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칸(Vulcan)을 아십니까.

그리스인은 헤파이스토스로, 로마인은 벌카누스로 불렀던

대장간의 신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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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람들은 화산에서 분출되는 연기가

 

그의 대장간 풀무에서 나오는 것으로 믿었다는군요.

철강 산업이 발달한 미국 앨라바마주 버밍햄이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17m에 이르는 거대한 벌칸상을 세울만 하지요.

벌칸 2000년 미 대선 당시 공화당 부시 후보 진영의

외교 안보팀이 스스로 붙인 별칭이기도 합니다.

그 팀의 일원이자 버밍햄이 고향인 콘돌리자 라이스 현 국무장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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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조로 사용한 이 별칭이

 

후에는 공식 호칭으로 바뀌었다는군요.

벌칸팀이 추구하던 외교 정책의 이미지-, 강인함, 탄성, 내구성 등이

벌칸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바로 이 벌칸팀이 미 본토를 강타한

2001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전략을 획기적으로 개조합니다.

그 과정이 LA 타임스 특파원 출신인 제임스 만의

Rise of the Vulcans에 서술돼 있는데 흥미롭고 시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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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만이 추적한 벌칸들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표지 앞 줄 왼쪽부터), 폴 월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뒷 줄 왼쪽부터) 등입니다.
집권 2기들어 부시 행정부의 벌칸팀 구성이 좀 변하긴 했지만
정책 기조는 그대로입니다
.
오히려 벌칸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했던
파월과 아미티지가 빠지는 바람에
집권
2기 벌칸팀은 집권 1기 보다 더 강성으로 변했다는 분석입니다.


만이 취재한 秘話입니다
.

 

9.11 테러 당일.

파키스탄의 국가정보원장 마흐무드 아마드는

워싱턴에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 조지 테닛 미 CIA 국장이

오사마 빈 라덴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파키스탄을

비밀 방문한 데 대한 답방이었습니다.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아마드를 사무실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으로 말했습니다.

Are you with us or against us?(파키스탄은 미국의 친구냐, 적이냐)

파키스탄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세력을 비호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후원자였기 때문입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아마드가

파키스탄과 탈레반 정권과의 오랜 역사를 거론하며

이해를 구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아미티지가 한 마디로 자릅니다.

History starts today(역사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다음 날 아미티지는 아마드에게 미국의 요구 사항을 전달합니다.

미 항공기와 군인의 파키스탄 통과, 병참 지원, 탈레반과 알 카에다

정보 제공 등.

아미티지는 아마드에게,

협상도 없고 대가도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그간의 외교 관례를 무시한 일방적 요구였습니다.

아마드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긴급 전문을 띄웁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의 요구 사항을

조건 없이 수락합니다.

나아가 탈레반과의 전쟁 기간,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을 전폭적으로 돕습니다.

친구가 된 무샤라프에게 미국 또한 화끈하게 보답합니다.

이듬 해 무샤라프가 자신의 재임 기간을 5년 더 연장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을 강행해도

미국은 눈 감아줍니다.

민주주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부시의 잣대는

아무래도 고무줄로 만들어진 듯 합니다.

 

 9.11 테러 당일 중국 기자 14명도 워싱턴을 방문중이었습니다.

국제교육재단 초청의 공식 방문이었답니다.

이들은 어느 사무실에서 TV를 통해 무역센터 테러를 알게됐는데

지켜보던 미국인이 경악할 만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일부 기자들이 웃고 환호한 것이지요.

국무부 내에서 이들 기자들의 처리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국무부 동아시아국에서 중국 기자들을 즉각 추방할 것을 건의했으나

교육 문화국에서는 반대합니다.

향후 對 중국 관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도 추방 반대 의견을 피력합니다.

매파와 비둘기파가 갑론 을박,

이 문제가 아미티지에게까지 올라갑니다.

아미티지의 결론은,

Send them home"(집으로 돌려보내)

Those people ought to be on the next plane out of here

(그런 인간들은 당장 추방시켜야 마땅하다)

중국 기자들은 즉각 추방됐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기자들의 안전 문제를 우려해

일정이 단축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확실히 미국은 9.11 이후 변했습니다.

더 이상 회색 지대는 없습니다.

친구가 아니면 적입니다.

구구한 설명도 듣지 않으려 합니다.

2002 1 29,

부시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미국의 변화된 안보 전략의 일단을

피력합니다.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명명해서

유명해진 연설이지요.

물론 벌칸팀이 작성한 원고입니다.

그 때는 벌칸들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로

결정하고 분위기를 몰아가던 상황이었습니다.

동맹국들의 의견은?

기자 회견에서 나온 폴 월포위츠 당시 국방부 부장관의
답변이 미국의 마이 웨이 방침을 대변합니다
.

그들도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을 수 있지 않느냐"

더 이상 동맹국의 견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맹국은 미국의 인공위성이 아니다"는 독일 피셔 외상의 불만을,
2차 대전과 냉전 시대를 미국과 손잡고 헤쳐나온 유럽 동맹들은
공유하고 있습니다
.

 

 의회 연설이 있은지 5개월 후에

부시 대통령은 미 육군사관학교 연설에서

선제 공격(Preemptive action)을 골자로 한 새 전략을 공식화합니다.

냉전 시대의 유물인 억지와 봉쇄(Deterrence & containment) 전략을

폐기 처분한 것이지요.

연설에서 부시는

불량 정권들이 미국을 파괴적인 무기로 위협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이라크가 그 첫번째 제물이 됐지요.

그런데 이라크 공격의 명분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벌칸들이 잠시 궁지에 몰렸으나

그렇다고 다른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집권 2기를 맞은 부시 행정부는 이제

중동 지역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하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북한입니다.

2005 4 24일자 워싱턴타임스 보도입니다.

북한이 핵 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징후를

미국 정보 기관이 포착했다는군요.

핵 실험은, 핵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의 공갈 수준을 넘어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천명하는 행위입니다.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미국을 협박하고

6자 회담도 보이콧하고 있는 북한입니다.

미국은 이런 북한을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특사에게 핵 보유국이라고
깜짝 선언을 했을 때도
,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을 때도,

북한이 국제 원자력 기구의 핵 사찰단을 추방했을 때도,

북한이 핵 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을 재개했을 때도,

미국의 반응은 It is not a crisis(아직 위기가 아니다)였습니다.

존재하지도 않은 대량 살상무기를 근거로

이라크를 박살내 버린 미국입니다.

이라크 보다 북한 핵이 더 시급한 문제 아니냐는 주장이

터져 나올 만 하지요.

2004년 대선 당시 존 케리 민주당 후보도 TV 토론에서

이런 논리로 이라크 공격을 비판했습니다.

벌칸은 이런 저런 이유로

북한 만큼은 군사적 해법이 적당치 않다고 말합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인접해 있고

전쟁이 나면 서울이 초토화될 수 있으며

북한 경제난이 북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고

내부 쿠데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등등..

어떻든 "북한이 위협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라크와는 다른 위협이고 적어도 아직은 외교로 다룰 수 있는 위협"(럼스펠드 국방장관. 아래 사진)이라는 입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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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편으론 벌칸이

그동안 이라크 전쟁 명분이 퇴색되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북한 위기를 일부러 축소시킨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북한 핵 실험은

미국의 북한 문제 주무 부서를 국무부에서 펜타곤으로
이동시킬 정도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벌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의지와 힘이 차고 넘칩니다.
벌칸이 구상중인 북한 해법이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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