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6일
“자본시장법과 단기금융업 인가는 상충됩니다. 규제가 언발란스(불균형)하다는 것이죠. 기업 신용공여 한도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2018년 1월24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 자리에서 “막힌 자금의 물꼬가 트이도록 하는 통로가 증권사 아닙니까, 가급적이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뀌지 않으면 창의성이 살아날 수가 없다”며 “금융은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5개 초대형 투자은행(IB)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단기어음 발행업무를 인가받은 한투증권은 이 분야 선발주자다. 선발주자는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후발주자들의 본보기가 돼야한다는 부담이 있다. 증권업계 최장수(12년) 최고경영자(CEO)로 활약중인 유 사장을 만나 한국 증권업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지난해 실적이 좋은 것으로 안다.
“가결산으로는 역대 최대인 것 같다. 과거 호황기였던 2006~2007년을 뛰어 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관리영업 수익이 처음으로 주식중개 수익을 초과했다. 주식중개 수수료 수입 비중이 4분의 1이나 될까. 이는 ‘리테일 패러다임 변화’의 의미있는 첫 걸음이다. 투자은행(IB)쪽이 많이 성장했다. 여러 분야가 골고루 잘했다고 평가한다. 목표치의 120%를 달성했다. ROE(자기자본이익률)는 지난해 3분기말 기준 12.3%로 국내 대형사 중 압도적 1위다. 이는 우리가 잘 아는 글로벌IB의 ROE가 최근 10%가 채 안되는 수준인 것과 비교해도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국내 5대 초대형 투자은행(IB) 가운데 유일하게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고 증권업계 첫 영업을 시작했고 지난 12월 인도네시아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아시아 최고 투자은행을 위한 교두보도 마련했다.”
―국내 5대 초대형 투자은행(IB) 가운데 발행어음 업무 선두주자다. 주시하는 눈길이 많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공익적 내지는 인가를 내준 당국의 측면이다. 인가를 내준 취지가 기존의 제1금융권에서 금융 혜택을 못보던 곳에 자금지원을 해서 경제가 돌아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의 50% 이상은 기업신용에 사용하라고 한다. 이를 처음부터 곧바로 할 수는 없을 테니 1년반의 유예기간을 뒀다. 우리는 처음부터 유예기간 없이 기준을 맞추자고 했다. 발행어음은 지난해 1조 약간 덜되게 발행했다.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신용이 우리보다 좋거나 은행과 거래할 수 있다. 증권사는 자금 조달비용이 높기 때문에 은행과 거래하는 기업은 우리에게 찾아올 이유가 없다. 일부 대기업(은행이 거래를 안해주지만 괜찮은 대기업)도 있긴 하지만 주로 중소·중견기업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의 시선이다. 발행어음 그거 잘 팔리겠느냐, 돈이 되겠느냐하는 이야기들이다.작년에 발행어음 판매시작하자 하루 하고 한 시간 만에 완판됐다. 지금은 속도조절하면서 팔고 있다. 발행어음 업무는 큰 돈 버는 비즈니스는 아니다. 하지만 이윤은 나는 비즈니스다. 단지 발행어음 팔아서 금리차 먹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와 거래한 중소·중견기업 등 IB저변을 넓히는 과정이다. 우리는 길게 봐서 굉장히 긍정적으로 본다.”
―증권사가 발행어음 조달 자금 운용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크게 두가지를 우려하는 것 같다. 제대로 쓸 거냐, 둘째는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과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IMF 외환위기야 종금사 등 일부 금융기관이 외채를 잘 못 끌어쓴 것이지 증권사 때문이 아니다. 스타트업 등 벤처투자를 많이 할 수는 없다. 그럴 대상도 많지 않고 그렇게만 포트폴리오를 짤 수 없다. 중소·중견기업인데도 은행이 거래를 안해주는 곳이 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런 기업들은 자금난으로 문 닫아야 하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도와줌으로써 그런 기업이 커간다면 정책 취지에도 맞는 것이죠. 그런 기업들하고 우리가 할 것이기 때문에 은행하고 경쟁하는 시장이 아니다. 은행권 기업 대출이 450조에서 500조에 이르는데, 우리 발행어음이라고 해 봐야 총 8조원, 기업금융에 써 봐야 4조∼5조원이다. 5개 초대형사가 모두 인가를 받았다해도 기업신용에 쓸 수 있는 돈은 20∼25조원 정도다. 증권사가 기업신용에 쓸 수 있는 돈은 은행권에서 나간 신용의 4%도 안되는데, 뭘 걱정하느냐. 그리고 리스크 관리는 우리 나름대로 충분한 리스크 관리 능력이 있으니까 우리 걱정 말고 자신의 영역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 증권사의 기업 신용한도를 확대(증권사 자기자본 100%→200%)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다.
“국회에서 빨리 통과돼야 한다. 발행어음 통해 자본금 200%까지 자금조달을 할수 있고 그 중 자본금의 100%를 기업금융에 써야 하는데, 지금 자본시장법은 기업신용공여 한도를 자본금의 100%로 막아놨다.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자금이 부족한 기업을 지원할 여지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해주고 싶어도 못해준다. 자본시장법하고 단기금융업 인가하고 상충된다. 규제가 언발란스다. 채권형태로 투자하면 기업신용이 안 잡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절름발이다.”
―초대형 IB로 가기 위해 갖춰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규모나 실력면에서 글로벌 IB를 따라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현실 내에서 ‘한국형 IB’ 기능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본틀을 봐야 한다. 가급적이면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건건이 허가, 인가를 받는다고 하면 창의성이 살아날 수가 없다. 금융은 창의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발행어음인가를 받았는데도 한쪽에서는 법으로 묶여 있다면, 그런 게 도처에 있으면 하려고 해도 못하는 게 많다. 우리나라 법이나 규정, 시행령들이 촘촘한 그물 같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하는데, 법 개정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인 것 같다.”
―대기업 소유의 증권사가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잘 나가고 증권사는 작다. 대기업인 모기업이 도와주면 도와줄 게 많지 증권사가 모기업을 지원할 일이 없다. 지금 계열사 간 거래 규정도 많아 함부로 대기업을 도와줄 수도 없다. 기우인 것 같다. 은행권에서는 고객을 놓고 경쟁이 될까 우려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은행과 경쟁할 영역은 서로 다르다. ”
―카카오 뱅크와의 시너지 효과가 관심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는 카카오뱅크 지분 58%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다)
“카카오뱅크의 고객이 현재 500만 플러스 알파다. 계속해서 늘고 있다. 그 고객은 의미가 있다. 카카오뱅크가 안정되면 많은 그 많은 고객과 네트워크를 증권사와 연계하는 서비스를 할 수 있다.”
―핀테크가 인기다. 어떤 고민을 하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비대면 일임계좌 인가가 났다. 일임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에는 투자조언 쪽이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은 공인인증부터 앞으로 기술발달에 따라 거래시스템, 고객자문 서비스 등 핀테크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현재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투자협회에서 마련한 블록체인 기술 활용한 공인인증시스템이 있다. 우리도 참여하고 있다. 그 안에서 쉽고, 보안상의 문제없이 쓸 수 있는 것이 되는데, 그것도 큰 발전이다.”
―해외 진출 계획은.
“두가지다. 하나는 해외로 진출해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작년 말에 인도네시아 증권사 인수 계약을 맺었다. 상반기 완료해서 법인을 출범시키는 게 올해 큰 과제다. 그리고 투자·상품 소싱이 있다. 우리보다 성장이 훨씬 빠른 나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도 투자하면서 좋은 상품이 있으면 국내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구조다. 올해 구체적이고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주 타깃은 잠재성장률이 높은 곳이다. 주로 아시아 신흥국들이다. 채권 및 부동산펀드 등 대체투자 상품에 투자할 예정이다.
―올해 코스피가 3000선을 뚫을 것으로 보나.
“올해 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 경제성장률이 3.2%로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3%선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세계 평균에 못미치는 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좋다는 것이다. 기업이익성장률이 작년보다 둔화할 것이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본격화 등 변수가 많다. 상승하되, 작년처럼 빠르게 오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시장 전망 좋다는 중에서 중간 정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시장을 어떻게 보나.
“좋게 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기업의 과도한 부채문제 등은 앞으로 중국이 계속해서 불씨로 갖고 갈 것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워낙 부자인데다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문제점이 터지지 않도록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치유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요즘 부동산 시장이 핫하다.
“부동산은 잘 모르겠지만, 정부가 규제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주요지역은 오를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가라앉을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혁신성장과 초대형IB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단순히 규제를 푸는 게 아니라 필요한 자금지원이 있어야 한다. 마중물 역할을 할 돈은 자본시장을 통할 수 밖에 없다. 그럴려면 저희 같은 회사한테 규제를 풀고 인가를 내주고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자금 물꼬가 트이도록 하는 통로가 저희인데 그런 수단을 주면 좋겠다. 상장 전 기업 투자도 활성화할 것이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신동주 기자, 사진=서상배 부장
ranger@segye.com
● 유상호 사장은
●1960년(58)●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MBA)●한일은행,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 메리츠증권 전략사업본부장(국제영업·리서치·파생상품·자산운용 담당)●한국투자증권 부사장, 대표이사 사장(2007년 3월∼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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