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몽골과 의미있는 첫 만남을 가진 시점을
역사가들은 1218년으로 봅니다.
몽골군에 쫓겨온 거란인들이 고려 땅에서 난동을 부리자
몽골 장수 카치운이 고려 서북면원수부에 거란인 소탕을 위한
합동작전을 요구했다는군요.
당시 칭기스칸은 고려와 '형제의 의'를 맺자고 했는데,
당연히 몽골이 형님이었겠지요.
 
 그로부터 788년이 흐른 뒤,
이런 형님 동생 관계가 역전(?)됐습니다.
몽골을 국빈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동포간담회에서
'우리가 형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거든요.
노 대통령이 든 이유인즉슨, 이렇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발상해서 서아시아, 터키 쪽으로 와서
남으로, 북으로 시베리와로 왔을 것이다. 한국 사람 저 북쪽으로
둘러서 온 것 같다. 몽골와서 다리가 아파
'더 못가겠다. 너나 가봐라'해서 아들에 아들,
아들에 아들 대를 이으면서
조금씩 동진해 한국까지 도착했죠.
형님이 여기 남고 동생이 왔는지,
동생이 남고 형님이 왔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동생은 아버님 모시고 살고
형님이 온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가 형님이라고 생각한다'
 
 농담조의 가벼운 얘기였고 결론은
'길게보면 같이 살아갈 사람들'이라는 것이지만
저는 노 대통령의 추측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합니다.
몽골에서는 우리와 반대로
가업을 막내 아들에게 맡기는 전통이 있으니깐요.
 
 형님 동생하는 얘기는 우스갯 소리라 하더라도
세계 제국을 건설한 경험이 있는 저력의 몽골에
지금은 우리가 '한 수' 전수하는 입장에 섰습니다.
노대통령 방문 기간 몽골은
'황무지에서 경제를 일군'(노대통령) 전략을
전수받기 원했습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부자된 지 오래 안돼 많은 돈은 없으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경험과 그 것을 함께하려는 의지를 갖고있다'고
화답했습니다.  
 
 과거 몽골 제국의 경쟁력 중 하나는
탁월한 통신망이었습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넓은 초원 지대에서
정보는 생사를 가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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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초원 지대의 게르(천막집). 좀 지나면 황무지같은 이 곳이 파랗게 변한답니다>

 
 말을 탄 전령이 릴레이식으로 정보를 나르던 역참제나
매를 이용한 정보 전달 시스템은
요즘의 인터넷과 DHL에 비견될 만 합니다.
칭기스칸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한 워싱턴포스트가
이런 몽골인을 '그들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700여년 전에
 전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개척해 놓았다'고 평가한 바 있듯이.
 

 

이제는 이 부분에서도 우리가 앞서갑니다.
노 대통령이 몽골 경제인과의 만남에서
'몽골은 국토가 넓은 만큼 정보 통신 인프라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우리의 자부심 만큼이나
몽골인의 자부심도 대단합니다.
한국을 보면서도
'너희들이 지금은 경제적으로 앞서있지만
한 때는 우리의 지배아래 있었던 나라이고
우리가 언젠가는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간다고, 현지 교민들은 말합니다.
몽골은 1921년 소비에트 적군과 연합해 중국군을 몰아내고
독립을 선포했으나 사회주의 체제에 묶여
88년 개혁 개방정책으로 선회하기 전까지
독자적 성장의 계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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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공산혁명의 영웅'인 수흐바타르 장군 동상. 신혼부부들이 결혼식 후 이 동상에 헌화
        하는 관습이 있답니다.>
 
 최근 한국인의 몽골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어글리 코리안'의 추태도 한국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노대통령 방문행사에 지원나온 울란바토르 대학의 학생은
한국 사람에 대한 평가를 묻자,
'나쁜 짓을 하고다녀 그다지 좋게 안보인다'고 답변했습니다.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지 않았는지,
우리를 되돌아봐야 할 때이고
현재의 겉모습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봐야 할 몽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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