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박모(35)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금수저’로 통한다. 2018년 결혼한 박씨는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를 매입해 신혼살림을 차렸다. 살 때만 해도 7억원대였던 박씨의 아파트는 현재 14∼15억원을 오가고 있다. 집값이 3년 만에 두 배 오른 셈이다. 박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모님이 아파트를 사주셨다.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조금 갉아먹은 셈이지만, 부모님 덕분에 출발선이 다른 이들보다 좀 앞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고 말했다.

맞벌이를 하는 박씨 부부는 월 급여의 70%를 저축과 주식·펀드 등 금융투자에 쓰고 있다. 신혼부부의 가장 큰 부담이 신혼집 마련 관련 대출금 상환인데, 박씨 부부는 이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재산을 불려가고 있다. 박씨는 “딸이 갓 돌을 지났다.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강남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지금 사는 집 가격이 더 오르고, 저축과 투자가 잘 풀리면 얼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 직장인 전모(38)씨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김포로 이사했다. 2017년 결혼한 전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처음 시작을 경기도에서 하면 절대 서울로 다시 올 수 없다’는 조언을 듣고 서울 마포구에 신혼집을 얻어 이사 전까지 살고 있었다.

결혼 당시 양가 부모들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전씨 부부는 모은 돈과 은행 대출을 최대한 받았지만, 서울 도심에 전세를 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씨는 “아내의 직장은 여의도, 내 직장은 광화문 근처라 마포구가 동선상도 그렇고, 가격적으로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그에 따라 전셋값도 덩달아 크게 오르면서 4년간 살았던 신혼집을 포기해야 했고, 주변 동네로는 이사도 쉽지 않았다.

전씨는 “서울을 벗어나지 말자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아내의 출퇴근이 최대한 용이하면서도 광화문행 광역버스가 갖춰져 있는 김포로 이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사를 하며 ‘다시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 서울에 나와 아내 명의의 집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고 털어놨다.

대한민국에서 집값이 문제가 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최근에는 아예 “집 사기를 포기했다”며 낙담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집이 있어도 다 같은 집이 아니다. 지방과 서울, 서울 중에서도 강남 등 특정 지역과 다른 지역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 빈부 격차를 벌리며, 계층 간 사다리를 끊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3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 소득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은 모두 개선됐다. 그런데 이 같은 수치는 실제 국민들이 체감하는 빈부 격차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계란과 채소 가격 등이 치솟았음에도 변함없는 소비자물가지수가 국민의 장바구니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조사, 다른 통계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포착된다. 지난해 3월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 보유 기준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481만원으로 하위 20%인 1분위 가구(675만원)보다 11억1000만원 이상 많았다.

5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을 1분위 가구의 평균 순자산으로 나눈 값인 ‘순자산 5분위 배율’은 무려 166.64다. 이 수치가 클수록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인데, 2019년 125.6보다 격차가 더 커졌다. 이 배율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는 99.65으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니계수가 2018년 0.345에서 2019년에는 0.339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내세운다. 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는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인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 수록 불평등, 0에 가까울 수록 평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가 개선됐다고 밝힌 이 지니계수는 시장소득에서 공적이전소득, 즉 정부 지원금은 더하고 세금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순자산만을 따진 지니계수는 0.602로 오히려 전년이 비해 0.005 증가했다.

각종 소득분배지표가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 지원 영향이 크다. 지난해 1분위 가구 소득 중 42.8%가 정부 지원(공적이전소득)에서 나왔다.

국내 가계 자산 대부분은 부동산이 차지하는데, 정부 보조에 크게 의존하는 저소득층이 집을 사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책을 강조했지만, 집값 잡기에 실패하면서 자산 격차를 키운 꼴이다.

 

집값 폭등은 심지어 집을 가진 사람들 간의 격차도 벌리고 있다. ‘똘똘한 강남 아파트 한 채’와 ‘서울의 저가 빌라 또는 외곽 아파트’의 매매가 차이는 많게는 수십억원이다.

이런 부동산 시장 상황은 주택 보유 여부는 물론, 사는 지역, 주택 브랜드 등을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고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학우를 ‘엘거’(LH 임대주택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라고 칭하며 조롱하는 일이 벌어지고, 임대주택 거주민이 민영 주택 지역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는 현실은 주택으로 계급화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엄형준·남정훈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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