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프로풋볼 선수인 팻 틸먼(애리조나 카디널스)이 자원입대할 당시,
그는 잘 나가는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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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시즌엔 224회 태클로 팀 신기록을 달성,
팀의 간판 수비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0년 시즌이 끝나자 세인트 루이스 램스는
5년에 900만 달러의 연봉을 제시하며 이적을 권했습니다.
카디널스는 2001년 말, 3년에 360만 달러의 연봉을 제의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제안들을 모두 물리치고
2002년 여름, 육군특수부대 레인저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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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한가하게 운동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이너리그 프로야구 선수인 동생도 형과 뜻을 함께 했습니다.
그 뒤로, 신혼의 틸먼 부인이 홀로 남았습니다.
9.11 테러의 연기 속에 풋볼장을 떠난 그는,    
2004년 4월 22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전사했습니다.
 
 며칠 전엔 틸먼의 애리조나 주립대 친구인 제레미 스타트가
해병대 신병 훈련을 마친 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 역시 2006년 미 프로풋볼리그(NFL) 우승팀인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수비수로 활약한 풋볼 선수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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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 테러 직후 틸먼과 함께 입대하려 했으나
틸먼의 만류로 입대를 늦췄다고 합니다.
입대하기 위해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포기하고
체중을 23kg 가량이나 감량했습니다.
돈도 포기하고, 체중까지 줄여가면서
자원입대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 선수로 돈 버는 일에 자긍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프로 선수들이나 연예인들에게는 수백만 달러를 쓰면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사는 군인들에게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미국은 모병제 국가라서
틸먼과 스타트의 행동이 더욱 영웅적으로 부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반면 신체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군에 가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인 나라에선,
병역 기피나 면제 따위의 일들이 부각됩니다.
한국 정부가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 대표팀 11명에게
병역 혜택를 부여하기로 했다는 결정이 뉴스가 되듯이.
샌디에이고 해병대 신병 훈련장에서 나온 스타트가
마침 그 도시에서 열린 WBC 경기를 보러왔다가
그 뉴스를 접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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