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모두가 반신반의할 때 장성택 처형을 예견했다.
“통일교육원장 시절이던 지난해 통일부 연두업무보고 당시 대통령에게 ‘김정은 체제의 감시체계 사각지대가 친인척이다. 앞으로 김정은 친인척 가운데 분란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했다. 지금 (장성택 숙청) 상황이 당시 예견했던 그대로다. 북한 체제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은 친인척에게만 있다. 군부든 경찰이든 주민이든 다른 부문은 거미줄 같은 감시망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장성택 실각 소식을 들었을 때 처형될 거란 감이 들었다.”
―장성택은 김정은의 고모부란 점에서 그의 처형은 충격적이었다.
“김정은 체제가 완성되려면 김정일 시대에 분배된 권력을 거둬들여서 이를 김정은 이름으로 재분배해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 체제가 명실상부해진다. 당 대표자 회의를 열고 당 정치국 회의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걸 통해서 정치국 위원도 시키고 후보 위원도 시키면서 권력을 재분배한다. 권력을 거둬들일 때 리영호 군 총참모장처럼 친인척이 아닌 인사들은 쉽다. 그런데 친인척의 권력은 거둬들이는 게 만만치 않다. 장성택만 해도 당 행정부장도 하고 국가체육지도위원장도 했는데 그가 가진 권력은 김정일이 직접 준 것이다. 김정일의 친필지시가 있고 구두지시가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 유훈통치를 받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장성택이 ‘이거 아버지가 이렇게 하라고 한 거야’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성택을 사형까지 시킨 것은 대다수 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한마디로 불경죄에 걸린 것이다. 기득권 재분배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가동시켜야 하는데 장성택만 권력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이는 김정은의 위상에 치명적이다. 김정은은 자기 권력을 위해서 장성택을 쳐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는 김씨 집안의 어른 격이다. 장성택의 사형만은 막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김경희가 장성택의 사형을 반대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내세우면 된다. 하나는 여자, 다른 하나는 반당·반혁명 혐의다. 반당·반혁명 혐의는 김경희의 아버지(김일성)와 오빠(김정일) 때부터 내려온 위업을 말살하는 죄목이다. 이런 죄명을 만들어서 김경희에게 알리면 김경희도 어쩔 수 없다. 친척을 치면 천륜을 어기는 꼴이 되니까 이혼부터 시켜놓고 쳤을 것이다.”
―군부 등 어떤 세력에 의해 김정은이 끌려갔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이 주도했다. 김정은 세력이 권력층 내부에 존재하지만 김정은을 끌고가는 세력은 아니다. 김정은에게 과잉충성하는 세력이다. 충성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사건이 극대화하고 폭주가 이뤄진다. 김정은은 그런 세력을 활용할 뿐이다.”
―장성택 판결문엔 자기 세력을 구축해서 ‘쿠데타’를 기도한 것으로 돼 있다.
“당 행정부 내에 자기사람 심어놓고 ‘소왕국’으로 만들어놨다고 했는데 그런 권력을 김정일이 줬다. 북한 체제를 지키기 위해, 특히 어려운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일이 부여한 권력이다. 장성택은 이 기득권을 가지고 당이 자금 필요하면 자금 대고 물자 필요하면 물자 대고 사람 필요하면 사람 공급했다.”
―장성택이 사라지면 김정은 체제의 버팀목 하나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북한 체제는 장성택에 의해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 나름대로 독재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다. 상호감시하고 처벌하고 우상화하는 체계가 있다. 그 체계를 김정은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만들어 놨다. 그 안에 장성택의 작은 권력이 있는 것이다. 장성택이 있든 없든 북한 체제는 굴러간다. 장성택은 2인자나 후견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조력자라는 호칭이 더 적합하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장성택의 영향력이 김정일 시대에 비해 커진 것은 사실 아닌가.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쓰러졌다 회복된 후 친척 외에는 믿지 못하는 심리가 더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둘러보니 피붙이라곤 김경희 하나밖에 없고, 그래서 김경희 남편인 장성택을 활용했다고 봐야 한다. 제 부친이 건설장관 할 때 장성택과 같이 일해서 상황을 잘 안다.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기득권을 주면서도 항상 그를 감시했다. 보이지 않는 감시망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김정일이 쓰러지고 난 뒤에 그 감시시스템이 대단히 느슨해졌다.”
―장성택 숙청 과정에서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이나 이복 누나인 김설송이 도왔다는 분석도 있다.
“장성택이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을 옹립하려했다는 보도도 봤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상적인 나라에서나 가능한 상상이다. 거긴 그렇지 않다. 김정은에게도 이복 형제들이 있지만 이복은 절대 권력 가까이 두지 않는다. ‘곁가지’라고 해서 무조건 친다. 단지 칠 때 죽이지는 않는다. 패륜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그렇지 힘이 없어서 죽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현실에서 김정은이 장성택 치는 데 이복들을 활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친형인 김정철도 마찬가지다.”
―장성택 숙청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나.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북한의 역사가 있다. 여러 충격적 사건으로 점철돼 있다. 그런 사건과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역사를 여기서 한 번쯤은 크게 정리해야 한다. 첫째, 북한 정권은 김씨 왕조 세습체계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비민주적 독재국가라는 사실이다. 무늬만 공화국이지 오직 ‘백두혈통’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김씨 왕조국가다. 두 번째, 북한 정권은 지금 체제를 천년 만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독재적, 비민주적, 비인권적 체제는 국제사회와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이로 인한 체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핵과 미사일, 정치 수용소 같은 비정상적 수단들을 활용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김정은 정권에 맞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과거 이런 정권들을 상대로 역사가 어떻게 해왔느냐를 돌아봐야 한다. 세계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저촉되는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싸워왔다. 평화적 수단을 쓰더라도 파시스트 정권이 강화되는 쪽으로 평화적 관리가 되면 안 된다. 평화적 수단들은 파시스트 정권이 강화되는 쪽으로 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총포 소리가 안 나서 평화적으로 보이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평화 공세 속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더 늘고 미사일 사거리는 늘어날 것이다. 그건 평화적 관리가 아니다. 미래의 평화를 지금 갖다 쓰는 것이고 미래의 더 큰 불행을 후대에 넘기는 것이다. 교류든 대화든 협력이든 원칙을 지키면서 북한이 변화하는 쪽으로 해나가야 한다.”
―북한이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면 김정은 체제는 생존력이 강하다는 얘기인가.
“시스템은 공고할지 몰라도 사회 기반은 튼튼하지 못하다. 그 둘을 분리해야 된다. 시스템은 관리자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관리받는 주민, 사회 기반은 대단히 취약하다. 북한 주민은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표출 못하고 배고파도 참고 억눌려도 참는다. 이런 기반은 대단히 취약하다. 이제 우리의 대북 정책은 북측의 상부구조가 아닌 북한 주민을 향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깨어나게 하고 그들의 굶주림을 해소시켜야 한다. 북한 주민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폭압 정권을 제지해야겠다는 각성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사진=남제현 기자
▲1959년 평양 출생 ▲1983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1992년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 상급교원(교수) ▲1994년 귀순 ▲2009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소장 ▲2011년 통일교육원 원장 ▲2012년 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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