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필자가 2016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 '포퓰리스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의 내용이다.


이변의 대선이 낳은 아웃 사이더 대통령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의를 위한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잡힌 판단력이 그것이다.

 -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2016년 미국 대선은 초반부터 이변을 연출했다.


민주당에선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자마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후보의 ‘대세론’이 무너졌다. 힐러리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린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은 민주당원도 아니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무소속으로 정치를 해 왔다. 힐러리는 남편 빌 클린턴Bill Clinton과 함께 ‘워싱턴 정치’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경선에선 더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부동산 재벌(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이 현직 상원의원(테드 크 루즈 Ted Cruz, 마르코 루비오 Marco Rubio)과 전직 주지사(젭 부시 Jeb Bush) 경력의 주자들을 쓰러뜨렸다. ‘트럼프 반란(叛亂)’은 성공했다.


‘워싱턴 아웃 사이더’ 트럼프는 162년 역사의 공화당을 접수했고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공화당 모두 ‘워싱턴 정치’, ‘제도권 정치’에 발을 담근 주자들이 ‘아웃 사이더’ 앞에서 맥을 못추었다.


2008년 대선 때도 ‘워싱턴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초선 상원의원 임기 중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후보는 워 싱턴 정치를 ‘변화’시켜 미국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고 외쳤고, 많은 미국인이 그 외침에 공감했다. 정치를 바꾸자는 국민의 여망이 민주당 경선 승리도 불투명했던 오바마를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의 8년 집권 기간에 워싱턴 정치는 변화했는가. 미국인들은 2016년 대선에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기성 정 치에 물들지 않은 샌더스나 트럼프에 환호했다. 그리고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봤던 미국 주류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의 예상을 뒤엎었다.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지지했던 백인 노동자층은 8년 뒤 백인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을 지지했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시대를 개막시킨 미국인은 8년 뒤 인종차별주의 행태를 보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워싱턴 정치는 언제 부터인가 국민의 삶과 유리된 채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한때 세계가 등대로 삼았던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 미국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미국 연방의사당을 감싸고 있던 타협과 관용의 문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아웃 사이더 대통령을 배출한 2016년 대선을 되돌아봤다. 미국 정치가 키워온 갈등과 분노의 마그마는 트럼프와 샌더스라는 분출구를 통해 지표면 위로 치솟았다.


필자는 1995년 미국 워싱턴타임스의 교환기자로 체류하면서 워싱턴 정치를 접했다. 당시 뉴욕의 부동산개발업자였던 트럼프는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는 자신의 의료개혁 실패 등이 초래한 중간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워싱턴 정국은 연일 요동쳤다. 한 해 전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공 화당은 백악관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급기야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사태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막연히 ‘워싱턴 정치=선진 정치’라고 생각해온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2004년 워싱턴에 위치한 조지타운대학의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미국을 다시 찾았을 때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 다. 금융위기로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 필자는 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 미국이 금융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본 저서 제1부 도입부인 ‘유권자 혁명의 전조(前兆)’ 편은 당시 상황을 스케치한 글이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정쟁에 시달렸다. 정쟁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연방정부가 폐쇄되고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오바마의 정쟁’ 편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대통령과 의회,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갈등 양상을 추적했다.


2016년 대선이 써내려간 격동의 드라마는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돌풍’ 편에 담았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유권자 혁명'의 산물이었다. 워싱턴 정치와 세계화 흐름에서 소외된 미국인들은 기존의 정치문법에 충실했던 힐러리 대신 자신들의 속내를 거침없이 대변해준 트럼프를 선택했다. 겉으로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고 속으로는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돼있는 제도권 정치를 심판했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은 워싱턴 정치의 추한 속내를 미국인들에게 상기시켰다. 트럼프도 문제가 많은 후보였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의 시대 정신은 ‘열심히 노력해도 살림살이가 고달프기만 한 나라’를 만들어낸 기성 정치를 심판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당선됐다기 보다는 워싱턴 정치의 대표 주자인 힐러리가 패배한 선거였다.


 2부 들머리에서는 힐러리의 실패를 복기해봤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집권 구상은 불확실하다는 점만 확실한 상황이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서는 트럼프의 결단 하나에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될 수 있는 비상한 시점이다. 우리는 트럼프의 기질과 정책 지향, 백악관과 의회의 역학 모두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2부의 나머지 장에서 다뤘다.


 한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 이 책이 미국 정치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미국 정치를 낮추어 본 것은 아니다. 미국 정치의 장점과 저력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문제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미국 의회는 백악관의 거수기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와의 소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투표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도 진지하다. 미국 의회 청문회는 정말 부럽다. 1부 말미에 소개한 필립 하트Philip  Hart, 존 윌리엄스John J. Williams 상원의원의 일화만으로도 미국 정치가 건국 이후 240년 동안 쌓아온 민주주의의 전통과 품격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는 미국 정치에서 배울 점이 많다.


 글을 써내려가면서 미국 정치가 걸려 넘어진 턱이 발견될 때마다 한국 정치라면 그 턱을 넘어설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봤다. 미국 정치 가 실패한 대목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여의도 정치는 워싱턴 정치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한국 정치의 발 전에 겨자씨만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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