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여야 국가원수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의 대통령 경호실이 2006년 8월 발간한 책자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다’에는 대통령 경호원들의 사생관이 담겨 있다. ‘매일 아침 목욕을 단정히 하고 빗질을 가지런히 하고 속옷을 깨끗하게 갈아입는 것은 최악의 경우 깨끗한 모습으로 내 시신이 수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대목에선 숙연해진다.
군인이나 경찰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지만, 경호 훈련의 최우선 목적은 대통령 보호다. 대통령을 겨냥한 테러 위험이 감지됐을 때 반격하기에 앞서 자신의 몸을 대통령의 방패로 만드는 훈련을 반복한다. 지난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암살하려는 총탄이 날아왔을 때 비밀경호국 소속 요원들이 반사적으로 트럼프를 에워싸도록 한 그 훈련이다. 경호 훈련을 ‘죽는 훈련’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경호원 가족들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폭탄을 덮치거나 총칼을 막아내는 경호 시범 훈련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면서 대통령 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이 기로에 섰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과 경호원의 직업적 소명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는 공간에 갇혀 힘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원수의 절대 안전으로 이는 대통령 경호처의 존재 가치’라는 복무 수칙에 따라 윤 대통령 수호를 위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체포영장 1차 집행에 실패한 공수처는 조만간 다시 윤 대통령 체포에 나설 태세다. 경호원들은 자칫 국가원수 경호의 최후 보루라는 명예와 긍지 대신 ‘대통령의 사병’이라는 불명예와 조롱을 뒤집어쓸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16세기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로마를 공격했을 때 교황청이 고용한 스위스 근위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교황에 대한 ‘충성서약’을 끝까지 지키다 옥쇄했다. 이들의 희생은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을 담보하는 신뢰 자산으로 남아 훗날 교황청이 스위스 근위대만 고용하는 관행을 만들어냈다. 윤 대통령에게 충성한 경호원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있나.
조남규 논설위원
*2025년 새해 벽두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다. 1차 시도에 실패하자 영장을 재발부받아 2차 집행에 나설 태세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대통령 경호실에서 '바람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경호실 소개 책자를 냈다. 경호실이 자신들의 속 모습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다.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의 경호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친분을 맺었던 경호원들이 떠올라 그들의 입장에서 써봤다.
도하 종합 언론사들은 대체로 토요일에 쉰다. 일요일자 신문을 발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 년에 313일 정도 발행하는 셈이다. 위 사진의 지면처럼 11242호라면 36년 정도 발행한 신문이 된다. 창간호가 1호이니 창간 36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신문이다.
그런데 신문을 만들지 않는 토요일에도 특급 대형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이럴 때는 토요일에도 4면 정도 신문을 만들어서 길거리나 지하철역, 군중이 모인 집회장 등에 살포한다. 정식으로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신문 발행 번호도 붙이지 않는다. 이 때 발행하는 신문을 기존 호수외에 별도로 만든 신문이라고 해서 '호외( 號外)'로 부른다.
개인적으로 입사 이후 두번의 호외가 발행됐다. 한번은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 자살을 했을 때다. 이 때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재직하고 있어서 호외 발행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을 때다. 이번 호외는 편집국장으로서 지면 제작을 총괄했다.
그날 밤.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45년만에 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입처로, 회사로 내달렸다. 그렇게 국회, 대통령실, 국방부 등지에서 계엄선포 이후 혼돈의 상황이 독자·시청자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부터 계엄이 해제된 다음 날 새벽까지 기자들은 무엇을 보았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돌아갔던 취재 현장, 뉴스룸의 계엄 그날 밤을 재구성했다.
◇3일 오후 10시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조성봉 뉴시스 사진기자, 공병선 아시아경제 기자는 계엄선포 직후 비교적 초반부터 국회로 들어갈 수 있었다. 10시20분쯤 국회 인근에서 ‘꾸미’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공병선 기자는 동료들과 스마트폰으로 대통령 긴급담화 생중계를 지켜봤다.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나오는 순간, 저녁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가려다 공 기자는 국회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되면 가보라’는 말을 듣고선 곧장 국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국회 출입 기자니까, 관성대로 국회를 간 것도 있다.” 이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조성봉 기자는 ‘성봉아 계엄이다’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들을 척결해야 되고…’ 발언을 하는 순간, “머리도 감지 않고, 여하튼 바로 총알택시를 탔다.” 18분 만에 국회에 도착했다. 오후 10시45분~50분 두 기자가 경찰 기동대에 의해 가로막힌 국회 정문 앞에 도착한 시각이다.
◇3일 오후 9시20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그에 앞서 이날 오후 9시20분쯤부터 대통령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설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내용으로 왜 발표를 하는지는 대통령실 참모들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후 9시50분경 방송사들에 담화 내용을 알리지도 않은 채 생중계 연결을 바란다는 메시지만 공유됐다.
윤 대통령이 긴급담화를 진행하는 순간까지도 대통령실에선 출입기자들에게 아무런 예고가 없었다. 당시 대통령실에 있었던 김태영 JTBC 기자는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전날 밤 상황에 대해 “혼돈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당시 김 기자는 핵심 참모 중 한 명과 식사 중이었는데 이 참모 역시 그제야 서둘러 대통령실로 돌아갈 정도였다. 김 기자는 “저를 비롯한 상당수 기자들이 대통령실로 하나둘 복귀했고, 얼마 안 돼 경호처에서 출입을 막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10시23분, 결국 담화가 시작됐고 기자들도 방송을 보고서야 내용을 알게 됐다.
◇“용산 출입기자가 뭔가 이상하다 한다”… 계엄 전후 비상 걸린 언론사 뉴스룸 비상계엄 선포 직후 각 언론사 편집국, 보도국 분위기도 급박하게 흘러갔다. 박범수 MBC 보도국장은 집으로 돌아온 직후인 오후 10시40분쯤 야근 당직자로부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조건 밤샘 특보 준비, 부국장·부서장·팀장 전원 복귀” 지시를 내린 박 국장은 곧장 회사로 들어갔다. “MBC가 제1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언론사 봉쇄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전에 일단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박 국장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은 사건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내란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을 제시해선 절대 안 된다고, 불법적인 내란 행위라는 규정하에 특보나 뉴스를 내보내게 했다”고 말했다.
지면 강판 연기, 호외 제작으로 신문사 편집국도 밤을 지새웠다. 조남규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오후 9시50분쯤 정치부장을 통해 ‘용산 출입기자가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방송사에 생중계 요청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정치부 기자들 전부 현장 복귀를 지시했고, 조 국장 본인도 담화 내용을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조 국장은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발표가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없었다”며 “저희 같은 경우 5판(초판) 마감이 당초 10시30분까지다. 윤전기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5판 마감을 뒤로 미뤄 최종적으로 다음 날 오전 1시에 강판을 했다”고 말했다.
◇계엄군 본회의장 앞까지 진입, 군 국방부 기자단 퇴출… 위험한 상황 계속된 취재현장 다시 여의도. 시민들과 함께 몸싸움해가며, 경찰에게 따져가며 겨우 국회 정문을 통과한 조성봉, 공병선 기자는 곧바로 헬기 소리를 들었다. 오후 11시께, 두 기자는 국회 본청 뒤 운동장에 착륙한 헬기에서 공수부대가 내리는 모습을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군이 진입하기 전 국회 직원, 보좌진들이 국회 본청에 있는 의자나 책상을 뜯어서 문을 막는 모습, 계엄군과 보좌진의 격렬한 몸싸움도 눈앞에서 봤다. 정말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기자는 “헬기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운동장으로 뛰어가려다 공수부대가 본회의장을 점거할 거 같아 일단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 대표실 쪽에 있다가 예결위장으로 몸을 피신하려고 허겁지겁 가는 모습을 봤다”며 “계엄군을 처음 보니 어떤 두려움을 순간 느끼긴 했는데 저희 팀원 중엔 제가 처음 온 상황이라 일단은 찍어야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국방부 기자실에서도 위험한 상황이 일어났다. 권혁철 한겨레 기자가 6일 기사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3일 밤 11시20분께 전투복 차림의 군사경찰이 갑자기 기자실에 들어와 ‘국방부 청사 내부에 있는 민간인들은 모두 나가야 하니 기자들도 나가라’고 말했다. ‘안 나가면 테이저건(전기 충격용 권총)을 쏠 수도 있다’고 경고도 했다. 권 기자는 “이러다 테이저건에 맞거나 포승줄에 묶여 끌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밤 11시50분쯤 장교 한 명이 ‘기자실까지는 민간인 출입을 허용한다’고 말을 바꾸며 위험한 상황은 일단락됐다.
4일 0시30분에서 1시 사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직전 국회 본회의장 안에 있던 공 기자는 문밖에서 거칠게 대치하는 소리,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아 결국 군이 들어오는 건가’라는 어떤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결국 이날 새벽 1시1분, 계엄선포 직후 150분여 만에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통과됐다. 공 기자는 “이날 다들 몸 안 사리고 기자들은 기자 역할을 했고, 보좌진, 국회의원들도 그 역할을 다 했다”며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상에서 정신질환자를 본 적이 없어서일 테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아는 듯, 알지 못한다. 자주 접하긴 하지만, 대부분 ‘범죄사건 가해자가 알고 보니 정신질환자였다’는 식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정신장애 범죄자’는 전체 범죄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1%가 정신질환자 전체를 과대대표했고,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은 커졌다.
그 시선이 정신질환 당사자를 숨게 한다. 주변에 발병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신에게 보이고 들리는 증상에 대해 설명하길 꺼리게 한다. 갈등이 두려운 그들은 그렇게 학교에서, 회사에서, 동네에서 주변인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고립된 채 지내며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31일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중증도 우울장애 등의 ‘중증 정신질환’ 진료 이력이 있지만, 2023년 병원에서 진료받지 않은 사람은 15만2006명에 달했다. 중증 정신질환 특성상 꾸준히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는데, 치료를 중단하고 숨어버린 경우가 적잖은 것이다.
숨는다고, 숨긴다고, 병이 사라지진 않는다. 치료를 늦추고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인은 그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한 어머니는 아직도 딸의 상태를 제대로 몰랐던 게 한이라고 했다. “그때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는데, 못 했어요. 딸이 조현병 환자라는 걸 믿기가 싫었어요. 제가 약사인데도 딸을 몰랐어요.”
사실 당사자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중증 정신질환 진단 혹은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은 63만6532명에 달한다. 국내 인구(5132만5329명)의 1.2%로, 100명 중 1명꼴이다.
우리가 거니는 길에, 식당과 카페에, 어쩌면 매일 향하는 일터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함께 있던 것이다. 우리가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건, 이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정신질환은 몸이 아픈 병과 다르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이들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8개월간 823건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84명을 만난 건, 그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세계일보는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 2명을 한 달간 집중 관찰했다. 8월12일부터 9월8일까지 4주간 매일 저녁 통화하며 그날의 애환을 들었다. 이들의 삶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네 삶이 다 그렇듯 말이다.
◆필요한 건 ‘위로’ 아닌 ‘이해’
냉탕에 10분, 온탕에 10분.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냉온욕은 고유선(32)씨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일과를 마친 뒤 목욕탕에 들러 냉온욕을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유선씨가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기까진 5년이 넘게 걸렸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유선씨는 10년 전 조현정동장애를 진단받고 정신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자신을 두 명의 다른 사람으로 느끼던 때도 있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 얼굴에 침을 뱉은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모두 유선씨가 경험한 망상과 환각, 즉 조현병의 ‘양성 증상’이었다.
약을 먹으며 양성 증상은 나아졌지만, 무기력해지는 ‘음성 증상’이 찾아왔다. 약을 먹으면 하루 종일 누워 있게만 됐다. 양치나 샤워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봤자 뭐해. 일도 못 하고 돈도 못 버는데. 살아서 뭐해.”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음성 증상을 해결해준 건 ‘파도손’ 같은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정신질환자의 치료 과정을 돕는 ‘절차조력 지원사업’ 단체다. 정신질환자 당사자가 다른 정신질환자를 상담해주는 ‘동료지원’, 당사자와 가족이 함께 대화적 치료를 배우는 ‘오픈 다이얼로그’ 수업 등을 진행한다.
유선씨는 이곳에서 지지받고 지지하는 경험을 했다.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유선씨는 매주 화요일 난다에서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하고, 일주일에 5일 정도는 파도손에서 미술 작업을 한다. 오랜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내다 보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깊은 속마음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받지 못할까 봐, 이상하게 볼까 봐 하지 못하던 말도 그곳에서는 할 수 있었다.
유선씨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그들이 좋다”고 했다. 증상에 대해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잠들기 전 꼬박꼬박 약을 먹긴 하지만, 유선씨는 여전히 50% 정도의 증상이 남아 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는 식이다. 누구를 만나도 일대일의 관계가 아니라, 다수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유선씨를 이해했다.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유선씨가 느끼는 망상, 불안, 죄책감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위로가 아니라 이해를 해줬다. 그리고 유선씨와 비슷하게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들려줬다. 그 얘기를 들으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선씨는 이들 덕에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규칙적 생활이 꾸준한 약 복용 도와
서울 강북구에 사는 전현진(41)씨에겐 때때로 원인 모를 불안감이 찾아 왔다. 8월12일이 그랬다. 동료상담 지원이 일정대로 흐르지 않자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불안감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현진씨는 기존에 먹던 조현병 치료약에 더해 안정제를 두 알 함께 삼켰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현진씨가 이렇게 약물과 휴식 등으로 증상을 관리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데도 파도손 영향이 컸다. 현진씨는 “일을 하게 되며 하루하루를 규칙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되니 약도 거부감 없이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출근 안 하고 더 자고 싶다.’ 오전 7시30분 눈을 뜬 현진씨는 ‘더 잘까’ 잠깐 고민하다가도 이내 몸을 일으켜 세운다. 기지개를 켠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약을 먹는 것.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밖을 나서는 8시쯤이면 현진씨 어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약을 먹었는지 묻는 어머니의 잔걱정 없이도, 현진은 누구보다 약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병에게 제 삶의 주도권을 뺏긴단 걸 저는 알아요.” 그는 몇번이고 강조했다.
현진씨에겐 8년 전 겨울 조현병이 찾아왔다. 보험설계사로 6개월째 일하며 숱한 거절과 실패를 맛보던 차에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병에 현진씨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위태로운 현진씨를 본 어머니가 입원을 권했다. 1년6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 병원 밖으로 나온 현진씨는 동료지원가 활동 덕에 약을 먹는 습관을 얻었다. 매일 출퇴근길 규칙적으로 약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진씨는 파도손에서 주 2~3회 동료상담 일을 한다. 현진씨처럼 중증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다. 현진씨는 월요일이 제일 바쁘다. 앞으로 펼쳐질 일주일간의 계획을 짜고, 지난 일주일의 상담 내용을 공유하는 회의를 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현진씨는 옥상으로 가 식물 물주기를 한다. 월요일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다.
나머지 화~목요일 일과 중엔 협약을 맺은 정신병원으로 가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금요일엔 파도손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한다. 6시 무렵 퇴근하면 스팸, 김치찌개, 제육볶음 등을 만들어 먹고, 다시 꼭 약을 챙겨 먹는다.
현진씨는 꼭 하루를 ‘NBA 2k24’라는 농구 게임으로 끝낸다. 다른 사람과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항상 혼자 한다. 난이도는 가장 쉬운 버전으로. 현진씨에게 농구게임은 작은 성공을 매일 맛볼 기회이자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다.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현진씨는 “규칙적인 하루하루가, 일자리가 너무 소중하다”며 “일상이 무너진다면 다시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집중된 지원…”전국 확대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해요.”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전문가가 한목소리를 냈다. 유선씨와 현진씨가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던 것도 정신질환자가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이 있었던 덕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복지부에 따르면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2018년 서울, 경기, 부산에서 시행되다가 2021년부터는 서울, 경기로 축소됐다. 수도권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2024년부터 전국범위 사업 확대 추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추진이 언제 실현될진 알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절차조력 지원사업은 정신병원과 연계해 진행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연계할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였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석 관악동료지원쉼터 부센터장은 “한국은 정신질환 치료가 병원 중심으로만 이뤄지는 탓에 조금만 증상이 악화하면 병원에 보내버리고, 당사자는 치료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역사회에서 증상을 회복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 중증 정신질환자도 유선씨나 현진씨처럼,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될 수 있다.
조희연·김나현·윤준호 기자
[제410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기]
조희연 세계일보 기자 /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숨겨진 84명의 공동수상자가 있는 기사입니다. 8개월의 취재기간 중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취재할수록 지난한 문제라는 걸 체감했고, 자칫 잘못 보도할 경우 조현병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거나 잘못된 제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습니다.
취재에 적극 응해준 84명의 취재원 덕에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 당사자,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인 이들은 기획 취지를 듣곤 “정말 중요한 문제”라며 각자의 경험을 상세히 풀어줬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장 잘 알고 있고, 개선을 절실히 바라고 있었기에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절박함에 빚지며 취재를 이어갈 수록 취재팀 또한 절박해졌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는 더 이상 한국사회 어딘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저희와 함께 울고 웃으며 대화한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들이 안전하길 진심으로 바랐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기사가 보도된 5일간 정책 당국인 보건복지부가 아무런 개선책을 내놓지 않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귀한 상을 주신 덕에 기사가 조금 더 주목 받고, 중증 정신질환자의 돌봄 문제가 조금 더 알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5월, 이도현(40)씨는 일주일 만에 10㎏이 쪘다.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걷기는커녕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겨웠다. 눈을 뜨기가 어려웠고, 침이 입술을 타고 흘러 턱밑으로 떨어졌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대부분이 겪는 약 부작용이었다. 증상이 악화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도현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환자처럼 보이면 안 된다.’ 움직이는 법을 잊지 않으려 매점에서 커피를 사서 좁은 복도를 쉴 틈 없이 오갔다. 기상시간에 맞춰 오전 7시에 일어났고, 10시에 시작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성심성의껏 참여했다.
하루빨리 병원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였다. 서른넷 당시 도현씨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장롱면허 탈출’, ‘한자 1급 자격증’, ‘연애’. 입원 기간 동안 도현씨가 작성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는 37번까지 내려갔다.
입원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도현씨와 달랐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였다. 도현씨 옆 병상을 쓰던 중년의 여성은 한 달이 넘도록 샤워를 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온 지 몇 년 됐을 거야.” 여성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이 그 세월을 증명하는 듯했다.
10년 넘도록 병원에 사는 이들도 있었다. 한 50대 남성은 퇴원하면서 병원에 짐을 두고 나갔다. 나갈 때부터 돌아올 생각을 한 것이다. 병원 밖에 자신의 집이 없고 가족마저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딱 병동 문앞까지였다.
도현씨는 기자에게 자신의 정신병원 경험담을 전하며, 장기입원 환자들을 안타까워했다. 정신병원 입원은 ‘단시간에’ 양질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사회와 단절되고, 장기화하면 사회 복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정신병원 ‘장기입원’의 나라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3개월 이상 정신병원에 장기입원한 환자는 1만9756명이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10만4849명)의 18.8%에 해당한다. 장기입원자가 많은 탓에 한국 정신병원 평균 재원기간은 186.6일(2021년 기준)에 달한다. 조현병 등 망상장애 환자만 놓고 보면 194.7일로 더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로, 2위인 스페인(81일)의 2배가 넘는다.
세계일보는 정신병원 입원을 경험한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14명과 가족 15명, 의료진 12명을 만나 정신질환자 치료의 현실을 들었다. 정신병원이 퇴원하지 못하는 장기입원자의 ‘집’이 된 사이, 정작 치료가 시급한 정신질환자는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집에 머물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급성기 환자는 입원 못해 불안
“병상이 없대요.”
고정훈(가명·60대)씨는 지난해 8월 밤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날 밤 그는 ‘턱’하는 둔탁한 낙하음을 듣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머리맡에는 따지 않은 참치캔이 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들 고준형(가명·33)씨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형씨가 조현병 치료약을 멋대로 끊은 지 몇 주쯤 지난 때였다. 준형씨는 약을 먹지 않으면 삽시간에 병세가 악화하곤 했다. 미국, 일본, 국가정보원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그럴 때면 골프채로 집안 물건을 부수고 폭언을 쏟아냈다. 더 심한 행동을 보이기 전에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켜야 했기에 정훈씨는 급히 경찰을 불렀다. 집에 도착한 경찰관은 정신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번번이 “병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훈씨는 환청에 시달리며 발버둥치는 준형씨와 집에 있을 생각을 하니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 졸이길 2시간. 준형씨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을 찾은 뒤에야 정훈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최근 입원이 너무 어려워졌어요. 병원들이 다 병상이 없다면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해요. 외래진료를 갈 수 있을 정도의 환자는 애초 급성기가 아니어서 입원이 필요 없는데….”
준형씨처럼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급성기’ 환자는 의료진이 24시간 지켜보고 출입에 제한이 있는 보호병동(폐쇄병동)에 입원하는데, 병동 병상이 계속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보호병상은 5만4427개로, 2014년(6만3324개) 대비 8897개나 감소했다. 비율로는 14.1%, 즉 7개 중 1개꼴로 사라졌다. 특히 전공의들이 집단이탈한 2월 이후 보호병상 감소세가 심화했다. 전공의들이 수련받던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의 보호병상은 2월 796개에서 3월 759개로 줄었고, 6월에는 734개까지 감소했다. 병원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보호병상 수를 904개로 신고해 두고 암암리에 병상 가동을 줄였다.
◆돈 잡아먹는 보호병상… 폐쇄 1순위
“병원장은 정신과에 병상을 주고 싶지 않겠죠.”
손지훈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집행부는 경영이 악화하면 정신건강의학과부터 찾는다. 정신과가 ‘돈 먹는 하마’이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원가보전율은 55%로 상급종합병원 진료과목 중 가장 낮다. 100원을 들여 환자를 치료했을 때 건강보험과 환자로부터 받는 돈은 55원에 그친다는 의미다.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정부가 올해 보호병동 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 등 수가를 올려주긴 했지만, 병원은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병상 간 이격거리를 늘리면서 수용 환자 자체가 줄어든 데다, 기존에 있던 입원료 가산을 폐지하면서 생긴 손실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서도 급성기 환자가 입원하는 보호병동은 특히나 골칫거리다. 법적 문제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서다. 증상이 심한 급성기 환자가 의료진을 폭행하는 일도 있고, 환자가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강박했다가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증상이 심각한 급성기 환자와 안정적 상태에 있는 만성기 환자의 진료수가 차이는 미미하다. 병원의 수익구조에도, 진료를 보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급성기 환자를 반길 이유가 없다.
의사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1곳은 아예 보호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이 11곳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를 경험하지 못한 채 수련과정을 마치게 된다. 강등현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형정신응급의료센터장)는 “보호병동이 없는 수련병원에 있었던 전공의는 급성기 환자의 입원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을 마친 뒤에도 보호병동이 있는 병원을 기피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급성기 수가 올리고, 만성기 환자 퇴원시켜야”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복지부는 급성기 정신질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난도가 높고 자원 투입량이 많은 급성기 진료 특성에 맞춰 진료수가를 개선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참여기관은 7월 기준 42곳에 불과했다. 전국에 있는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14곳만 참여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계속해서 추가모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평가 연구용역을 진행한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금 수준의 수가 인상으로는 적자를 면하지 못해서 그래요.”
수가 보상을 강화해 급성기 환자 입원을 받게 유도한다는 게 사업 취지인데, 병원은 수가 인상분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의 사업 참여 조건을 맞추려면 병원이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은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전문의를 환자 60명당 1명꼴로 두고 있는데, 사업에 참여하려면 전문의를 3배(환자 20명당 전문의 1명)로 늘려야 한다. 늘어나는 인건비에 비해 보상 수가가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선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급성기 환자 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일이다. 일본의 경우 급성기와 만성기 병동을 구분해, 급성기 환자의 입원료를 일반 입원료의 2.5배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권준수 한양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도 급성기 수가를 조정해 보호병동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고, 입원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만성기 환자가 조속히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다. 치료 의지를 갖고 증상을 관리하는 만성기 환자는 지역사회에 살며 외래진료를 받게 하고, 그들이 있던 병상을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자·타해 위험이 큰 급성기 환자가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병철 한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전체 병상 수는 절대 적지 않지만, 만성기 환자의 병상이 많다”면서 “이들이 퇴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급성기 환자 치료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퇴원환자 재입원 않게 전문가가 점검… ‘사례관리’ 확대를
오석진(가명·20대)씨는 지난겨울 전남 한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피워 경찰에 의해 국립나주병원에 응급입원됐다. 상태가 호전돼 이내 퇴원했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부모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부모는 석진씨가 가만히 집에 있는 모습을 두고 보지 못했다. 나가서 취직이라도 하라며 채근했다.
이때 국립나주병원 ‘사례관리’팀이 개입했다. 가정방문을 나온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부모를 설득했다. “약을 이전보다 잘 먹고 있는데 여기서 더 바라는 건 이릅니다. 아드님은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다.” 석진씨의 부모는 “그럼 나가서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하고 와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석진씨도 점점 약의 필요성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반년 후, 석진씨는 직장까지 다니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례관리란 정신질환으로 인해 일상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곁에서 외래방문점검, 투약관리, 가족교육 등을 진행하며 재입원을 막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신건강서비스다.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이를 주로 담당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세가 안정돼 퇴원하더라도 스트레스 상황이나 약 부작용 등으로 약 먹기를 포기해 다시 입원하는 사례가 많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 4명 중 1명(26.4%)은 2개월 내 다시 입원했다. 그들의 가족들과 의료계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유지’를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이유다.
실제로 사례관리는 환자의 지역사회 복귀에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부에서 지난해 반년(6~11월)간 시행한 사례관리 기반의 ‘급성기 치료활성화 시범사업’ 결과를 보면, 시범사업 대상자는 한 달 내 재입원율이 10.8% 감소했고, 퇴원 후 3개월 내 외래치료유지율이 11.7% 상승했다.
문제는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거부하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이들을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52조는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사람이 퇴원할 때 이를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도록 규정했는데, 환자 본인 동의가 필수다.
복지부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장애 등록자 수’는 10만4197명이었지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8만44명에 그쳤다.
당사자는 낙인을 걱정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을 돕는 ‘가족지원가’로 활동 중인 노은영(64)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하면 정신질환 진단 사실이 동네에 알려질까 봐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전히 정신질환자에 대한 시선이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의 ‘급성기 수가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병원에서도 퇴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최대 6개월간 사례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례관리 기간이 짧고, 수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완 전남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원을 통한 사례관리가 더 긴 시간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처럼 퇴원 환자로 제한하지 말고 증세가 악화해 입원하기 전에 사례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 단기간 의료비 상승이 부담될 수 있겠지만, 재입원하는 환자들 돌보는 데 투입되는 의료비를 고려하면 장기적으론 경제적인 투자”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