 페의 하늘 아래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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