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끝>

중증 정신질환자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상에서 정신질환자를 본 적이 없어서일 테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아는 듯, 알지 못한다. 자주 접하긴 하지만, 대부분 ‘범죄사건 가해자가 알고 보니 정신질환자였다’는 식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정신장애 범죄자’는 전체 범죄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1%가 정신질환자 전체를 과대대표했고,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다.

그 시선이 정신질환 당사자를 숨게 한다. 주변에 발병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증상에 대해 설명하길 꺼리게 한다. 갈등이 두려운 그들은 그렇게 학교에서, 회사에서, 동네에서 주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고립된 채 지내며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31일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중증도 우울장애 등의 ‘중증 정신질환’ 진료 이력이 있지만, 2023년 병원에서 진료받지 않은 사람은 15만2006명에 달했다. 중증 정신질환 특성상 꾸준히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데, 치료를 중단하고 숨어버린 경우가 적잖은 것이다.

숨는다고, 숨긴다고, 병이 사라지진 않는다. 치료를 늦추고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인은 그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어머니는 아직도 딸의 상태를 제대로 몰랐던 게 한이라고 했다. “그때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못 했어요. 딸이 조현병 환자라는 걸 믿기가 싫었어요. 제가 약사인데도 딸을 몰랐어요.”

사실 당사자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중증 정신질환 진단 혹은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은 63만6532명에 달한다. 국내 인구(5132만5329명)의 1.2%로, 100명 중 1명꼴이다.

우리가 거니는 길에, 식당과 카페에, 어쩌면 매일 향하는 일터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함께 있던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건, 이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정신질환은 몸이 아픈 병과 다르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이들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8개월간 823건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84명을 만난 건, 그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세계일보는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 2명을 한 달간 집중 관찰했다. 8월12일부터 9월8일까지 4주간 매일 저녁 통화하며 그날의 애환을 들었다. 이들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네 삶이 다 그렇듯 말이다.

◆필요한 건 ‘위로’ 아닌 ‘이해’

고유선씨는 매주 화요일 ‘회복의공간 난다’ 에서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은 강의 중인 유선씨. 고유선씨 제공

냉탕에 10분, 온탕에 10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냉온욕은 고유선(32)씨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일과를 마친 뒤 목욕탕에 들러 냉온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유선씨가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기까진 5년이 넘게 걸렸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유선씨는 10년 전 조현정동장애를 진단받고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자신을 두 명의 다른 사람으로 느끼던 때도 있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 얼굴에 침을 뱉은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모두 유선씨가 경험한 망상과 환각, 즉 조현병의 ‘양성 증상’이었다.

약을 먹으며 양성 증상은 나아졌지만, 무기력해지는 ‘음성 증상’이 찾아왔다.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누워 있게만 됐다. 양치나 샤워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봤자 뭐해. 일도 못 하고 돈도 못 버는데. 살아서 뭐해.”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음성 증상을 해결해준 건 ‘파도손’ 같은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정신질환자의 치료 과정을 돕는 ‘절차조력 지원사업’ 단체다. 정신질환자 당사자가 다른 정신질환자를 상담해주는 ‘동료지원’, 당사자와 가족이 함께 대화적 치료를 배우는 ‘오픈 다이얼로그’ 수업 등을 진행한다.

유선씨는 이곳에서 지지받고 지지하는 경험을 했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유선씨는 매주 화요일 난다에서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하고, 일주일에 5일 정도는 파도손에서 미술 작업을 한다. 오랜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다 보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깊은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까 봐, 이상하게 볼까 봐 하지 못하던 말도 그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유선씨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그들이 좋다”고 했다. 증상에 대해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잠들기 전 꼬박꼬박 약을 먹긴 하지만, 유선씨는 여전히 50% 정도의 증상이 남아 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는 식이다. 누구를 만나도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다수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유선씨를 이해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유선씨가 느끼는 망상, 불안, 죄책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위로가 아니라 이해를 해줬다. 그리고 유선씨와 비슷하게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들으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선씨는 이들 덕에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규칙적 생활이 꾸준한 약 복용 도와

전현진씨는 매주 금요일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한다. 사진은 조현병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자조모임을 진행 중인 현진씨(가운데). 전현진씨 제공

서울 강북구에 사는 전현진(41)씨에겐 때때로 원인 모를 불안감이 찾아 왔다. 8월12일이 그랬다. 동료상담 지원이 일정대로 흐르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불안감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현진씨는 기존에 먹던 조현병 치료약에 더해 안정제를 두 알 함께 삼켰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현진씨가 이렇게 약물과 휴식 등으로 증상을 관리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도 파도손 영향이 컸다. 현진씨는 “일을 하게 되며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되니 약도 거부감 없이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출근 안 하고 더 자고 싶다.’ 오전 7시30분 눈을 뜬 현진씨는 ‘더 잘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이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기지개를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약을 먹는 것.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밖을 나서는 8시쯤이면 현진씨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약을 먹었는지 묻는 어머니의 잔걱정 없이도, 현진은 누구보다 약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병에게 제 삶의 주도권을 뺏긴단 걸 저는 알아요.” 그는 몇번이고 강조했다.

현진씨에겐 8년 전 겨울 조현병이 찾아왔다. 보험설계사로 6개월째 일하며 숱한 거절과 실패를 맛보던 차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병에 현진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위태로운 현진씨를 본 어머니가 입원을 권했다. 1년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병원 밖으로 나온 현진씨는 동료지원가 활동 덕에 약을 먹는 습관을 얻었다. 매일 출퇴근길 규칙적으로 약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진씨는 파도손에서 주 2~3회 동료상담 일을 한다. 현진씨처럼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다. 현진씨는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앞으로 펼쳐질 일주일간의 계획을 짜고, 지난 일주일의 상담 내용을 공유하는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현진씨는 옥상으로 가 식물 물주기를 한다. 월요일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나머지 화~목요일 일과 중엔 협약을 맺은 정신병원으로 가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금요일엔 파도손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한다. 6시 무렵 퇴근하면 스팸,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을 만들어 먹고, 다시 꼭 약을 챙겨 먹는다.

현진씨는 꼭 하루를 ‘NBA 2k24’라는 농구 게임으로 끝낸다. 다른 사람과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항상 혼자 한다. 난이도는 가장 쉬운 버전으로. 현진씨에게 농구게임은 작은 성공을 매일 맛볼 기회이자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다.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현진씨는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일자리가 너무 소중하다”며 “일상이 무너진다면 다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집중된 지원…”전국 확대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해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가 한목소리를 냈다. 유선씨와 현진씨가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던 것도 정신질환자가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이 있었던 덕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2018년 서울, 경기, 부산에서 시행되다가 2021년부터는 서울, 경기로 축소됐다. 수도권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2024년부터 전국범위 사업 확대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추진이 언제 실현될진 알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정신병원과 연계해 진행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연계할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석 관악동료지원쉼터 부센터장은 “한국은 정신질환 치료가 병원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탓에 조금만 증상이 악화하면 병원에 보내버리고, 당사자는 치료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회복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 중증 정신질환자도 유선씨나 현진씨처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

(4회) 입원하고 싶어도 병상이 없다

“나아지고 있는 게 맞나.”

2018년 5월, 이도현(40)씨는 일주일 만에 10㎏이 쪘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걷기는커녕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겨웠다. 눈을 뜨기가 어려웠고, 침이 입술을 타고 흘러 턱밑으로 떨어졌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이 겪는 약 부작용이었다. 증상이 악화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도현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 움직이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매점에서 커피를 사서 좁은 복도를 쉴 틈 없이 오갔다. 기상시간에 맞춰 오전 7시에 일어났고, 10시에 시작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성심성의껏 참여했다.

하루빨리 병원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였다. 서른넷 당시 도현씨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장롱면허 탈출’, ‘한자 1급 자격증’, ‘연애’. 입원 기간 동안 도현씨가 작성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는 37번까지 내려갔다.

이도현(40)씨가 2018년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쓴 일기장에 병원생활의 일과표와 퇴원 후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 적혀 있다. 이도현씨 제공

입원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도현씨와 달랐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도현씨 옆 병상을 쓰던 중년의 여성은 한 달이 넘도록 샤워를 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온 지 몇 년 됐을 거야.” 여성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이 그 세월을 증명하는 듯했다.

10년 넘도록 병원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한 50대 남성은 퇴원하면서 병원에 짐을 두고 나갔다. 나갈 때부터 돌아올 생각을 한 것이다. 병원 밖에 자신의 집이 없고 가족마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딱 병동 문앞까지였다.

도현씨는 기자에게 자신의 정신병원 경험담을 전하며, 장기입원 환자들을 안타까워했다. 정신병원 입원은 ‘단시간에’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사회와 단절되고, 장기화하면 사회 복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정신병원 ‘장기입원’의 나라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3개월 이상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한 환자는 1만9756명이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10만4849명)의 18.8%에 해당한다. 장기입원자가 많은 탓에 한국 정신병원 평균 재원기간은 186.6일(2021년 기준)에 달한다. 조현병 등 망상장애 환자만 놓고 보면 194.7일로 더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로, 2위인 스페인(81일)의 2배가 넘는다.

 

세계일보는 정신병원 입원을 경험한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가족 15명, 의료진 12명을 만나 정신질환자 치료의 현실을 들었다. 정신병원이 퇴원하지 못하는 장기입원자의 ‘집’이 된 사이, 정작 치료가 시급한 정신질환자는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집에 머물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급성기 환자는 입원 못해 불안

“병상이 없대요.”

고정훈(가명·60대)씨는 지난해 8월 밤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날 밤 그는 ‘턱’하는 둔탁한 낙하음을 듣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머리맡에는 따지 않은 참치캔이 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들 고준형(가명·33)씨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형씨가 조현병 치료약을 멋대로 끊은 지 몇 주쯤 지난 때였다. 준형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삽시간에 병세가 악화하곤 했다. 미국, 일본, 국가정보원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그럴 때면 골프채로 집안 물건을 부수고 폭언을 쏟아냈다. 더 심한 행동을 보이기 전에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켜야 했기에 정훈씨는 급히 경찰을 불렀다. 집에 도착한 경찰관은 정신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번번이 “병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훈씨는 환청에 시달리며 발버둥치는 준형씨와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 졸이길 2시간. 준형씨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은 뒤에야 정훈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최근 입원이 너무 어려워졌어요. 병원들이 다 병상이 없다면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해요. 외래진료를 갈 수 있을 정도의 환자는 애초 급성기가 아니어서 입원이 필요 없는데….”

고정훈(가명·60대)씨를 9월10일 서울 금천구 안양천변에서 만났다. 고씨는 “최근 정신병원 입원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이제원 선임기자

준형씨처럼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급성기’ 환자는 의료진이 24시간 지켜보고 출입에 제한이 있는 보호병동(폐쇄병동)에 입원하는데, 병동 병상이 계속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보호병상은 5만4427개로, 2014년(6만3324개) 대비 8897개나 감소했다. 비율로는 14.1%, 즉 7개 중 1개꼴로 사라졌다. 특히 전공의들이 집단이탈한 2월 이후 보호병상 감소세가 심화했다. 전공의들이 수련받던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의 보호병상은 2월 796개에서 3월 759개로 줄었고, 6월에는 734개까지 감소했다. 병원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보호병상 수를 904개로 신고해 두고 암암리에 병상 가동을 줄였다.

◆돈 잡아먹는 보호병상… 폐쇄 1순위

“병원장은 정신과에 병상을 주고 싶지 않겠죠.”

손지훈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집행부는 경영이 악화하면 정신건강의학과부터 찾는다. 정신과가 ‘돈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원가보전율은 55%로 상급종합병원 진료과목 중 가장 낮다. 100원을 들여 환자를 치료했을 때 건강보험과 환자로부터 받는 돈은 55원에 그친다는 의미다.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정부가 올해 보호병동 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 등 수가를 올려주긴 했지만, 병원은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병상 간 이격거리를 늘리면서 수용 환자 자체가 줄어든 데다, 기존에 있던 입원료 가산을 폐지하면서 생긴 손실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서도 급성기 환자가 입원하는 보호병동은 특히나 골칫거리다. 법적 문제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서다. 증상이 심한 급성기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하는 일도 있고, 환자가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강박했다가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증상이 심각한 급성기 환자와 안정적 상태에 있는 만성기 환자의 진료수가 차이는 미미하다. 병원의 수익구조에도, 진료를 보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급성기 환자를 반길 이유가 없다.

의사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1곳은 아예 보호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 11곳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를 경험하지 못한 채 수련과정을 마치게 된다. 강등현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형정신응급의료센터장)는 “보호병동이 없는 수련병원에 있었던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의 입원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을 마친 뒤에도 보호병동이 있는 병원을 기피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급성기 수가 올리고, 만성기 환자 퇴원시켜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복지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난도가 높고 자원 투입량이 많은 급성기 진료 특성에 맞춰 진료수가를 개선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참여기관은 7월 기준 42곳에 불과했다. 전국에 있는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4곳만 참여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계속해서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평가 연구용역을 진행한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금 수준의 수가 인상으로는 적자를 면하지 못해서 그래요.”

수가 보상을 강화해 급성기 환자 입원을 받게 유도한다는 게 사업 취지인데, 병원은 수가 인상분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의 사업 참여 조건을 맞추려면 병원이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전문의를 환자 60명당 1명꼴로 두고 있는데, 사업에 참여하려면 전문의를 3배(환자 20명당 전문의 1명)로 늘려야 한다. 늘어나는 인건비에 비해 보상 수가가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선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급성기 환자 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급성기와 만성기 병동을 구분해, 급성기 환자의 입원료를 일반 입원료의 2.5배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권준수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도 급성기 수가를 조정해 보호병동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입원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만성기 환자가 조속히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다. 치료 의지를 갖고 증상을 관리하는 만성기 환자는 지역사회에 살며 외래진료를 받게 하고, 그들이 있던 병상을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자·타해 위험이 큰 급성기 환자가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병철 한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전체 병상 수는 절대 적지 않지만, 만성기 환자의 병상이 많다”면서 “이들이 퇴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급성기 환자 치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퇴원환자 재입원 않게 전문가가 점검… ‘사례관리’ 확대를

오석진(가명·20대)씨는 지난겨울 전남 한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피워 경찰에 의해 국립나주병원에 응급입원됐다. 상태가 호전돼 이내 퇴원했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부모는 석진씨가 가만히 집에 있는 모습을 두고 보지 못했다. 나가서 취직이라도 하라며 채근했다.

이때 국립나주병원 ‘사례관리’팀이 개입했다. 가정방문을 나온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부모를 설득했다. “약을 이전보다 잘 먹고 있는데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이릅니다. 아드님은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다.” 석진씨의 부모는 “그럼 나가서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하고 와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석진씨도 점점 약의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년 후, 석진씨는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례관리란 정신질환으로 인해 일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곁에서 외래방문점검, 투약관리, 가족교육 등을 진행하며 재입원을 막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신건강서비스다.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를 주로 담당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세가 안정돼 퇴원하더라도 스트레스 상황이나 약 부작용 등으로 약 먹기를 포기해 다시 입원하는 사례가 많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4명 중 1명(26.4%)은 2개월 내 다시 입원했다. 그들의 가족들과 의료계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유지’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이유다.

실제로 사례관리는 환자의 지역사회 복귀에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부에서 지난해 반년(6~11월)간 시행한 사례관리 기반의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시범사업 대상자는 한 달 내 재입원율이 10.8% 감소했고, 퇴원 후 3개월 내 외래치료유지율이 11.7% 상승했다.

문제는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거부하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이들을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52조는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사람이 퇴원할 때 이를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도록 규정했는데, 환자 본인 동의가 필수다.

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장애 등록자 수’는 10만4197명이었지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8만44명에 그쳤다.

당사자는 낙인을 걱정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을 돕는 ‘가족지원가’로 활동 중인 노은영(64)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면 정신질환 진단 사실이 동네에 알려질까 봐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시선이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의 ‘급성기 수가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병원에서도 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6개월간 사례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례관리 기간이 짧고, 수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원을 통한 사례관리가 더 긴 시간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처럼 퇴원 환자로 제한하지 말고 증세가 악화해 입원하기 전에 사례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 단기간 의료비 상승이 부담될 수 있겠지만, 재입원하는 환자들 돌보는 데 투입되는 의료비를 고려하면 장기적으론 경제적인 투자”라고 강조했다.

김나현·윤준호·조희연 기자

(3회) 가정파괴 부르는 ‘보호의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기억이 있다. 16년 전이지만 이정하(53)에겐 37살의 6월20일이 그렇다. 새벽 5시 무렵 어렴풋이 눈을 뜨니 언니, 오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쟤 정신병원 보내자.” 이내 짙은 곤색 상의를 맞춰 입은 건장한 체격의 남성 2명이 나타났다.

“이정하님? 가시죠.” “누구신데요?” “가보시면 압니다.” 의문의 남성들이 정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155cm에 47kg의 왜소한 체격의 정하가 사정없이 끌려갔다.

정하의 형제들은 환자복 차림으로 사정없이 끌려가는 동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1층엔 구급차 모양의 사설이송단 차량이 서 있었다. 뒷좌석에 밀려들어 간 정하는 꼼짝할 수 없었다. 눈앞엔 철창과 방탄유리. 손목엔 남성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빨갛게 부어올랐다. 두려움, 모멸감, 수치심. 한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1시간을 달렸을까. 도착한 곳은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의 한 정신병원. 정하는 영문을 모른 채 안으로 끌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정실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 무렵 정하는 “죽음으로 널 증명해봐”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입원 생활은 한 달간 이어졌다.

정하는 이 같은 강제입원을 2000년부터 총 8차례 겪었다. “매번 개처럼 끌려갔어요.” 가족에 대한 원망감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왜 날 버리느냐. 다시 한 번 그러면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겠다.” 가족에게 상처란 걸 알면서도 비수를 꽂았다. 끝내는 가족과 의절을 택했다. 서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과거를 떠올리는 정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족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건 알아요. 전 통제불능이었고 가족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국가가 모든 걸 보호자에게 맡겨 놨으니깐. 그래도 강제입원은 학대예요. 한 번이라도 겪으면 죽을 때까지 못 잊어요.”

정하의 사례와 같이 정신질환 당사자의 동의 없는 입원이 매해 약 3만 건씩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신 의료기관에 비자의입원 환자 수는 3만1459명에 달했다.

29일 세계일보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그들의 곁을 지키고 사는 가족 1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당사자들은 한목소리로 입원 과정에서 맛본 굴욕감과 공포감을 털어놨다. 가족을 향한 원망이 짙게 묻어났다.

그렇다면 비자의입원(강제입원) 결정을 내린 그들의 가족은 악마였던 걸까. 가족들은 강제입원이 막다른 길에 놓인 마지막 선택지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가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긴 탓이다.

◆‘악마’가 될 수밖에 없던 가족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최성희(가명·60)의 눈에 훤했다. 7월 초 성희의 아들 김지훈(가명·30)은 온종일 우두커니 서서 알 수 없는 말을 계속했다. 잘 차려진 밥상을 두고 “이게 쓰레기지. 음식이냐”며 국그릇을 엎는 것은 기본이고, 행인과 시비가 붙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 날도 잦았다.

모두 아들 지훈이 약을 끊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증상들이었다. 6년 전 조현정동장애가 발병한 지훈은 약을 먹으면 일상을 잘 살다가도, 약을 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드러났다. 183㎝ 키에 100㎏이 넘는 거구의 지훈이 날뛰기 시작하면 성희와 그녀의 남편은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지훈에게도 약을 끊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약이 독극물 같아.” 약을 처음 먹기 시작했던 때, 지훈은 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손목이 뒤로 꼬인 채 흔들렸고, 눈코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지훈은 참아냈다. 꼬박 5년,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약을 한주먹씩 먹으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하지만 4월 퇴원 뒤엔 매주 약을 50mg씩 줄이더니 결국 완전히 약을 끊었다.

단약은 비상 신호였다. “아들을 범죄자 만들고 싶지 않으면 따로 사세요.” 지훈이 집안 물건을 부숴 경찰을 부른 날, 출동한 경찰관은 생활공간을 분리하라고 조언했다. 성희는 지훈의 손에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혼자 남은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게 걱정됐다.

20여 번의 입원 과정을 거치며 성희는 알게 됐다. 증상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치료해야 했다. 아들에게 입원을 얘기하면 그 큰 덩치의 지훈은 “입원시키지 말라”며 애원했다. 그때마다 성희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지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성희는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이 원치 않는 입원을 반복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요. 그래도 치료를 받아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잖아요.” 

정하와 성희처럼 가족이 강제입원을 둘러싸고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건 국가 탓이 크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비자의입원(타인이 결정한 입원)은 행정입원과 보호입원으로 나뉜다. 행정입원은 자·타해 위험이 의심되는 대상자에 대해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장이 신청해 전문의 진단을 거쳐 진행된다. 보호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하에 소속이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이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입원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 가능하다. 이때 보호입원을 결정하는 ‘보호의무자’란 민법상의 부양의무자 또는 후견인, 즉 가족을 의미한다. 

증상이 악화한 정신질환자에 대해 지자체장 혹은 가족이 입원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인데, 지자체가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행정입원을 진행한 공무원에 대한 민원과 고소·고발 등을 우려해서다. 2022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비자의입원(2만9195건) 중 보호입원이 2만2906건(85%)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보호의무자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가족에게 입원·치료의 책임을 모두 떠맡긴 셈이다. 

◆‘미완의 해결책’ 사법입원제

국가가 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정신질환과 연관성을 보인 흉악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법무부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입원제도를 개선하겠다며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보건복지부를 필두로 법무부·경찰청·소방청이 참여한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개선 TF’는 지난해 8월부터 비자의입원 제도 개선안을 논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복지부 TF 논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TF는 단기적으론 현행 지자체장·가족으로 국한된 ‘입원신청권자’에 정신건강복지센터장과 의사 등을 포함해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족이 떠안고 있던 입원신청의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취지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은 “해외에선 입원신청 권한을 모든 의사는 물론 공무원, 교사, 사회복지사 등 매우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며 “입원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보호의무자로 한정한 부담을 완화할 필요는 있다”고 평가했다.

TF는 중장기 계획으론 사법기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입원 과정에서 국가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결정주체 변경 및 입원요건 유연화 △재판청구권자 별도 규정 △공공이송체계 구축 △입원·연장·퇴원 결정에서의 환자 권익보호 강화 등 크게 4가지를 검토했다.

복지부는 “현행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입적심)의 심사기능을 ‘법원에 이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입적심이 강제로 입원된 환자를 우선 조사해 입원 연장이 합당한 경우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고, 법원이 ‘입원적합성을 최종 판단’하는 식이다.

이는 환자의 치료를 위한 인신구속 여부를 ‘공식 절차’를 통해 결정받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입원 여부를 가족이 일차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병식(병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당사자들은 가족을 원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TF는 인권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절차조력인이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하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다만 TF는 법관 부족 문제 등의 현실을 고려해 ‘심판원’ 등 정신건강 전문성을 갖춘 준사법기관을 도입하는 방안 역시 대안으로 검토한다.

논의 방향은 좋지만, 진척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입원제는 2018년 ‘임세원 교수 살해 사건’, 2019년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으로 정신질환자 치료 사각지대가 드러날 때마다 논의가 급물살이 타는 듯했으나, 판사 증원 한계 등 현실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이번에도 TF 결과 보고선엔 10월 중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전문위)를 구성해 TF 결과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10월이 다 가도록 전문위는 구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남 의원은 “비자의 입원에 대해 환자가 입원과정에서 권리를 인지하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절차조력인제도를 확대해야 하고, 환자 인권 차원에서 사법입원제 도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며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회복과 재활이 가능하도록 동료지원과 가족지원을 늘리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가족 옥죄는 ‘보호의무자’ 법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사법입원제 도입을 반기면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자에 대한 ‘가족의 보호의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보호의무자의 의무)에 따르면,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 및 요양과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은 가족에게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인지하고 병원에 데려갈 책임을 넘어, 환자가 타인에게 가하는 물리적, 재산적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부여한다.

실제로 재판부는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문제에 대해 그들의 보호의무자에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있다. 2021년 대법원은 양극성정동장애가 있는 아들이 인천에서 낸 화재사건에 대해 보호의무자인 아버지가 155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는 A의 보호의무자로서 A의 동태를 잘 살펴 방화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우발적인 행동이 있더라도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전후로 장애계나 학계에선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가 논의됐지만, 변한 건 없었다. 가족에게 전적으로 돌봄 책임을 떠맡기는 현실이 관련 조항이 제정된 1995년부터 29년째 지속돼 온 것이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국가는 정신질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의무자 제도’를 뒀겠지만, 한편으론 가족을 옥죄는 하나의 쇠사슬이 됐다”고 꼬집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보호의무자의 책임을 경감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한다”며 “향후 입원제도 개선 등 국가책임 강화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 돌봄 가족 38% 우울장애

#. 조현병이 있는 31살 아들을 돌보고 있는 유숙희(가명·61)씨는 아들의 입원과 동시에 수학 교사 일을 관뒀다. 숙희씨는 “항상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스트레스는 곧 신체 이상도 불러왔다. 그는 “처음엔 주부습진이었는데 점점 심해져 지금은 손발이 다 갈라졌다”고 했다.

#. 김은순(가명·50대)씨는 20대 딸의 조현병 발병 후 미술 활동을 접었다. 그는 “20~30대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대개 50~60대”라며 “한창 사회생활할 나이지만 아이에게 언제 투입될지 몰라 정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성취감을 포기하고 남은 건 고립감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증 정신질환자 가족은 오늘도 입·퇴원, 복약관리 등 ‘보호자의 굴레’ 속에서 노심초사 환자 곁을 맴돌고 있다. 2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한 정신질환 당사자의 부모 13명과 형제 2명은 쳇바퀴 같은 돌봄노동 속에서 일도, 삶도 사치가 돼 버렸다고 고백했다. 이들에 대한 정서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가 4월 발간한 ‘정신질환자 및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족 995명 중 61.7%는 환자를 돌보는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가족 절반 이상(57.5%)이 환자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을 고백했고, 10명 중 4명(38%)꼴로 우울장애를 보였다. 이는 일반 국민의 우울장애 유병률(남성 3.9%, 여성 6.1%)보다 6~10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또 정신질환자를 돌보느라 일상을 포기하거나(39%) 구직 활동을 단념한 이들(38.6%)도 다수였다.

가족들은 ‘가족지원가’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지원가는 상담 등을 통해 정신질환자 가족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 이들이다. 이들 또한 정신질환 당사자 가족인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받은 양성교육과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되찾은 미소  가족지원가 활동을 통해 조현병이 있는 딸 고유선(32·왼쪽)과의 관계를 회복한 노은영(64)씨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노은영씨 제공

조현정동장애 10년 차 30대 딸이 있는 노은영(64)씨는 2년여 전 가족지원가를 만나고 삶이 180도 달라졌다. 2015년 딸이 처음 발병한 후, 병식(병에 대한 자각) 없는 딸을 입원시키려 사설 구급차도 불러보고, 안 먹겠다는 약도 억지로 먹이며 24시간을 딸에게 쏟았다. 운영하던 약국도 접었다. 은영씨는 이 시간을 회상하며 “모든 게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지원가를 만난 뒤, 은영씨는 딸과 소소한 대화도 나누고 자조모임도 함께 가며 일상을 회복하게 됐다. 가족지원가가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정신장애인 등록’을 하는 것도 알려줘 필요한 정보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서울 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가족지원가’로 활동하며 한 달에 두 번씩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족을 돕고 있다.

문제는 가족지원가 사업이 수년째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2021년부터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가족지원가 양성에 나섰지만, 여전히 25개 자치구 중 6개(강서·금천·성동·은평·종로·중)구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활동 중인 가족지원가는 11명뿐이다. 가족지원가 보상은 최저시급 수준으로, 사실상 자원봉사처럼 운영되는 탓에 지원자가 적다. 은영씨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가족지원의 핵심”이라며 “가족지원가 예산 확대가 간절하다”고 말했다.

김나현·조희연·윤준호 기자

(2회) 치료 없이 돌아온 가해자

“징역 3년6개월의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다.”

17일 수원고등법원 801호 법정. 아내 정명주(60대·가명)씨와 함께 방청석에 앉아 있던 강태진(가명)씨의 아버지 강용석(60대·가명)씨는 판사의 선고에 침통한 표정이었다.

‘감형을 원한 게 아닌데….’

용석씨가 충혈된 눈으로 검사를 한참 주시했다. 명주씨는 말 없이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를 훔쳤다. 보통의 부모라면 아들의 감형을 기뻐할 텐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용석씨와 명주씨는 이날 선고에 앞서 치료감호를 청구해 달라며 2심 재판부와 검사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치료감호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교도소에서 약물치료가 전혀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형기 동안 강제로라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감호를 청구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공판 내내 ‘치료감호’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태진씨는 2014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데, 약을 잘 먹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무기력해지고 잠이 쏟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명주씨가 타이르면 마지못해 약을 먹다가도 환청 증상이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약을 끊는 일이 10년 동안 반복됐다. 약을 끊은 지 한 달 무렵인 5월15일 새벽, 태진씨는 느닷없이 칼로 명주씨를 찔렀다. 그날 명주씨는 아들이 휘두른 칼에 목숨을 잃을 뻔했고, 태진씨는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명주씨는 다친 자신보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들이 항상 더 걱정이다. 태진씨는 면회할 때마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상한 말을 했고, 환청이 들린다고 했다. 약도 전혀 먹지 않고 있었다. “약 색깔이 바뀌었다”거나 “엄마가 약으로 날 죽이려고 한다”고 했다.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태진씨의 경우처럼 자녀가 부모를 해한 사건에서 정신병력 진단이 나와도 법원이나 검찰은 치료감호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28일 세계일보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이 중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1심 기준)을 살펴본 결과 상급심까지 치료감호가 청구된 경우는 59.7%(126건)에 그쳤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치료받을 여건이 안 된다면 국가가 보호하고 치료할 필요성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치료감호는 심신장애 상태, 마약류·알코올 등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 상태 등에서 범죄행위를 한 경우, 검사가 청구해 법원이 보호·치료를 명령하는 조치다. 치료감호 대상자는 교도소가 아닌 국립법무병원에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을 받게 된다. 망상 등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의료진이 수용자를 관리·감독하며 약물 복용을 확인해 강제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추가 조처를 할 법적 권한이 있다.

반면 교도소에서는 수감자가 약을 먹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 의사가 아닌 교도관이 이들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증상이 악화한 수감자는 다른 수감자와 마찰을 빚기도 한다.

태진씨 역시 망상이 심해지면서 다른 수감자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한 번은 용석씨와 명주씨가 면회를 신청하고 교도소에 찾아갔는데, 태진씨는 독방에서 징계받고 있어 만날 수 없었다. 수감 이후 지금까지 그가 받은 징계는 가족이 확인한 것만 최소 2번이다.

또 교도소는 일부 정신질환 약물 반입이 금지돼 치료에 제약이 있다. 명주씨와 용석씨는 경찰 입회 아래 정신과 병원에서 아들이 먹던 약을 대신 처방받아 넣어주려 했는데, 일부 향정신성 약은 반입이 되질 않았다.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한 중증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립법무병원에서 근무했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치료 없이 교도소만 다녀오면 정신병적 증상은 이전과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치료감호 청구, 솔직히 귀찮다”

치료감호가 내려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검사가 이를 청구하지 않아서다. 현행법상 재판부가 검사에게 치료감호를 청구 요청할 순 있지만, 검사의 청구 없이 직권으로 명령할 수는 없다.

검사가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 똑 부러진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태진씨 사건의 치료감호 불청구 사유에 대해 2심 공판검사는 “피해자가 치료감호를 요구했다고 하지만, 어차피 다 (피고인의) 가족”이라며 “통상적인 범죄 피해자라고 보기 어려워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조처를 요청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검사는 “치료는 앞으로 받으면 되는 것이고 치료감호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정신질환자의 심신미약 인정에 대해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검사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인 이유로 꼽힌다. 수도권 한 지방검찰청 소속 공판검사는 “솔직히 귀찮다”며 “치료감호 청구는 청구 전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이 오래 걸리고 심신미약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어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국립법무병원이 교도소보다 나을 거란 인식 탓에 치료감호 명령이 마치 정신질환을 이유로 피고인을 봐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가 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치료감호를 청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상급심에서라도 치료감호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판단은 잘 바뀌지 않는다.

최근 10년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1심 사건 211건 중 항소심이 있는 146건을 살펴본 결과, 원심에서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았다가 2심에서 청구한 경우는 93건 중 14건으로, 비율로 따지면 15.1%다. 법률심인 3심에서 청구된 경우는 없다.

조현병 약을 먹지 않다가 망상에 의해 모친을 살해한 피고인 변호를 맡았던 이종진 법무법인 트리니티 변호사는 “1심 재판부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치료감호 청구를 요청했음에도, 검사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2심에서도 치료감호 명령을 주장했지만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이 사건 자체가 치료를 받으라는 부모와 다투다 벌어진 사건인데,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는 것은 법원의 명령으로 강제 치료가 가능한 기회를 날리게 되는 것”이라며 “치료감호를 받으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다른 수감자나 출소 후 가족의 안전도 보호될 수 있는데, 국가가 범죄 예방을 위한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범죄 전체를 놓고 봐도 검찰은 치료감호 청구에 소극적이다. ‘2023년 검찰연감’을 보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건수는 2020년 65건, 2021년 78건, 2022년 93건에 그쳤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정신장애’가 있는 전체 범죄자는 연간 5000∼9000명 수준이다.

◆치료 뒷받침할 시설도 부족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감호 명령을 검사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것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치료감호가 적극적으로 청구되지 않는 까닭으로 박주영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은 ‘자리 부족’을 꼽았다. 그는 “형사사법 종사자들의 치료감호나 치료 사법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이견도 큰 요인”이라면서도 “심각한 결과가 발생한 사건이 아니면 검찰이 치료감호를 청구하지 않고, 법원도 치료감호 명령을 하지 않는 이유는 국립법무병원 자리가 부족한 이유가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교도소에서도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환자의 회복을 돕는 양질의 치료를 위해서는 치료감호소 인력의 적극적 확충이 있어야 한다”며 “당장 인력 확충이 어렵다면 교도소 내 위탁 의사를 늘리고 필요한 경우 교도소에서 일반 병원으로 연계전환 하는 등 교도소에서도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정신질환이 있는 교도소 수감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는 인식 탓에 공감대가 모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재범 방지를 위해서라도 국립법무병원과 교도소 등에서 이뤄지는 정신질환자 치료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주씨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교도소 내 치료다. 검사의 치료감호 불청구는 상고 이유에 해당하지 않아 더 이상 법원의 판단은 기대하기 어렵다.

2심 선고 이후 명주씨네 시간은 멈춰 있다. 명주씨는 그리운 아들의 옷을 방문에 걸어놓고 냄새를 맡는다. 최근 혼잣말도 늘었다.

“치료받고 나와라, 제발 낫고 돌아온나, 낫고 오면 우리 재미있게 살자. 너를 위해서 내가 죽을 수만 있다면, 나는 괜찮은데 어떻게 하면 좋니, 어떻게 하면 좋니.”

존속살해·미수 보호관찰 명령 18%뿐
치료감호 받아도 60% 다시 병원 입원
“관찰관 확충해 日처럼 적극 관리해야”
 

정신질환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출소 이후 치료 관리가 사실상 가족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세계일보는 최근 10년간(2014∼2023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이 중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인정된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1심 기준)을 살펴본 결과 상급심에서까지 보호관찰이 청구되지 않은 경우가 82.5%(174건)에 달했다.

보호관찰은 피고인의 재범 방지를 위해 보호관찰관이 치료 기록을 확인하거나 위험한 물건 소지 여부를 감시하는 등 관리·감독하는 제도다. 징역 형기를 마친 출소자가 지속해서 치료받도록 법원이 명령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원이 보호관찰을 내리지 않는다면 피고인에 대한 치료관리의 책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된다.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해자인 가족이 다시 피고인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2021년 인천에서는 한 남성이 과거 중증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범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도 출소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다가 엄마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이전에도 엄마를 폭행해 특수존속상해죄와 존속상해죄로 불구속기소된 상태였다. 그는 피해망상이 심해진 상태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함께 살던 엄마를 때려 숨지게 했다.

가족들은 치료관리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피고인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 법무부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치료감호가 종료된 수용자의 60%는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가족이 피고인을 돌볼 수 없다고 판단돼 정신병원에 행정입원된 비율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신질환이 범행에 영향을 미친 경우 출소자의 치료를 지역사회에서 보호관찰관이 적극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범행에 이른 만큼 가족에게만 맡겨둘 순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영렬 국립법무병원장은 “일본은 출소한 정신질환자를 가족에게 맡겨 놨다가 효과가 없어 바꾼 것인데, 한국도 가족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보호관찰관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호관찰관이 부족한 점은 법원이 보호관찰을 명령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관찰이 내려진 사건은 17만7540건을 기록했다. 보호관찰관(1861명)이 1인당 담당하는 사건은 95건에 달했다.

나아가 보호관찰관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법원의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지더라도 보호관찰관이 관리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70대 정모씨는 아들을 집에 두고 외출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아들은 5개월 넘게 약을 먹지 않고 있다. 기자가 만난 정씨는 약을 먹지 않아 망상 증상이 시달리던 아들이 흉기를 휘두른 그날의 악몽이 재연될까 불안해 했다. 법원은 징역형과 함께 정기적으로 정신과 진료 및 상담을 받으라며 보호관찰을 명령했지만, 나이 든 정씨가 이를 지키지 않는 40대 아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법무부는 보호관찰관 인력이 부족한 건 맞지만 출소 후 보호관찰에 대해선 최우선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기적 진료 및 상담 명령이 내려지는 경우 매월 진료확인서를 제출받는다”며 “약물 복용을 강제할 필요가 있을 땐 법원에 특별준수사항 추가변경을 신청해 정기적으로 복용 여부를 검사한다”고 밝혔다.

윤준호·김나현·조희연 기자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2024년 기획한 시리즈물

(1회) 아무도 몰랐던 시그널

“아빠 사망보험금 10억 내놔!” 2023년 11월27일 한밤의 평온을 깨는 난데없는 고함이 날아들었다. “아빠가 죽었어? 뭔소리야.” 박미정(가명·52)은 잠을 떨치며 대답했다. “아빠 죽었을 때 받은 10억 달라고!” 문밖에 선 이현우(가명·27)가 외쳤다. “엄마 내일 일찍 일 간다니까 왜 그래.” 미정은 고단한 몸을 일으켜 앉았다.

‘휙’. 둔탁한 마찰음이 허공을 스쳤다. ‘퍽’ 소리와 함께 미정은 천천히 이마를 타고 흐르는 검붉은 피의 감촉을 느꼈다. 귓속에선 골이 웅웅대는 소리가 났다. 미정은 직감했다. ‘아,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미정은 현지(가명·26)를 밀쳐 깨웠다. 대학생이 돼서도 항상 제 엄마 곁에서 자는 딸이었다. “현지야, 도망쳐.” 뒤이어 현우의 팔이 두 차례 더 허공을 갈랐다. 30㎝ 크기의 망치 뒤편 못 뽑는 용도로 갈라진 쇠지레가 미정의 머리로 턱, 턱 내리꽂혔다. 미정은 흐려지는 정신을 붙들었다. 침대 곁 현우를 부둥켜안아 봤지만 173㎝ 체격에 몸무게 80㎏ 중반을 육박하는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깬 현지가 오빠 현우를 힘껏 밀었다. 툭, 망치가 떨어졌고, 이내 미정과 현지, 현우가 뒤엉킨 심야 난투극이 벌어졌다. “그래, 10억 줄게. 가자.” 미정과 현지가 현우를 거실로 떠밀었다. 재차 덤벼드는 현우에 맞서 미정이 외쳤다. “현지야 급소를 쳐!” 거센 저항에 현우가 떠밀리듯 문밖으로 도망쳤다. 곧장 현지가 경찰을 불렀다. “살려주세요. 엄마가 피범벅이에요.”

불을 켜자 피로 붉게 물든 미정의 얼굴이 드러났다. 당장이라도 혼절할 듯 정신이 아득해지던 미정은, 엉엉 우는 현지를 보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미정이 피를 씻으며 수없이 되뇌었다. 군데군데 파인 이마를 지혈하는 수건 실올 가닥을 타고 새빨간 피가 빠르게 번졌다.

이내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장 경찰은 “근처 골목에 현우씨가 있었습니다. 현우씨도 본인이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신고를 했네요”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병원에 실려간 미정의 이마는 부분부분 5곳이 찢어져 있어 도합 14바늘을 꿰매야 했다. 

 

‘사망보험금? 그게 무슨 소리지.’ 현우, 현지의 아빠는 죽지 않았다. 10여년 전 아이들이 초등생이던 시절 그의 고약한 술버릇에 못 이겨 도망치듯 이혼하고 나온 뒤 마주친 적은 없지만, 경찰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했다.

현우는 며칠 뒤 구속돼 유치장에 수감됐다. 재판 중 국립법무병원에서 한 달가량 이뤄진 정신감정 결과, 현우는 ‘조현병’(망상, 환각, 인지 저하 등의 특성이 나타나는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 모든 건 미정이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비극을 맞닥뜨린 건 미정의 가정뿐일까. 그렇지 않다. 전국에서 매년 20건이 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자신을 돌봐온 부모를 해하는 사건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27일 세계일보가 지난 10년간(2014∼2023년) 있었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1심 판결문 386건을 전수 분석해 확인한 결과다. 이 중 재판부가 정신질환의 영향을 인정한 경우가 211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부모나 조부모 등을 살해했거나 살해하려 한 범인 중 54.7%가 정신질환자였다는 의미다.

몇 달이 지나도 미정에게 그날의 기억은 지난밤 악몽처럼 생생했다. ‘내가 악마라도 낳은 걸까.’ 하지만 미정의 기억엔 현우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여전히 또렷했다.

 

현우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엔 늘상 ‘성실하고 예절 바름’, ‘공공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착한 아이’란 평가들로 빼곡했다. 함박눈이 내리면 현우는 “엄마 앉아봐”라며 미정 머리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고사리손으로 털어주곤 했다. 장바구니도 꼭 나눠 들어야 직성이 풀렸던 아이, 술에 절은 제 아빠가 화장대 물건을 모조리 집어 던지는 날엔 “엄마한테 그러지 마라”며 제 한몸 던지던 아이, 중학교 반 친구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곤 무작정 덤벼 상대 코피를 내곤 “걔 많이 아팠을까” 되물으며 다신 폭력을 쓰지 못하던 아이, 그게 현우였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수록 미정의 혼란은 커졌다.

◆그가 보낸 신호, 담임교사도 엄마도 몰랐다

“조현병이요? 우리 애는 그런 거 아닌데요.”

그날 밤 소동의 풀리지 않던 의문은 사건 후 9개월가량 흐른 8월 우연찮게 풀렸다. 조현병 환자의 존속살인미수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며 찾아온 기자에게 미정은 의아하다는 듯 답했다. “우리 집엔 그런 사람 없어요.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6월20일, 현우는 1심 재판에서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징역 3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미정이 제출한 선처탄원서가 감경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동생 현지의 용서는 받지 못한 점이 고려됐다. 정신감정 결과 조현병 진단을 받은 점도 헤아려졌다.

현우의 국선 변호사는 미정에게 이 같은 내용의 판결문을 보내줬지만, 미정은 첫 줄의 형량만 보고 판결문을 덮은 터였다. 3년6개월이 너무 길다는 아득함을 느낄 뿐, 조현병 진단 내용은 보지 못했다. 판결이 나고 두 달 뒤에야 미정은 기자를 통해 현우가 조현병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2시간여의 설득 끝에 미정이 고운 원피스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이후 10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미정은 하나하나 기억을 되짚었다.

“현우가 이상한 말을 하던데요. 엄마가 주는 밥을 먹으면 몸이 이상해진다고.” 현우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사춘기가 왔나, 별생각 없이 넘긴 말이었다. 담임교사도 “상담 한 번 받아보세요”라며 가볍게 조언했다.

 

한 번 물꼬가 트인 기억의 파고는 삽시간에 미정을 덮쳤다. 돌이켜 보면 고등학생 시절 현우는 종종 속내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다. 미정이 사온 빵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본다거나 잘 끓여준 찌개를 엎기도 했다. 마치 독이라도 든 게 아니냐는 듯. 집밖을 나가기 전 사방을 두리번대기 일쑤였다. “밖에 누구 있어?” 물어도 현우는 대답이 없었다. 가만히 서 허공을 향해 중얼중얼거린다거나 미정을 가만히 보며 “내 엄마 맞아?”라고 묻던 날도 떠올랐다. ‘한참 반항할 때지’ 생각하며 넘긴 미정이었다.

“이제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개가 아니네요.” 미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특히 현우는 사건 한 달여 전부터 해석되지 않는 행동들을 자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전선을 끊어놔 집안을 정전되게 만들거나 물을 틀어두고 나가는 일도 잦았다. 미정은 누굴 골탕먹이려 저러나 생각하며 가볍게 꾸짖고 넘겼다. 당시 미정은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현우가 보인 행동은 중증 정신질환의 대표적 증상인 ‘망상’이다. 지난 10년간 정신질환 영향으로 벌어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211건 중 피고인의 망상 증세가 명확히 확인된 경우는 139건으로 65.9%를 차지했다. 정신질환자가 적절히 치료받지 못할 경우, 망상이 심해져 현우의 경우처럼 범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기자가 돌아간 그 밤, 미정은 밤새도록 조현병 관련 정보를 찾아 읽었다.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행동, 정서적 둔마 등’. 현우의 행동들이 하나둘 설명됐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조기진단과 치료가 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정보였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조현병은 전 세계 인구 중 0.5∼1%가 앓고 있을 정도로 많다. 국내에만 약 25만∼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0∼200명 중 1명꼴로 발병하는 꽤 흔한 질환이란 의미다. 하지만 미정처럼 가족 등 주변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국내에만 약 50만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지만, 치료를 받는 환자는 약 17만명에 불과하다”며 “조현병은 치료받으면 관리가 가능하지만,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조차 질환을 인지하지 못해 위태롭게 지낸다”고 말했다.

◆막을 수 있던 그날의 비극

“조현병이란 건 정말 미친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인 줄 알았어요.” 미정은 현우의 질환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성인이 돼서 아르바이트도 한 현우였다. 하지만 병에 대해 알게 될수록 명징한 징조는 많았다.

2020년 10월 현우는 경북의 한 신병교육대에 들어갔다. 2주여 뒤, 현우는 내쫓기듯 집으로 돌아왔다. 녹음기를 들고 와 이해되지 않는 말을 반복했다고 했다. 현우가 돌아온 저녁 미정은 소고기를 구웠다. 현우는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라고 챙겨주네.”

몇 달 뒤 현우는 말없이 충남 논산 훈련소에 재입대했지만, 이내 부대에서 연락이 왔다. “매일 밤 우두커니 앉아 볼펜을 딸깍거려요.” 2주 만에 훈련소 앞에서 다시 만난 현우는 팔뚝에 뜻 모를 날짜와 시간을 빼곡히 적어놓은 채 불안에 떨고 있었다. 군에서 괴롭힘당한 순간들이라고 했다. 군은 모든 조사를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해 11월11일 현우는 한층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누구라도 알아챘더라면 그를 돌려세울 수 있었을까. 비극의 결말로 향하는 길이 또 한 번 이어졌다.

‘빼빼로데이’를 기념해 현지와 초콜릿을 나눠먹고 있는데 현우가 왔다. “현우야, 아∼ 하나 먹어봐.” 미정은 동그란 모양에 아몬드가 오돌토돌 박힌 초콜릿을 반 입 베 먹고 나머지 반 입을 현우 입에 넣어줬다. 몇 번 씹은 현우가 갑자기 캑캑거리며 뛰쳐나갔다. “숨을 못 쉬겠어요.” 우연히 녹화 버튼이 눌렸는지 그날 거리를 배회하는 현우의 모습이 담긴 휴대폰 영상이 경찰 조사 중 발견됐다. 영상 속 현우는 목에 가시라도 박힌 듯 고통을 호소했다. 급히 들어간 한 병원에선 정확히 증상을 말하지 못하고 우물대는 현우를 “그냥 쫓아내”라며 차갑게 내보냈다. 거리를 떠돌던 현우는 경찰과 구급대원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을 가보기도 했지만, 당시 짧은 진단 후 나온 병명은 ‘경도 지적장애’였다. 미정은 의아했다. 현우가 유달리 영특한 편은 아니었지만, 지능이 떨어진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미정이 제 배로 낳고 키운 시간이 27년이었다. 다만 병원 소견서엔 “현재도 의심과 피해사고가 지속되고 있으나, 증상을 부인하며 병식(병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약물 치료적 개입과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하겠음”이라고 적혔다.

6개월의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현우의 입원생활은 2개월에 그쳤다. 성급한 퇴원이 화근이었을까. 집에 돌아온 현우가 약을 먹는지 마는지 미정은 알 길이 없었다. 약을 꾸준히 처방받는지 궁금해 병원에도 전화도 해봤지만 “본인 아니면 말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현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여유도 부족했다. 이혼 후 차디찬 겨울에 1000원 한 장 없이 아이 둘 손을 이끌고 거리로 나온 미정에게 일은 곧 생존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미정이 도움을 청할 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악몽 같은 그날 밤은 기어이 찾아왔다.

◆애달픔과 두려움, 충돌하는 마음들

‘현우는 줄곧 신호를 보내고 있었구나.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뒤늦은 애처로움이 미정을 뒤덮었다. 동시에 미정은 무서웠다. 현우는 교도소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독방에 갇혔다. 홀로 갇힌 현우가 제대로 치료받고 나올 리 만무했다. 사고가 다시 안 일어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미정은 시종일관 인내와 체념이 뒤섞인 말을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그래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교도소에서 나오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제 삶이 거기까지인 거겠죠.”

현우에게 필요한 건 교화보다는 치료였다. 2심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사는 안타까운 듯 기자에게 말했다.

“이현우씨 망상 증세는 지금도 개선된 것 같지 않아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하다가 ‘엄마를 해치려 한 게 아니고 동생을 때리려 했다’고 말하는 식이죠.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요.”

미정이 지난달 교도소 면회장에서 만난 현우는 확실히 불안정했다. 안경도 잃어버리고, 앞머리는 길어 눈을 찌를 듯했다. 어떤 날엔 구멍 난 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와 속옷까지 보일 지경이었다. 미정은 눈이 흐리다는 현우에게 안경을 맞추라며 영치금을 보냈다.

9월26일 녹색 수의 차림으로 2심 재판정에 들어선 현우는 여전히 안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긴 앞머리 사이로 허공을 응시하다 다음 재판 일정을 알리는 판사의 말에 느릿하게 일어설 뿐이었다. 법원보안관의 안내를 받아 피고인석을 일어난 현우는 하얗고 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두어 차례 만난 자신의 변호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서류 더미에서 다음 재판 기록을 뒤적이느라 변호사는 정신이 없었다.

2심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미정은 요즘 한 달에 두어번 현우를 찾아간다. 그가 교도소에서 약을 먹긴 하는지, 독방에서 마비가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서면서도 그날 밤 현우의 살기가 잊히지 않아 흠칫하기도 한다. 오늘도 미정의 머릿속은 이해와 후회 사이를 바삐 오간다. 

“이번 일을 겪고 ‘왜 하필 나야’라는 말보다 공허한 게 없더라고요. 살다 보면 누구에게라도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괜찮았을까요.”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김나현·조희연·윤준호 기자
 
<최근 10년 존속살해·미수 판결 분석>

부모를 죽이려 한 이들은 누구인가.

세계일보는 27일 최근 10년(2014~2023년)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년간 벌어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386건(1심 기준) 중 54.7%(211건)는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었다. 재판부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거나, 질환과 범행의 관련성을 분명히 언급한 경우다. 망상에 의해 엄마를 죽이려 한 이현우(가명·27)씨와 같은 사건이 해마다 최소 20여건씩 발생한 셈이다. 국내 언론에서 10년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을 전수 분석해 정신질환과 관계를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의료진과 전문가 84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5개 사건 가해자 5명과 피해자 3명, 사건 주변인 5명을 직접 만났다. 사건을 수사해 재판에 넘긴 경찰과 검찰 7명, 피고인의 변호사 16명과 재판을 맡았던 판사도 취재했다.

사건의 공통점은 크게 3가지였다. 이 고리를 끊어내면 비슷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타나는 일을 막기 위해, 이들의 사연을 전한다.

첫 번째 공통점은 피고인의 정신질환 치료가 중단됐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자는 다른 환자와 다르게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없어 약물 복용 등 치료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10일 오전 11시15분 울산지법 301호 대법정에서 부친을 존속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윤희(가명·27)씨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올 1월12일 울산에서 조현병을 앓던 김씨는 도청기가 설치돼 있다며 집 안 거실에 있던 의자를 부쉈다. 이를 본 김씨 부친이 ‘이런 식으로 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정신을 차리라’는 취지로 나무랐다. 아빠가 가짜라고 생각해 온 김씨는 이젠 자신을 병원에 가두려 한다고 생각하곤 부친을 흉기로 찔렀다.

김씨의 국선 변호사는 “피고인이 상당 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었으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내면에서 정말 ‘가짜 아빠’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1심 사건 211건 가운데 35.6%(75건)에서 피고인은 ‘단약(약물복용 중단)’ 중 범행을 저질렀다. 약을 복용하던 중 벌어진 사건은 12건(5.7%)에 불과했다. 약 복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123건을 제외하면, 단약 중 발생한 사건의 비율은 84.3%로 훨씬 커진다.

대부분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약을 먹으면 망상 증상이 완화된다. 환청이나 환시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14년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조현병이 폭력성과 연관될 때는 오직 치료가 결여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망상은 순식간에 커졌다. 김씨와 같이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을 가짜라고 여기는 증상을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됐다고 믿는다.

1심 판결문 211건을 보면 80.1%(169건)의 사건에서 재판부는 정신질환에 의한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부모의 모습을 한 식인종이나 외계인, 악마로 보이거나, 부모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김씨 변호사는 재판부에 ‘법리오해’를 주장했다. 그는 “피고인은 2022년부터 아빠가 가짜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며 “범행 당시 피해자를 자신의 법률상 존속(혈족)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아빠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존속살해가 아닌 살인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존속인 점은 양형에서 가중요소로 간주한다.

변호인의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피고인석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따금 교도소에서 써 온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들춰 봤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입을 열었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사회적으로 격리하길 원한다고 했어요. 인정 못 하겠어요.” 김씨는 ‘부모님’을 언급했다. 여전히 아빠가 아닌 가짜를 죽였다고 믿는 듯 보였다. 

두 번째 공통점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조차 치료로 병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지 못한다. 이 탓에 방치하다 증상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입원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7월 강원도 강릉 한 다세대주택에서 함께 살던 친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정병태(가명·26)씨는 ‘파괴적기분조절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선 지능’ 등으로 병원에서 입원 및 외래 진료를 받았지만 사건 발생 약 1년 전부터 약을 끊었다.

같은 건물에 정씨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이웃들은 정씨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이 벌어진 마을 이장으로 동네 사정에 밝은 한 60대 남성은 “(정씨 부친이) 내 고등학교 후배인데, (정씨를) 거의 포기하면서 내놓다시피 했다”며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고 (정씨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피해자와 친구로 지내왔다는 앞집 이웃 김유동(76)씨도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평소에 손자가 할머니를 때리고 난동을 피워도 이웃에게 알려질까 걱정만 하더니 이 사달이 났네. 할머니가 바보같이 애만 너무 좋아했어.”

이씨와 같이 범행 이전 자살시도나 난폭한 행동 등의 ‘전조증상’을 보인 경우는 211건의 판결문 중 절반(46.9%·99건)이나 됐다.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정신병원 입원이 필요하지만, 전조증상을 보인 이들 중 64.6%(64건)만 입원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병원에서 진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경우도 10건 중 1건꼴(10.4%·22건)로 나타났다. 증상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도록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다.

2019년 6월 울산에서 엄마를 살해한 박정빈(가명·27)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씨는 범행 이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다. 당시 경찰에 “엄마를 찔러 피가 나니 구급차를 불러달라”며 “엄마가 저를 죽이려고 약을 먹이고 이상한 짓을 한다.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그는 “(두려움에) 죽고 싶어서 (자신의) 목을 찔렀다”고도 했다. 피 묻은 흉기를 든 채 경찰에게 문을 열어준 그의 목에는 자해로 추정되는 베인 상처가 있었다.

박씨는 사건 이후에야 국립법무병원 정신감정을 통해 조현병을 진단받았다. 앞서 박씨는 2017년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4급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으로 분류되면서 병무청으로부터 정신과적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족은 이를 간과했다. 진단을 받으려면 한 달간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는데, 왠지 께름칙했다.

박씨 부친은 재판부에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였다”고 했다. 그는 “아들은 어릴 때 항상 밝고 부모님 말 잘 듣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며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말도 잘 하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당시는 단지 공부하기 싫어 투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시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정신질환 자녀를 나이 든 부모가 수십 년간 돌보다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11건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230명이다. 이들 대다수는 피고인과 ‘동거’(84.4%·194명)하던 ‘60대’(32.6%·75명) ‘엄마’(53%·122명)였고, ‘집(집앞·87%·200명)’에서 변을 당했다.

이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존속살해 범죄 경향성과도 일치한다.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해외 연구를 보면, 존속살해 살인범의 60~90%가 정신질환이 있으며 이들은 어머니를 주로 살해하고, 가족과 동거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일부 연구에서는 이들 중 62.5%는 범행 전 단약을 한 상태에서 약복용과 관련된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70대 이상 고령의 피해자도 36.1%(83명)에 달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 정신질환이 주로 20대 전후를 기점으로 발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돌봄 기간은 상당히 길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전북 전주에선 24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은 아들이 81세 어머니를 살해했다. 그는 약 부작용으로 목이 돌아가는 ‘사경’ 증세가 발생하자 약 복용을 권하는 어머니를 원망해 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망상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한집에서 지켜보며 치료를 권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계속 약을 먹지 않자 어머니는 “왜 약을 먹지 않고 모아 뒀냐”고 잔소리를 했고, 이에 반감을 가진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백종우 교수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중증정신질환의 부담을 고령의 부모가 모두 떠받치고 있는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발병에서 치료까지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부가 나온다. 김성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런 불행한 사고들은 피고인이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의 정신건강 정책은 자타해 위험 발생 이후의 응급입원 강화에 비중을 둬 왔는데, 앞으로는 더 이른 시기에 당사자와 가족을 부드럽고 정중하게 조력하는 방식의 조기 개입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윤준호·김나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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