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취재 담당 부국장 때 기획했던 연중 시리즈
각계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과 미·중 경쟁, 코로나 위기, 양극화, 기후변화 등이 복합된 국내외 위기 국면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해 오는 3월 선출되는 차기 정부가 국가 개조 수준의 개혁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 부문에선 무엇보다 시효가 만료된 ‘19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치가 갈등을 해소하고 타협을 모색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진영 대결 정치, 약탈 정치로 전락했다”며 “정치인 충원 방식을 바꾸고 국회의원 특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우리 대통령은 무늬만 대통령이지 실제론 왕”이라며 “대통령의 오만이 야당을 무시하고 여권 내부를 무시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노동 개혁, 교육 개혁도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로 꼽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20세기에 만들어진 현행 노동규제로는 일하는 방식과 취업형태가 다양해진 노동 현실을 규율하기 어렵다”며 “고용형태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실질적인 근로조건의 개선방안을 찾는 실용적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노동소득의 분배구조를 개혁해 날로 심해지는 ‘노노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며 “기존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만으론 안 되며 노사정을 비롯해 하위노동, 영세상인, 시민사회, 언론, 정치 등 사회 대표 부문이 모여서 대타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민주·평등의 미명하에 학교를 획일화하고 교육을 ‘하향 평둔화(平鈍化)’해선 안 되며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공교육의 의무이자 기본 책무인 학생 기초학력 보장과 학력 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금 개혁도 발등의 불이라는 경고음이 나왔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경우에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후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전가시키면서 혜택을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연금제도의 불공정 정도를 완화시키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학수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국가가 재량지출의 통제를 통해 재정여력을 확보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의무지출 항목의 구조조정을 시도해야 한다”며 “또한 세입 기반 확충을 통한 미래재원 마련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원내 1·2당이 뽑은 대선 후보에게 국민은 ‘비호감도 50%’라는 낙제점을 줬다. 이는 후보 개인에 대한 비호감을 넘어 한국 정치와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와 불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세계일보가 정치학과 교수 등 전문가와 전직의원, 당직자들에게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물어본 결과, 1987년 이후 개선되지 않은 승자독식형 구조에 따른 정당시스템의 붕괴와 진영 간 대결구도의 반복, 민의를 받들기 어려운 정치인 공급시스템 등이 거론됐다. 여론조사·이미지 의존 정치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거기에 유튜브로 상징되는 개별적 정보 습득 증가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양극단의 정치를 심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는 통합이 아닌 분열의 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체적 개혁 없이는 대선 이후에도 분열과 대립의 정치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난달 16일 발표된 SBS-넥스트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57.3%),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61%) 모두 50%가 넘는 비호감도를 기록했다. 두 후보 모두 상대당 지지층 중 90% 이상이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진영 결집 결과다. 공교롭게도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당심’의 힘으로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정당과 민심 간 괴리는 그만큼 정당정치의 한계를 의미한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는 통화에서 “국민 모두의 포괄 정당이 되어야 하는데 그냥 당원과 지지자들의 정당이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정파적 이해관계로 주도권을 잡은 뒤 ‘51%’만 획득하면 모든 것을 가지는 승자독식형 구조가 정당은 물론 정치 내부 극단 투쟁의 악순환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야당 전직 의원은 “공적 대의에 맞게 의사결정을 하려는 사람들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연결고리로 뭉친 패거리의 집요한 공세를 당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극단적 대치의 반복에 따른 정당 시스템의 형해화는 좋은 정치인이 들어오는 구조 자체를 막아버렸다. 용인대학교 최창렬 교수는 “(정치가) 계층상승, 신분상승의 도구가 됐다”며 “국회의원직이 경제적인 이익이나 이해관계를 탐닉하는 자리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여당 전직 의원은 “직능단체에서 정치인을 공급받아도, 그 단체에서 존경받지 않는 사람들이 오기 일쑤”라고 탄식했다.
‘극단적 정치문화’로 상징되는 현행 정치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1987년 이후 35년째를 맞이하는 현행 헌법, 그에 따른 5년제 단임 대통령제·소선거구제와 왜곡된 비례대표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장 교수는 “최소한 현재의 극단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괜찮은 정치인’ 공급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현재 제도로는 보스 중심의 ‘줄 세우기 공천’이 아니면, 지방세력들을 무시할 수 없는 ‘호족 국회의원’밖에 탄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에 더 많은 권한을 주되, 특권을 폐지해 정치인들이 자연스레 의정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 교수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낮춰 경제적 특권을 노리는 사람이 아닌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맡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나 정당의 수준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결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금의 정치 풍토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어제는 10% 차로 한 후보가 이기고 내일은 또 다른 후보가 10%로 이기는 여론조사가 나오지 않느냐”고 말했다.
제도 개선이 아닌, 문화적 풍토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 원장은 “한국 정치에서 제도나 시스템에 집착을 하다 보니 정치를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의 심리상태에 둔감한 면도 있다”며 “정치심리학과 같은 문화나 트렌드를 연구해볼 필요도 있다. 대중의 심리나 국가 문화의 흐름 분석을 통해 해답을 제시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남은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 진영 간 대립을 넘어서는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문이 제기된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도덕성 검증도 필요하지만 남은 기간만이라도 코로나19, 일자리 문제, 경제성장 등 정책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당 전직 의원은 “이대로 가다간 ‘3월 10일’부터 나라가 더 쪼개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신년엔 외교·안보 현안의 중요성도 커질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북한 비핵화의 진전을 위해 차기정부가 취할 외교·대북 정책에 관심이 집중된다. 전문가들은 진영 논리에 갇힌 외교를 타파하고, 대북 관계에서도 실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백순 전 주호주 대사는 “국제사회가 대변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미·중의 갈등이 깊어져가는 현상은 우리 외교·안보에 최대의 도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비핵화도 큰 숙제이지만 북핵 문제가 우리 외교·안보의 자원을 지난 30여년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되어버린 상황”이라며 “더 이상 방치할 경우 국제사회의 미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통일 분야는 ‘기존 통일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개혁과제라고 할 수 있다”며 “남북 분단 이후 우리는 70년 넘게 통일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남북관계에서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고 평했다. 이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요인은 우리의 통일 노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접근이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통일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수렴하고 새로운 통일 방향에 대한 담론과 토론을 조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재의 통일 방안은 1989년에 마련된 안(案)으로 우리 사회 내에 다양한 통일 담론과 세대 변화가 발생했다는 배경에서다. 전 교수는 “미·중 간 전개될 각종 사안별 구도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협력하는 미·중 관계 대응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며 “한·중의 소통채널도 유지하면서 우리 입장을 선제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미·중 전략경쟁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한·미동맹은 장기간 유지해야겠지만, 한국이 더욱 큰 역할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동맹을 재조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센터장은 또한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비핵화’의 개념과 수준에 대한 공감대를 먼저 형성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되어 정교한 비핵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초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내실을 기하기 힘들었던 만큼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맹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 재정 등 각종 국가시스템에 대해 이와 관련한 경고음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현 제도의 구조조정과 더불어 새로운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민연금이다. 복지에 대한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생해 제도가 성숙하기도 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범위가 넓어진 탓에 미래 세대가 현재의 노인을 지탱하는 구조가 고착화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5년 단위의 재정계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때마다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만 키우며 장기 재정안정과 제도의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취지는 퇴색되고 있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은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GDP(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보장 지출이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국가”라며 “아직 다른 회원국보다 사회보장 지출 비중이 낮은 주된 이유는 일반 국민 대상의 연금제도가 늦게 도입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시점에서는 연금 수령자보다 납부자가 훨씬 많아서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빠른 인구 고령화를 거쳐 수령자가 대폭 늘어날 경우에는 OECD 평균을 얼마든지 상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청년 세대가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윤 회장은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들은 앞선 세대는 조금 부담하고도 많이 받지만, 후세대는 많이 부담하고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어 지속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제도”라며 “세대 간 불공평, 불공정을 이슈화해 이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과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연금재정 자동안정화(Built in stabilizer) 장치 도입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대학원장)는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된다는 것은 국민연금의 재정방식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된다는 의미이지 연금급여를 못 받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부과방식으로 바뀐다고 해서 국민 부담이 급증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연금기금 소진보다 오히려 국민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연기금이 초래할 위험을 줄이고, 2030년대 이후 연기금의 급격한 유동화로 인한 불안정을 상쇄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건강보험 재정 또한 같은 고질병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무제한적으로 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의 문제점을 우선적으로 제기한다. 유럽 국가 등 의료보장 국가에서는 의료 구매자를 환자 대신 보험자 혹은 재정관리자로 간주하고, 의료서비스 또한 필요도(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인구구조, 의료기술 등을 감안해 결정)에 따라 배분한다.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는 “의료제도뿐 아니라 세대 간 재분배가 이뤄지는 모든 복지제도를 파악해 개혁해야 한다”며 “고령화가 가장 빠른 국가에서 투표권이 없는 후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재정 전반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세수 확충과 재정지출 구조조정 등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하지만 두 가지 과제 모두 인기를 얻기 힘든 만큼 정부와 정치권 모두 꺼리는 사안이다.
김학수 한국연구개발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우리 국민은 세입기반 확충을 통한 재원 마련보다 현재의 재정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되길 희망한다”며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믿음을 먼저 심어준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정 여건이 녹록지 않아 세입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을 잘 설명해야 조세저항이 낮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아직은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것 자체가 문제”라며 “속도를 늦추기 위해 현재 재정지출을 구조조정하고 세수를 확충하는 것이 새 정부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정지출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확 늘어날 때 안정장치가 없다”며 “이를 위해 정치권에서 재정준칙을 마련하고, 행정부가 그에 맞춰 나라살림을 꾸려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 차원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금융 역할의 재정립도 과제로 떠오른다. 조영서 KB경영연구소장은 “금융의 역할이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인데, 가계부채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거품이 많이 끼고 있다”며 “자금공급에 집중하기보다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산업구조를 바꾸고 미래 성장 동력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등 우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는 빈부격차 완화와 사회통합을 위한 최우선 선결 과제다. 문재인정부는 이 과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격차 해소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기업 내 노노갈등을 부추겼고, 전 사회적으로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불공정 논란을 초래해 개혁 동력을 스스로 훼손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현 정부는 노동시장 문제해결방안으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될 것이라고 봤지만, 이런 이념적인 접근은 결국 갈등만 야기하고 실패로 끝났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접근법을 주문했다. 핵심은 ‘규제의 세분화·유연화’다. 비정규직의 전면 정규직화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노동제 전면도입과 같은 무차별적 규제를 지양하는 한편, 재택근무·플랫폼 노동 등 다양화하는 노동 형태에 대한 맞춤형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명수 한국노동경제연구원장은 “주 52시간 근로제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 50만개 창출한다는 문재인정부의 약속은 모순덩어리로 판명났다. 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줄인다면 기업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기업은 도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라며 “산업 특성에 맞춰 노동시간 단축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원장은 “과거 노동법은 국가가 근로감독을 통제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법 취지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사업장별로 노사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규율 대상을 기업 단위로 세분화하는 혁신모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방향성을 정책으로 구현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선결조건이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개혁 추진은 소모적 갈등만 야기한다는 것은 충분히 경험했다. 이병훈 교수는 “임금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임금위원회를 따로 꾸려 정책 집행을 해나갈 수 있도록 실권을 주는 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며 “관련 부처 전부와 노사가 참여해 새 정부 임기 내내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업 성취도는 낮아졌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대학은 경쟁력을 잃었고 학생들은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대가 됐다. 학생들이 안정 아닌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실패를 허용하는 혁신이 교육계에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교육계에 따르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2020년 고등학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분석한 결과 기초학력 미달인 ‘1수준’은 국어 6.8%, 수학 13.3%, 영어 8.6%에 달했다. 1년 전만 해도 국어 2.8%, 수학 4.5%, 영어 5.0%에 불과했던 숫자다. 출제자들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소개했던 2022학년도 수능이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수능 중 하나로 꼽히는 상황에는 이런 현실이 반영됐다.
공교육의 입시 영향력이 쪼그라들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시선은 사교육으로 향한다. 지난해 서울 초등학교 취학 대상 7만1100명 가운데 무려 6600명이 입학을 포기하거나 유예했다. 취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직업계고 학생들의 45.0%는 졸업 이후 취업이 아닌 대학에 진학한다.
장덕호 상명대 교수(교육학)는 “능력중심 사회라면 고졸이어도 취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자리가 대졸 수준 역량이 아니면 커버할 수 없는 수준까지 고도화되는 상황”이라며 “유럽의 복선형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초중고대로 이어지는 단선형 학제를 채택하다 보니 대학은 필수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학생들의 진학 경쟁은 뜨겁지만 고등교육 수준은 세계 하위권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세계 64개국의 대학 경쟁력 순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대학은 47위였다. 300위 내 한국대학은 2020년 9개에서 지난해 6개로 줄었다.
경쟁력을 상실한 대학의 학생들은 가장 얻고 싶은 직업으로 공무원을 꼽는다. 어린시절부터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도전보다 안정을 택했다는 의견이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모든 역량을 중앙으로 빨아올리는 추격형 산업화 사회 시스템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의장은 이어 “실패를 허용하지 않고 도전 없는 성공만 추구하는 산업사회의 관행은 소프트웨어 첨단형 경제와 지능정보 사회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교육풍토를 조성해 학습자가 주체적 앎으로써 나아갈 수 있는 교육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가 급하게 불러온 ‘뉴노멀’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더 높이고 세계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산업 각 분야에는 아직도 ‘손톱밑 가시’같이 발전을 저해하는 많은 규제가 도사리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가 꾸준히 ‘샌드박스’ 등을 통한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한시적 효과에 그쳐 분명한 한계를 노출한다는 평가다.
주유소 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 기준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친환경 미래차다. 하지만 전기차 상용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속도는 더디다. 전국 요지에 깔린 주유소를 활용하면 되지만, 여기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기존 주유기에서 1m 이상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이를 충족하더라도 캐노피(지붕) 아래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금지하는 규정을 또 피해야 한다.
자동차 무선업데이트(OTA) 장소를 제한하는 말도 안 되는 규제도 존재한다. 자동차가 전자기기화되면서 OTA 기술이 최근 각광받고 있는데, 국내는 이 같은 업그레이드도 차량 정비로 분류돼 정비소에서만 진행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테슬라 인기 이유 중 하나가 자율주행과 OTA다. 테슬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활용해 OTA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국내 제작사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안전에 관련된 부분만 오프라인을 통해서 업데이트하는 등의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에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이 많다. 2017년 드론, 2018년 3차원(3D)프린터,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으로 지정됐다. 이들은 대표적인 신산업 분야다. 이런 분야에 중견·대기업의 공공조달 참여를 제한해 외국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 3D프린터 분야 중국산 수입액은 2017년 569만달러에서 지난해 1023만4000달러로 80% 급증했다.
윤성로 4차산업위원장(서울대 공대 교수)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맥락적 규제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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