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정치 거부한 유권자
2016년 대선에서 정치명문 부시 가(家)의 세 번째 대통령을 꿈꿨 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시대착오적인 돈키호테와 같은 존 재였다. 그는 친형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이하 주니어 부시)를 대통 령으로 만들어준 2000년 대선의 매뉴얼을 들고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그 매뉴얼이 효과를 봤다. 민주 당에서 대세론을 형성해가던 힐러리의 맞수로는 젭 부시가 제격인 듯했다. 곧 선거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청신호였다.
그런데 막상 경선이 시작되자 안개가 걷혔다. 부시는 거인으로 알고 돌진했지만 알고보니 풍차였다. 미국 국민들은 더 이상 그의 아
버지 조지 H.W.부시George H.W. Bush (이하 시니어 부시)와 형을 대통 령으로 선택했던 그 국민들이 아니었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는 법이다. 부시 전 주지사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돌며 ‘응답하라 2000’ 드라마를 연출했다. 드라 마가 뜨지 않자 형(주니어 부시)을 카메오로 출연시켰다. 2008년 금 융위기 당시 대통령이었던 형을 금융위기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국 민 앞에 내세운 장면은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부시 전 주지사의 시대착오는 선거자금 모금 행태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미국 정치에서 선거자금 모금액은 후보의 경쟁력과 동일 시된다. 50개 주가 제각각인 미국 대선은 사실상 50개 나라를 돌며 선거를 치르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실탄’이 풍부해야 한다. 돈이 없 으면 제 아무리 훌륭한 후보라도 그 넓은 지역을 돌며 그 많은 사람 들에게 자신을 충분히 홍보할 수 없다. 미디어를 활용하든, 발로 뛰 든 천문학적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선거자금 확보는 대권에 이르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젭 부시는 그 조건을 넘치게 충족시켰다.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나 대기업, 아니면 보수 진영의 ‘큰손’들이 젭 부시를 위해 지갑을 열 었다. 이들은 젭 부시를 위해 돈을 모은 뒤 그를 홍보하는 광고 등에 수천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후보의 선거캠프 바깥에서 활동하는 정 치활동 단체들은 캠프보다 훨씬 자유롭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다. 이른바 ‘슈퍼 팩’Super PAC *이라는 정치활동위원회는 기업 등으로부 터 정치자금을 무제한으로 기부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유권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다. 미국인들은 정치권에 흘러든 뭉텅이 돈이 ‘워싱턴 정치’를 왜곡시켰다고 생각했다. 그 돈에 포획된 정치인들 탓에 자신 들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보수, 진보가 따로 없었다.
티 파티는 갓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의 복지 확대 등 ‘큰 정부’ 정책 을 비판하면서 정치세력화하더니 2010년 중간선거 때는 공화당 내 부 경선에서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강경파 후보들을 다수 당선시 켰다.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이다.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로 “금융위기 주범인 금융기관들은 도와주면서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지 못해 길 거리에 나앉게 된 서민들은 왜 방치하느냐”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하버드대 로스쿨교수가 이런 목소리 들을 대변하면서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워런을 연방 상 원의원으로 만든 힘은 월가를 향한 국민의 분노라고해도 과언이 아 니다. 대선 주자들은 로비 자금이나 마찬가지인 뭉텅이 후원금에 의 존하는 대신 나름대로 소액 모금 방식을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들이 과거보다 청렴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국민들이 이익단 체들의 로비 자금에 잔뜩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도 달라졌다. 힐러리는 2008년 민주당 대선경선 때만 해도 큰손들이 기부한 거액 후원금에 의존하는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선거를 치렀다.
이에 맞서 오바마는 온라인을 통한 ‘풀뿌리 모금’ 방식 등 혁신적인 선거운동을 선보이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오바마 바람’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2008년 2월쯤 오바마 후보는 100만 명 이 넘는 소액 후원자를 확보했다. 와신상담 끝에 대권 재수에 나선 힐러리는 오바마를 벤치마킹했다. 가급적 소액의 후원금을 요청했 다. 그래도 100달러 이내의 소액 후원 부문에선 샌더스 상원의원에 게 크게 밀렸다. 샌더스는 누구보다 정치자금, 선거자금 개혁을 위해 힘쓴 정치인 이다. 그는 선거자금 사용 총액을 제한하고 공적자금으로 선거를 치 를 수 있도록 하는 선거공영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런 샌더스에게 월가와 대기업 자금을 기부받는 힐러리는 구태 정치인이었다. 샌더 스는 힐러리를 “월가와 다른 이익단체에 의존하는 후보”로 몰아붙이 며 자신이야말로 평범한 미국인을 대표하는 후보라고 세일즈했다. 공화당의 루비오나 크루즈도 나름대로 소액 후원금 모금에 힘을 쏟 았다. 다수의 소액 후원자를 두는 것이 지지층을 넓히고 국민의 반 감을 희석시킬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부동 산 재벌 트럼프는 아예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썼다. 거액의 로비 자금과 그 돈으로 굴러가는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자기 돈 써 가면서 국민이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거침없이 대변해주는 트럼프 에게 환호했다. 워싱턴 정치, 돈 정치와 다른 새 정치를 갈망한 미국 인들 앞에 월가 자금에 의존하지 않는 ‘아웃 사이더’가 등장한 것이 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정치 혐오’라는 인화 물질이 가득한 대선 판에 불을 댕겼다.
기존의 PAC은 개인에게서 연 5000달러까지만 모금할 수 있도록 상한이 정해져 있다. 기업은 PAC에 직접 기부할 수 없고 임직원을 통해 한정된 액수만 기부할 수 있다. 하지만
Super PAC은 기업이나 개인 모두에게서 무제한으로 돈을 모금할 수 있다. 유일한 제약은 특정 후보나 정 당과 별개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거에 출마한 특정
후보를 지지,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제약은 큰 의미가 없다고 선거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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