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정착기(3) - 조남규(세계일보/조지타운대)
<교통사고 대처법>

해외 여행객에서의 교통 사고도 예고 방송이 없다. 더욱이 언어상의 애로 등으로 국내에서 보다 사고 뒷처리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불측의 손해를 방지할 수 있다. 본인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겪은 교통사고 처리 경험담을 소개한다.

버지니아주 남단에 위치한 버지니아 비치에서 1박한 뒤 CHESAPEAKE BAY BRIDGE-TUNNEL을 거쳐 메릴랜드 오션시티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오션시티 4거리에서 STOP SIGN 표지판을 착각하는 바람에 좌측에서 출발한 차에 의해 내 차의 뒷 범퍼 좌측이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STOP SIGN이 교차로 4곳에 모두 있으면 FIRST COME FIRST GO 원칙에 따라 먼저 도착한 차량에 우선권이 있고 본인 차의 진행 방향에만 있으면 다른 방향의 차량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한다. 나는 4곳 모두에 STOP SIGN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좌측에서 진행중인 차를 한 대 보내고 출발했다. 그런데 나 보다 늦게 4거리에 다다른 좌측의 차량 역시 내가 출발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계속 달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STOP SIGN을 지키지 않은 본인의 과실이었다. 사고가 난 메릴랜드주에서는 1%의 과실이라도 더 많은 쪽이 100% 책임을 지도록 도로교통법이 규정하고 있다.

일단 사고가 발생한 후에는 다음의 조치를 신속히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탑승자의 구호조치가 가장 중요하다. 교통사고시 본인 과실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비용(내 경우 Medical Expense는 1인당 5000달러)은 보험처리되는 만큼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의사의 확실한 진단을 받아두는 것이 좋다. 병원에서는 후에 보험사로 비용을 청구한다. 엑스레이 촬영비와 의사 진단비, 응급실 이용비가 별도로 계산된다. 내 건의 경우는 나와 두 자녀가 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 만 찍고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왔는데 1인당 500달러 안팎의 비용이 청구됐다.

사고가 나면 소방차와 앰뷸런스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만약 부상 정도가 심한 경우라면 절대 부상자에게 손을 대서는 안된다. 뒷 좌석에 탔던 아들이 차에서 나와 디카로 사고 현장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현장에 도착한 응급 구호팀 직원이 깜짝 놀라며 제지했다. 목이나 척추가 다쳤을 경우 부상자를 움직이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 구호팀 직원의 설명이다.

사고 뒷 처리는 우선 현장을 촬영하고 상대차 운전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상대차의 보험회사, 차 넘버를 확인한다. 상대방 과실이거나 어느 쪽 과실인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자신에게 유리한 목격자를 확보에 나서야 한다. 내 사고의 경우, 상대차 운전자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 맨 먼저 목격자를 찾아서 내가 STOP SIGN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받고 후에 경찰관이 도착하자 그 목격자로 하여금 상황을 설명하도록 했다. 목격자를 확보한 후에야 내게로 와서 다친 사람이 없는지 물어보고 내 신원과 보험사를 확인했다. 목격자가 현장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름과 전화번호만이라도 확보하면 도움이 된다. 영어를 모르
는 외국인은 누구의 과실인지 분명치 않을 경우 목격자를 확보하지 못해 졸지에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대차 운전자와는 다툴 이유가 전혀 없고 실제 고성이 오가지도 않는다. 단, 어떤 상황에서도 “I’m sorry”라는 표현은 금물이다.

경찰은 사고 경위를 조사한 뒤 과실이 있는 운전자에게 스티커를 발부한다. 나는 Negligent Driving과 Fail to make requird Stop 두 항목 위반으로 스티커를 발부받았다.
벌금액은 ‘30,35,48,55….525,572,Other$’로 천차만별이다. 결정은 경찰관 재량이다. 미국인 친구 한 명은 젊은 시절 경찰의 정지 요구를 무시하고 도주하다가 3000달러가 넘는 스티커를 발부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75달러 짜리와 275달러 짜리 2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이 발부한 스티커에 사인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구속될 수 있다. 영어가 짧은 외국인에게는 다소 억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일단 경찰관이 스티커를 끊으면 달리 방도가 없다. 나는 내가 STOP SIGN에서 서지 않고 질주했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사실과 다르며 STOP SIGN에서 일단 정지했다가 출발했다고 항의했으나 경찰관은 법정에 가서 따지라고 했다. 어느 경우나 내 과실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커는 정확히 표현하면 Citation(소환장)이다. 보험사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대목이 누가 Citation을 받았느냐는 대목이다. Citation을 받은 운전자측 보험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하기 때문이다. Citation은 두 종류다. 하나는 반드시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벌금을 납부하든지 아니면 법정에 출두해 경찰관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항변하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본인 과실이든 아니든 스티커 발부하고 현장의 사고 처리는 종결된다.
스티커를 발부받은 운전자에게는 후에 주소지로 벌금 납부 통지서가 우송된다. 참고로 목격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갈 경우 경찰관의 결정을 뒤집을 확률은 낮다고 한다. 미국은 제복입은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그 어느 나라 보다 높기 때문이다.

벌금은 개인 수표로 납부하는데 가급적 등기 우편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현지 미국인에 따르면 왕왕 벌금 납부 수표가 중간에 없어져 법원에서 출두 명령서가 날라오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벌금을 납부하면 교통사고 위반 건은 종결된다.

경찰관이 사고 차량을 가까운 야적장으로 견인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이용하는 정비소로 차를 이동시켜야 한다. 야적장 보관 기일이 길어지면 보험사가 보관료 부담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정도라면 보험사가 견인 비용과 보관료를 부담한다.
이제부터는 보험사와의 관계다. 일단 사고 신고를 하면 보험사는 사고 경위를 파악한 뒤 Adjuster를 지정해 준다. 향후 사고 처리는 이 Adjuster와 협의하게 된다. 보험사는 차가 수리되는 정비소로 사람을 보내 견적을 낸 뒤 수리할 것인지, 폐차시킬 것인지를 결정해서 통보해준다. 통상 수리비가 차량 가격의 75% 이상 나오게 되면 보험사는 차량 가격을 보상하고 차를 인도해간다고 보험사측은 설명했다. 수리하는 것으로 결정되면 보험사는 수리비에서 피보험자의 Deductible(내 경우는 500달러)을 제외한 돈을 피보험자에게 수표로 우송해 준다. 피보험자는 정비소에 보험사가 보내준 수표와 본인의 Deductible을 주고 차를 인도받아오면 된다. 본인 과실로 사고를 내면 벌점 3점이고 사고마다 3점이 추가된다. 한 번 사고를 내면 추후 보험 갱신할 때 보험료가 30~50% 할증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은 보험 가입할 때 사고시 차를 렌트할 수 있는 항목이 들어있는 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사고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탓에 이 부분의 확인을 소홀히 했다가 막상 사고를 당한 뒤 차가 수리될 때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야 했다. 내게 보험을 권유한 한국인 에이전트가 실수했는지, 아니면 고의로 누락시켰는 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에이전트에 대한 신뢰를 철회했다. 실제 하루 렌트 비용이 30달러 안팎으로 보험사측으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일 것이나 하루도 차 없으면 살 수 없는 미국인데 이는 실수라 하더라도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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