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15일 게재

미국 헌법을 설계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지점은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이었다. 영국 왕의 폭정에 항거해서 독립 전쟁을 치른 신생 미국은 왕이 다스리지 않는 국민주권의 공화정을 지향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설계대로 운용되지는 않는다. 주권자인 국민이 독재자를 선출하거나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지도자가 독재자로 표변하면 헌정 질서의 위기가 온다.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독립된 사법부 창설이라는 묘안을 냈다. 입법과 행정, 사법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원칙이다.

지금은 국민주권과 삼권분립이 한 묶음으로 이해되지만, 당시만 해도 독립된 사법부는 국민주권의 원칙에 비춰봤을 때 이질적이고 생소한 개념이었다. 국민주권 우선론자들은 국민이 직접 주권을 위임한 대통령·의원과 임명직에 불과한 연방대법원 판사를 동격으로 취급할 수 없다고 봤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격론 끝에 내린 결론은, 대통령 권력이 독재로 변하거나 입법부의 다수가 폭주할 때 제3의 헌법기관이 헌정 체제를 수호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 역할을 사법부에 맡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사건이 로스쿨에서나 강론되던 ‘국민주권 대 삼권분립’ 논쟁을 대선 쟁점으로 만들었다. 지난 1일 이 후보 선거법 사건의 2심 무죄를 깨고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내려보낸 대법원 판결이 도화선이 됐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선출되지도 않은 대법원 판사들이 감히 지지율 1위인 이 후보를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주저앉히려 하느냐는 것이다. “법도 국민의 합의다. 결국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후보 발언은 국민주권 우선의 논리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이 후보의 선거법 사건은 유죄가 확정적이다. 서울고법이 파기환송심 판결을 서두르고 대법원이 대선 전에 벌금 100만원 이상인 형을 확정했으면 이 후보는 대선 출마 자격을 잃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후보 없이 대선을 치를 뻔했다. 그에 따른 혼란과 갈등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런 사법권의 행사가 정의와 공정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나. 1년 안에 마치도록 법에 명문화돼 있는 선거법 사건을 2년6개월이나 지연시킨 사법부가 이제 와서 재판을 서둘렀으니 ‘정치 재판’이란 비판을 받는다.

대법원발 대선 혼란은 서울고법이 이 사건 기일을 대선 이후로 미루면서 잦아들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제는 자기 차례라는 듯이 사법부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대선 개입 판결’을 겨냥한 청문회를 열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면서 14명인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했다. 국민주권, 더 정확히는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대선후보와 다수당에 총구를 들이댄 죄를 묻겠다는 으름장이다. 이 후보는 사법부를 향해 “그 총구가 우리를 향하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런 방식의 사법부 압박은 삼권분립의 헌정 체제를 위협한다. 국민주권의 논리를 극단으로 끌고 가면 독재도 용인된다. 민주당은 이 후보 선거법 사건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허위 사실 공표 조항을 개정하려 한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 이 개정안을 직접 공포하면 자신의 선거법 재판에서 ‘면소(免訴·법 조항 폐지로 처벌 못함)’ 판결을 받을 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법의 지배’ 원칙에 배치된다. 국민은 민주당과 이 후보가 입법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장악한 뒤 사법부마저 종속시키는 절대 권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기우이길 바란다.

대통령이나 국회, 사법부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조자룡이 헌 칼 쓰듯 휘두르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교훈이 될 만한 사례를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을 남용하다 파면된 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정치와 사법, 모두 자제해야 한다.

조남규 논설위원

2025년 4월17일 게재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사태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경구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는 부녀 대통령의 참담한 종말이라는 비극적 서사가, 윤 전 대통령 파면에는 어이없는 비상계엄으로 몰락한 블랙코미디 측면이 있다.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두 보수 대통령의 추락에서 국민은 가건물 같은 한국 보수의 민낯을 보게 됐다. 전 국민의힘 대표조차 “우린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할 수 없게 된 족속)”이라고 말할 정도로 보수는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범보수 대선주자 지지율 총합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선 후보 지지율에도 못 미친다. 국민의힘 홍준표 경선 후보의 경솔한 언급대로 “하루의 치유면 충분”한 상황이 아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보수 진영에선 ‘반(反)이재명 빅텐트’를 펼치자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되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 등과의 단일화를 추진해 이 후보에 맞서자는 것이다. 주요 대선 때마다 외부 인사에 기대는 행태는 한국 보수만의 유별난 특징이다. 총리 출신인 이회창·정운찬·김황식과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보수의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외부 인사의 파괴력은 대체로 신통치 않았고, 이들 중 유일한 성공 사례인 윤 전 대통령마저 집권당과 불화하다가 보수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보수는 언제까지 자생력을 잃은 ‘기생(寄生) 정치’를 지속할 것인가. 보수 재건의 첫걸음은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미국 보수(공화당)의 재건 과정을 참고할 만하다.

1964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은 뼛속까지 우파인 배리 골드워터를 후보로 내세웠다가 민주당에 선거인단 기준 486 대 52의 궤멸적 패배를 당했다. 공화당은 4년 뒤 집권에 성공했지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하야하면서 ‘폐족’이 됐다. 닉슨 하야 사태를 대하는 미국 보수의 자세는 달랐다. 닉슨을 ‘보수주의로 집권했지만, 진보주의로 통치한 이단아’로 규정하고 정체성 재정립의 계기로 삼았다. 사회적 보수파와 종교적 우파,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지엽적인 차이를 접고 손을 잡았다. 헤리티지 재단 등 우파 싱크탱크들은 논리와 정책을 공급했고 지지자들은 풀뿌리 방식으로 보수의 저변을 넓혀갔다. 그 결과가 로널드 레이건을 앞세운 보수의 1980년 대선 압승(선거인단 수 기준 489 대 49)이다. ‘하루의 치유’ 운운하며 정신 승리하지 않고, 골드워터 참패 이후 16년, 닉슨 하야 이후 6년 동안 와신상담한 끝의 결실이었다.

한국 진보 세력도 ‘폐족’을 자처한 시절이 있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의 대선 참패 후 인터넷에 반성문을 올렸다. “친노(친노무현)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진보 진영은 2008년 총선부터 인적 청산과 세대교체를 키워드로 한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무상급식’과 같은 진보 의제를 발굴하고 실험했다. 당원 배가 운동으로 민주당은 “중국 공산당, 북한 조선노동당을 제외하고 가장 당원이 많은 정당”(이재명 후보)이 됐다.

2020년 제21대 총선 직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중진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자유한국당을 ‘좀비 정당’이라 비판했다. 영혼이 없는 보수라는 얘기다.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의 인적 구성이나 선거 공약 등을 보면 ‘좀비’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보수는 법치와 공익을 앞세우고, 병역 같은 공화국 시민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하자가 있는 인사나 정책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중도층과 호남 껴안기를 중단 없이 해나가야 한다. 이런 기본을 꾸준히 다지다 보면 보수 가치에 공감하는 국민이 다수가 될 것이다. 적당히 위기를 넘기고 기득권 싸움이나 벌인다면, 한때 나돌던 ‘진보 20년 집권론’은 말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조남규 논설위원

 

최근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을 방문한 한국 특파원들은 예상외로 적막한 내부 분위기에 놀랐다고 전했다. 생산 공정마다 배치돼 있어야 할 근로자들이 로봇과 자동화 설비로 대체돼 지게차와 견인차가 오가며 시끌벅적했던 기존 공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는 것이다. 공장 모습을 담은 사진 중에는 4족 보행 로봇 ‘스폿’이 차체의 품질 검사를 진행하는 장면도 있었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미래 공장을 보는 듯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개발한 최신형 휴머노이드 로봇인 ‘올 뉴 아틀라스’도 이 공장에 투입될 방침이라고 한다. 조만간 생산 라인은 로봇 세상이 될 전망이다.

공장 자동화는 제조업 현장의 대세가 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 시장 최강자인 일본 화낙은 ‘로봇 만드는 로봇 회사’로 통한다. 자동화 로봇을 만드는 회사답게 대부분 공정을 로봇이 수행한다. 네덜란드 필립스와 미국 테슬라, 독일 아디다스 등의 주요 생산 현장에서도 주역은 로봇이다. 이런 자동화 공장들은 근로자가 거의 없는 상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야근조도 조명도 필요하지 않다. 어두운 공장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다크 팩토리(dark factory·암흑 공장)’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업은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1조달러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인공지능(AI) 탑재 로봇을 활용한 산업단지를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산업단지에는 AI가 수요를 예측해 생산 라인을 설계하는 다크 팩토리가 들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올 초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손잡고 AI 합작사를 설립한 소프트뱅크가 AI 기술을 토대로 노동력 감소에 대응한 미래 공장의 비전을 밝힌 셈이다.

리더십 권위자인 워런 베니스는 공장 자동화와 관련해 “미래의 공장에는 두 명의 존재만 있을 것이다. 사람과 개. 사람은 개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있고, 개는 사람이 기계에 손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있다”는 비유를 들었다. 당시는 농담처럼 들렸는데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사람과 개도 로봇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조남규 논설위원

 

계란 투척은 고대부터 조롱과 모욕, 처벌, 항의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로마나 중세 시대에는 관객들이 연극이나 거리 공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란을 던지며 야유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중의 분노를 산 권력자나 종교 지도자들도 공개 석상에서 계란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계란은 맞는 사람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계란이 깨지면서 나오는 내용물 때문에 상당한 불쾌감을 안길 수 있다. 계란 투척이 오랫동안 이런 용도로 쓰이다 보니 영미권에선 ‘egg on one’s face’(수치스럽다)라는 숙어도 생겨났다.

선거의 시대가 열리면서 계란 공격은 종종 정치인을 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전국농민대회 연설 도중 얼굴에 계란을 맞고 “달걀을 맞아 일이 풀리면 얼마든 맞겠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계란을 한 번씩 맞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 화가 좀 안 풀리겠느냐”는 어록을 남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7년 “BBK 전모를 밝히라”고 외치는 남성에게서 계란을 맞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9년 페인트가 주입된 계란을 맞고 얼굴이 페인트로 벌겋게 뒤덮이는 봉변을 당했다. 김 전 대통령은 “살인적 행위”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징역형을 받았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1년 계란을 맞은 뒤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이리 오게 해달라”며 관용의 제스처를 취해 대범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반대로 영국 노동당 집권기에 부총리를 지낸 존 프레스콧은 2001년 총선 유세 현장에서 계란을 던진 남성을 주먹으로 갚아줬다.


계란 투척 사건이 정국의 흐름을 바꾼 적도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정원식 총리는 1991년 한국외대를 방문했다가 학생들이 던진 계란과 밀가루를 뒤집어쓴 채 쫓겨났다. 그 장면을 담은 사진이 도하 일간지 1면에 실리면서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결과적으로 여권에 도움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어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건너편 인도에서 날아온 계란에 얼굴을 맞았다. 부활과 희망의 상징인 계란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와중에 또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변질됐다.

조남규 논설위원

“좋은 뉴스든, 나쁜 뉴스든 거짓 없이 전하겠습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1일 미국 전쟁정보국 소속 아나운서인 윌리엄 할란 헤일이 독일어로 방송을 시작했다. VOA(Voice of America·미국의 소리)는 나치 독일과 일본 등 추축국(樞軸國)의 선전선동에 대응하고 미국이 주도한 연합국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창설됐다. 나치 점령하에 놓인 프랑스에선 레지스탕스 대원들에게 연합군의 전황 등을 전하며 사기를 진작시켰다. 프랑스 시민들이 샤를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정부를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방송에도 주력했다. 종전 이후에는 소련과 동유럽, 북한, 이란처럼 정보 통제가 심한 나라를 겨냥했다. 지금은 약 50개 언어로 송출되는 국제방송으로 성장했다.

한국어 방송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시작됐다. 일본이 해외 라디오 청취를 금지했지만, 소수의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외에서 VOA 방송을 듣고 전황을 파악했다. 남북 분단이 고착된 이후 한국어 방송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하고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VOA 방송 청취는 북한 정권이 극도로 경계하고 적발 시 가혹하게 처벌하는 중범죄다. 그런데도 탈북민 중에는 단파 라디오로 VOA 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하는 이들이 많다. 대북 단체들이 풍선에 단파 라디오를 넣어서 북한으로 띄우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예산 삭감 조치로 VOA가 존폐 갈림길에 섰다. 표면적 이유는 재정적자 감축이지만 배경에는 트럼프 정부와의 불화가 깔렸다. 1기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VOA가 중국이나 코로나19 팬데믹 보도에서 정부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측근을 VOA 모회사인 미국 국제방송국 수장으로 임명해 통제에 나섰다. VOA는 리처드 닉슨이나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도 베트남전쟁 보도 등에서 국익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부와 갈등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후에 생각을 바꿔 예산을 늘려주고 VOA를 소련과 동유럽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도구로 활용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던 VOA가 사라진다면 우리에게도 손실이다.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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