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 접경에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 우뚝
서 있습니다.

 모든 게 다 큰 미국 사람들이 산 이름 앞에 'Great'를 붙여 놨으니 오죽 크겠습니까.
산 중간에 위치한 안내소에서 출발해 차로 꼬박 한 나절씩을 달린 끝에야 동쪽 끝과 서쪽 끝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산 정상 인근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

 


 

       
     

          

 스모키 마운틴에서 사 나흘 머물기에는 이런 통나무 집이 제 격. 저는 함께 연수중이던 한국일보 고태성 선배 가족과 같이 여행을 떠났는데 두 세 가족이 함께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렌트할 수 있습니다.


                                                      

 스모키 마운틴의 구불구불한 길을 초기 개척자들은 말을 타고 다녔을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엔 인디언들의 길이었겠지요.
바로 체로키 인디언의 삶터였습니다.
지금은 박물관과 보호구역에 유폐된 체로키족말입니다.


   
 아무리 백인 정착민과 인디언의 역사는 피로 써내려 갔다고는 하지만 체로키족의 경우에는 좀 심했습니다. 체로키족은 그들 스스로 백인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학교도 세우고 교회도 짓고 대표자도 뽑았으나 끝내 추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싸우다 죽은 인디언 보다 더 비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조지아에서 쫓겨난 체로키족은 테네시와 캔터키를 지나 오클라호마로 이동하는 중에 4000여명이 죽어갔습니다.  후에 '눈물의 발자국'으로 널리 알려진
죽음의 이주입니다.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을 연상시키는 이전책입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체로키족 족장들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왕 조지3세를 찾아갔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의 영토까지는 백인 식민자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문서를 받아왔으나 결국 휴지가 되고 만 셈입니다.
 아래 사진 속의 인물들이 대서양을 건넌 분들인데 그 때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내쫓기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싸우다 죽자는 부족민도 있었고,

 



 백인과 협상하자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과는 같았을 것입니다.
 몇년 전 미국 의회는 자신들이 인디언들에게 했던 수많은 약속들을
 헌신짝 버리듯 어긴 점을 사과해야 한다는 안건이 상정되자
 이를 부결시킨 바 있습니다.
 역사는 냉혹한 동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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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인디언 조각상.




 이제 신대륙의 주인이 된 식민자들은

 인디언에게 화해하자고 제안합니다.

 식민자들과 인디언의 우정을 상징하는 불꽃이랍니다.

 지금도 타고 있습니다.

 물론 가식적인 가스불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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