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커에 새참을 실고

어머니와 밭일가던 시절이 가끔 생각납니다.

천태산 가는 길목에 있는 재 너머 밭과 황새 밭,

문중 선산 일부를 개간해 만든 큰 벌안과 작은 벌안.

어머니는 큰 벌안과 작은 벌안은 도지(賭地)를 놓으시고

재 너머 밭과 황새밭에는 고추나 참깨, 고구마, 콩 따위를

직접 심어 경작하셨습니다.

고등학교가 있는 대처(大處)로 유학갈 때까지 밭일을 거들었으니

저의 얼치기 농사꾼 이력도 십년은 족히 되는 셈입니다.

그 때는 왜 그리도 농사일이 싫었는지,

죽어도 농사는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보낸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농촌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농사일은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예전 모습 그대로인 고향의 밭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밭들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려니...

이미 농사지으러 낙향한 이들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인 것이

그 즈음이고 미국판 귀농기(歸農記)인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을 손에 잡은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 google.com 


 조화로운 삶은 쉰 살이 다 되어서야 농사일에 뛰어든 스코트 니어링이

일흔 두 살에 펴낸 영농 체험기이자 인생 독본입니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스코트 니어링은 헬렌 니어링을 만나

물질 문명의 굴레를 벗고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기로 마음먹고

1932년 버몬트州 시골로 들어가 농사지으며 19년을 삽니다.

이후 버몬트 농장 일대마저 개발 바람이 불어닥치자 니어링 부부는

52년 봄 메인주로 옮겨가 새로운 농장을 일굽니다.

조화로운 삶 이어가기 (Continuing the Good Life)에는

니어링 부부의 50년 가까운 귀농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 책을 펴낼 때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나이 각각

아흔 다섯살, 일흔 다섯살.

그럼에도 그들은 책의 서두에

우리는 삶에서 뒤로 물러설 뜻이 없다. 아니 오히려 살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들의 흔적이나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래서 메인주에 있는

니어링 부부의 농장을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농장이 있는 메인주 하버사이드는 대서양 물길이
육지 쪽으로 들어온 피놉스캇 만과 면한 지역으로

니어링 부부가 책에 적었듯이 거칠고 메마른 땅입니다.

 니어링 부부는 쓸모 잃은 농장을 사들여 기름진 땅으로 되살려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700 마일을 달려 메인주 항구 도시인 벨파스트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한 때는 조선소로 번성했던 항구였다는데

지금은 바닷 가재를 잡는 한산한 어촌이었습니다.

 




 피놉스캇 만은 눈이 시린 쪽빛입니다.

 


 3월 말인데도 겨울은 좀체 떠날 마음이 없는 듯 합니다.

얼마 전에 내린 눈으로 풍경은 완연한 겨울입니다.

그래도 얼음과 눈이 녹기 시작합니다.

머지않아 메인주 농사꾼들이 바빠지는

봄이 올 것이 분명합니다.

메인주 농부들에게 장작은 긴 겨울을 나기위한 필수품 중 하나입니다.

 


 벨파스트에서 농장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입니다.

시골 길을 물어 물어 농장을 3마일 정도 남겨둔 지점까지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그 곳부터 농장에 이르는 길은

며칠 전에 내린 눈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굿 라이프 센터(니어링 부부 기념관)에 확인, 또 확인하고

출발했건만 메인주의 3월 날씨는 역시 종잡을 수 없더군요.

결국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니어링 부부가 직접 지은 돌집과 손수 가꾼 농장을 보고싶었는데...
너무 억울해서 여행을 마치고 굿 라이프 센터에 사정을 설명했더니
날이 풀리면 꼭 한 번 찾아오라면서 농장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니어링 부부가 손 수 지은 돌 집>

        


                                                                       <거름더미>

                                                                <니어링 부부가 고안한 태양열 온실.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이 글은 미국 연수중이던 2005년 상반기에 블로그에 올린 글로 블로그 개편 도중 사진 배열이 뒤섞여 다시 올리게됐습니다. 미국에 계신 독자들이라면 올 봄에 날 풀리면 한 번 방문하셔서 저의 못다이룬 꿈을 이뤄주시길...방문하신 분들은 저에게도 니어링 부부의 농장을 간접경험할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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