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끝>
중증 정신질환자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상에서 정신질환자를 본 적이 없어서일 테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아는 듯, 알지 못한다. 자주 접하긴 하지만, 대부분 ‘범죄사건 가해자가 알고 보니 정신질환자였다’는 식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정신장애 범죄자’는 전체 범죄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1%가 정신질환자 전체를 과대대표했고,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다.
그 시선이 정신질환 당사자를 숨게 한다. 주변에 발병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증상에 대해 설명하길 꺼리게 한다. 갈등이 두려운 그들은 그렇게 학교에서, 회사에서, 동네에서 주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고립된 채 지내며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31일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중증도 우울장애 등의 ‘중증 정신질환’ 진료 이력이 있지만, 2023년 병원에서 진료받지 않은 사람은 15만2006명에 달했다. 중증 정신질환 특성상 꾸준히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데, 치료를 중단하고 숨어버린 경우가 적잖은 것이다.
숨는다고, 숨긴다고, 병이 사라지진 않는다. 치료를 늦추고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인은 그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어머니는 아직도 딸의 상태를 제대로 몰랐던 게 한이라고 했다. “그때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못 했어요. 딸이 조현병 환자라는 걸 믿기가 싫었어요. 제가 약사인데도 딸을 몰랐어요.”
사실 당사자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중증 정신질환 진단 혹은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은 63만6532명에 달한다. 국내 인구(5132만5329명)의 1.2%로, 100명 중 1명꼴이다.
우리가 거니는 길에, 식당과 카페에, 어쩌면 매일 향하는 일터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함께 있던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건, 이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정신질환은 몸이 아픈 병과 다르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이들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8개월간 823건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84명을 만난 건, 그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세계일보는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 2명을 한 달간 집중 관찰했다. 8월12일부터 9월8일까지 4주간 매일 저녁 통화하며 그날의 애환을 들었다. 이들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네 삶이 다 그렇듯 말이다.
◆필요한 건 ‘위로’ 아닌 ‘이해’
냉탕에 10분, 온탕에 10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냉온욕은 고유선(32)씨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일과를 마친 뒤 목욕탕에 들러 냉온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유선씨가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기까진 5년이 넘게 걸렸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유선씨는 10년 전 조현정동장애를 진단받고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자신을 두 명의 다른 사람으로 느끼던 때도 있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 얼굴에 침을 뱉은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모두 유선씨가 경험한 망상과 환각, 즉 조현병의 ‘양성 증상’이었다.
약을 먹으며 양성 증상은 나아졌지만, 무기력해지는 ‘음성 증상’이 찾아왔다.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누워 있게만 됐다. 양치나 샤워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봤자 뭐해. 일도 못 하고 돈도 못 버는데. 살아서 뭐해.”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음성 증상을 해결해준 건 ‘파도손’ 같은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정신질환자의 치료 과정을 돕는 ‘절차조력 지원사업’ 단체다. 정신질환자 당사자가 다른 정신질환자를 상담해주는 ‘동료지원’, 당사자와 가족이 함께 대화적 치료를 배우는 ‘오픈 다이얼로그’ 수업 등을 진행한다.
유선씨는 이곳에서 지지받고 지지하는 경험을 했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유선씨는 매주 화요일 난다에서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하고, 일주일에 5일 정도는 파도손에서 미술 작업을 한다. 오랜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다 보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깊은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까 봐, 이상하게 볼까 봐 하지 못하던 말도 그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유선씨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그들이 좋다”고 했다. 증상에 대해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잠들기 전 꼬박꼬박 약을 먹긴 하지만, 유선씨는 여전히 50% 정도의 증상이 남아 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는 식이다. 누구를 만나도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다수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유선씨를 이해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유선씨가 느끼는 망상, 불안, 죄책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위로가 아니라 이해를 해줬다. 그리고 유선씨와 비슷하게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들으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선씨는 이들 덕에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규칙적 생활이 꾸준한 약 복용 도와
서울 강북구에 사는 전현진(41)씨에겐 때때로 원인 모를 불안감이 찾아 왔다. 8월12일이 그랬다. 동료상담 지원이 일정대로 흐르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불안감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현진씨는 기존에 먹던 조현병 치료약에 더해 안정제를 두 알 함께 삼켰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현진씨가 이렇게 약물과 휴식 등으로 증상을 관리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도 파도손 영향이 컸다. 현진씨는 “일을 하게 되며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되니 약도 거부감 없이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출근 안 하고 더 자고 싶다.’ 오전 7시30분 눈을 뜬 현진씨는 ‘더 잘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이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기지개를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약을 먹는 것.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밖을 나서는 8시쯤이면 현진씨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약을 먹었는지 묻는 어머니의 잔걱정 없이도, 현진은 누구보다 약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병에게 제 삶의 주도권을 뺏긴단 걸 저는 알아요.” 그는 몇번이고 강조했다.
현진씨에겐 8년 전 겨울 조현병이 찾아왔다. 보험설계사로 6개월째 일하며 숱한 거절과 실패를 맛보던 차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병에 현진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위태로운 현진씨를 본 어머니가 입원을 권했다. 1년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병원 밖으로 나온 현진씨는 동료지원가 활동 덕에 약을 먹는 습관을 얻었다. 매일 출퇴근길 규칙적으로 약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진씨는 파도손에서 주 2~3회 동료상담 일을 한다. 현진씨처럼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다. 현진씨는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앞으로 펼쳐질 일주일간의 계획을 짜고, 지난 일주일의 상담 내용을 공유하는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현진씨는 옥상으로 가 식물 물주기를 한다. 월요일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나머지 화~목요일 일과 중엔 협약을 맺은 정신병원으로 가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금요일엔 파도손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한다. 6시 무렵 퇴근하면 스팸,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을 만들어 먹고, 다시 꼭 약을 챙겨 먹는다.
현진씨는 꼭 하루를 ‘NBA 2k24’라는 농구 게임으로 끝낸다. 다른 사람과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항상 혼자 한다. 난이도는 가장 쉬운 버전으로. 현진씨에게 농구게임은 작은 성공을 매일 맛볼 기회이자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다.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현진씨는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일자리가 너무 소중하다”며 “일상이 무너진다면 다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집중된 지원…”전국 확대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해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가 한목소리를 냈다. 유선씨와 현진씨가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던 것도 정신질환자가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이 있었던 덕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2018년 서울, 경기, 부산에서 시행되다가 2021년부터는 서울, 경기로 축소됐다. 수도권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2024년부터 전국범위 사업 확대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추진이 언제 실현될진 알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정신병원과 연계해 진행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연계할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석 관악동료지원쉼터 부센터장은 “한국은 정신질환 치료가 병원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탓에 조금만 증상이 악화하면 병원에 보내버리고, 당사자는 치료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회복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 중증 정신질환자도 유선씨나 현진씨처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
[제410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기]
조희연 세계일보 기자 /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숨겨진 84명의 공동수상자가 있는 기사입니다. 8개월의 취재기간 중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취재할수록 지난한 문제라는 걸 체감했고, 자칫 잘못 보도할 경우 조현병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거나 잘못된 제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취재에 적극 응해준 84명의 취재원 덕에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 당사자,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인 이들은 기획 취지를 듣곤 “정말 중요한 문제”라며 각자의 경험을 상세히 풀어줬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장 잘 알고 있고, 개선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기에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절박함에 빚지며 취재를 이어갈 수록 취재팀 또한 절박해졌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는 더 이상 한국사회 어딘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저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대화한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들이 안전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기사가 보도된 5일간 정책 당국인 보건복지부가 아무런 개선책을 내놓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귀한 상을 주신 덕에 기사가 조금 더 주목 받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가 조금 더 알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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