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경선에서 유일하게 트럼프의 독주를 저지할 수 있는 후보가 테드 크루즈였다.
크루즈가 트럼프의 ‘매직 넘버’(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을 확정짓는 대의원 수 1237명) 달성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면 공화당에서 전당 대회 경선이 실시될 수도 있었다. 이른바 ‘경선 전당대회’ contested convention*(주1)다. 그렇게만 됐으면 공화당 대선후보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마땅치 않은 공화당 지도부는 막후에서 전당대회 대의원들을 설득, 트럼프를 배제한다는 복안을 세워뒀기 때문이다.
크루즈 상원의원은 2016년 3월5일 캔자스주 경선(당원대회)에서 트럼프 후보를 25% 포인트 차로 꺾으면서 트럼프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캔자스는 왜 크루즈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캔자스의 정치권이 왜 우경화됐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대평원 지대에 위치한 캔자스는 20세기 초반에만 해도 농민조직의 힘이 강했던 진보의 땅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지금 용어로 하면 ‘복지국가’를 뜻하는 ‘신국가주의’를 선포한 오사와토미가 캔자스주에 위치해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2011년 12월 오사와토미를 찾아 오바마 정부가 추진했던 진보적 정책의 정당성을 확인받고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려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때 이곳에서 그(신국가주의) 연설을 한 이후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어 공산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그때 그가 주창했던 그 원칙 때문에 미국은 지금 더욱 부강한 나라, 강력한 민주주의 나라가 되었다”고 역설했다. 지금도 캔자스에는 급진적 도시라는 뜻의 ‘래디컬 시티’Radical city 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가 진척되면서 캔자스는 보수화했다.
농민이 줄어들고 농민 조직의 힘이 약해지자 캔자스의 정치는 대체로 공화당이 주도했다. 캔자스의 공화당은 중도 실용의 보수였다. 199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 밥 돌Bob Dole 상원의원은 캔자스가 낳은 대표적인 중도파 공화당원이었다.
1990년대 초반 캔자스의 정치 지형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낙태 반대 시위였다. 전국에서 모인 낙태 반대 시위대는 캔자스주 위치토에 위치한 유명한 낙태 시술 병원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이 병원에서 낙태 시술을 담당했던 조지 틸러George Tiller 박사 는 2009년 5월 위치토의 한 교회에서 낙태 반대론자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시위를 계기로 캔자스 주민들은 낙태를 둘러싸고 찬반 양론으로 분열했다.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인 캔자스 주민들이 대거 낙태 반대론에 가담하면서 이후 이뤄진 각종 선거에서 낙태에 찬성한 공화당 중도파와 민주당 의원들은 캔자스 정치권에서 거의 전원이 축출되고 말았다. 이제 캔자스에는 낙태 반대를 기치로 내건 공화당 우파만 남게 됐다.*(주2)
이 과정에서 ‘복음주의’evangelism 로 대표되는 기독교 우파가 공화당 우파와 손을 잡았다. 기독교 우파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수업하는 것에 반대하고, 학교에서 기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낙태, 동성결혼에 격렬히 반대한다. 백인 우월주의가 강하고 소수인종이나 여성, 이민자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작은 정부론’을 신봉하고 신자유주의를 선호한다. 상식적인 미국인들이 보기에 크루즈도 트럼프 못지않은 ‘꼴통’이었다.
크루즈는 복음주의 우파의 대표 주자였다. 캔자스주 공화당 당원 대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한 표씩 던진 정치 행사였다.
캔자스 경선에서는 2위와의 격차가 문제였지 크루즈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트럼프는 낙태옹호단체인 ‘가족계획연맹’의 활동을 지지하고 낙태 합법화를 지지한 전력도 있었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이후 낙태 반대로 돌아섰다.
캔자스는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농장주에 맞서 싸운 자작농들이 모여 만든 주다. 1859년 10월16일 노예제 폐지를 위해 무장봉기에 나섰다가 교수형을 당한 존 브라운John Brown이 캔자스 출신이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존속시키려는 남부 연방군이 캔자스를 공격해 유린한 역사는 캔자스 주민들의 노예제 혐오를 한층 더 깊게 했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은 트럼프는 애초부터 캔자스의 선택을 받기 힘든 주자였다. 캔자스의 공화당원만 낙태 반대론자는 아니었다. 기독교 우파가 공화당 우파와 손잡기 시작한 시점부터 낙태 반대는 미 전역의 공화당원들이 공유하는 가치로 떠올랐다. 크루즈가 틈만 나면 낙태 문제를 쟁점화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당 대선경선 기간에만 해도 낙태 문제는 트럼프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한국 정서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금도 낙태 문제는 미국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낙태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대표적인 문화 쟁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낙태 시술과 관련, 찬성 pro-choice(낙태를 여성의 선택, 권리에 관한 문제로 보는 관점) 아니면 반대 pro-life(낙태를 태아 살인 행위로 보는 관점) 입장으로 양분돼 있다. 민주당 성향 유권자는 대체로 낙태를 찬성하고, 공화당 성향 유권자는 낙태에 반대한다.
미 연방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드’Roe vs. Wade 소송에서 “임신 첫 3개월간 여성이 낙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면 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린 뒤 보수 진영은 이 판결을 뒤집기 위해 사력을 다해왔다. 1980년대 들어 기독교 우파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고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연방대법원에서 다수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대법원은 낙태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낙태 시술 과정에서 공공병원이나 시설의 사용을 제한하고 18세 이하의 낙태 시 보호자의 승인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낙태 합법화 판례를 뒤집고 낙태를 금지하는 판결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자 보수성향 주들은 주 의회 차원에서 낙태를 어렵게 하는 법안을 잇따라 제정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아직까지 연방대법원은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2016년 6월 임신 20주 이후 태아의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주 낙태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는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가장 중요한 이번 판결로, 당분간 낙태를 금지하는 주 의회 차원의 법안 제정은 제동이 걸리게 됐다.(트럼프는 공화당 후보가 된 이후 생명을 존중하는 pro-life 연방 대법관을 임명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 대항마’로 부상한 크루즈는 트럼프의 성채를 무너뜨리기 위해 낙태 문제를 집중 공략했지만 크루즈는 끝내 트럼프의 매직 넘버 달성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는 공화당의 신주류로 등장한 티 파티 계열로 공화당 성향이 강한 복음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출마했다. 젭 부시, 마르코 루비오의 경선 포기 이후에는 이들을 밀었던 공화당 지도부의 지원까지 받았지만 허사였다.
크루즈는 왜 무너졌을까. 무엇보다 그의 ‘독불 장군’ 행태가 당내 반감을 샀다. 크루즈는 2012년에 당선된 초선 상원의원이다. 한국 국회도 그렇지만 미국 의회에서도 선수(選數)는 중요한 기준이다. 선수를 기준으로 당내 랭킹이 매겨진다. 상원은 하원보다 전통과 관행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 그런 상원에서 1970년생인 크루즈는 1942년생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과 맞짱을 떴다. 2013년 맥코넬 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가 백악관·민주당과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오바마케어 집행 예산을 포함시키는 타협안을 마련하자, 크루즈는 맥코넬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 공화당 지도부에 대해서는 공화당 유권자의 뜻을 저버리고 오바마 정부에 투항한 인사들로 매도했다.
한국 국회의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선뜻 와닿지 않지만 미 의회에서는 동료 의원을 ‘거짓말쟁이’로 부르는 정도의 발언도 큰 논란거리가 된다. 언론도 크게 다룬다. 2009년 공화당의 조 윌슨Joe Wilson 하원의원은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는 오바마 대 통령을 향해 “당신 거짓말이야!”You lie! 라고 소리쳤다가 사과 성명을 내야 했다. 소속 정당을 떠나 동료 의원이라 해도 의회의 품격을 추락시키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당시 워싱턴특파원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던 필자는 같은 공화당 의원들도 윌슨을 감싸지 않는 점에 눈길이 갔다. 민주당은 윌슨 의원에 대한 규탄결의안까지 추진했다. 상원 의사규칙은 구체적으로 동료 의원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난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고참 의원들 눈에는 크루즈의 거침없는 언행이 시쳇말로 ‘싸가지가 없는’ 행태로 보였을 것이다. 크루즈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이 너무 많았다. 경선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크루즈의 공식 사과가 있기 전에는 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크루즈는 공화당의 통합을 외치면서 동료 의원들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때늦은 외침이었다.
크루즈는 2012년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우파 대중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덕분에 공화당 예비경선 과정에서 텍사스주 현직 부지사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크루즈는 ‘티 파티의 의회 대사(大使)’를 자처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개혁이나 이민개혁, 증세 정책에 결사 반대하는 티 파티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공화당 주류도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티 파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화당은 2010년 중간선거 과정에서는 티 파티 운동에 편승, 다수당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이때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이 공화당 하원에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선명성은 투쟁의 시기에 필요한 덕목이다. 2010년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은 비타협 노선으로 일관하는 티 파티 계열 의원들에게 발목이 잡혀서 오바마 정부와는 그 어떤 타협도 불가능한 정당으로 변해갔다. 공화당은 더 우경화됐다. 점차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은 공화당의 골칫거리가 됐다. 원래 티 파티 운동은 과도한 정부 지출에 반대하면서 시작된 시민 운동이었는데 보수 우파가 개입하면서 사실상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으로 변질됐다. 이후 종교 우파인 기독교 복음주의와 인종주의 세력까지 티 파티로 흘러들어갔다. 2013년 미국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야기한 주범이 바로 크 루즈를 필두로 한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이다. 이때 크루즈는 오바마 케어 집행예산이 2014 회계연도 예산안에 포함되는 것을 막기 위해 21시간 19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크루즈는 전국적 인물로 부상했지만 공화당은 연방정부 폐쇄 책임론에 휩싸였다.
티 파티의 이런 원리주의적 보수 노선은 공화당 지도부가 바라는 진로가 아니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날로 인구가 늘어나는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나 중도층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공화당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티 파티 세력은 자신들의 노선대로 당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4년 6월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를 지역구 당내 예비선거에서 낙선시키는 정치 반란까지 일으켰다. 그 희생자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끈 뒤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던 에릭 캔터다. 하원 다수당 원내대표가 예비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미 의회 역사상 초유의 참사였다. 캔터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화당 주류와 티 파티 세력의 사이는 더 멀어졌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그 점잖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크루즈를 향해 ‘미친 자식’wacko bird 이라고 욕을 해댔을 정도였다.
*(주1)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과반 대의원을 확보한 주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현행 공화당 룰에 따르면 전당대회 대의원들은 1차 투표에서는 원칙적으로 각 주의 경선 결과대로 표를 던져야 한다. 1차 투표에서도 과반 후보가 안나오면 2차 투표부터는 아무 후보에게나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대의원들이 늘어난다. 이때부터는 공화당 지도부 등 유력 정치인들이 개입, 막후에서 중재에 나선다. 그래서 '중재 전당대회' brokered convention 라고도 한다.
*(주2)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김병순 옮김, 2012), 갈라파고스, p1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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