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새틀러가 선고받은 형벌은 가혹했습니다.

 “일단 혀를 자르고

인두로 온 몸을 두 번 지진다.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있으면 다섯 번 더 지진다”

16세기의 가톨릭이 종교 개혁 운동에 가담한

‘스위스 형제단’ 멤버들에게 내린 형벌입니다.

먼저 혀를 자르는 이유는,

순교자가 남길 믿음의 증언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겠지요.

이를 알고 있는 새틀러는 붙잡히기 전에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겠다”고 형제단원들에게 약속합니다.

이제 혀를 잃은 새틀러는 인두 고문 끝에 죽음의 문 턱에 섰습니다.

바로 그 순간,

포승줄이 불에 타 끊어지자

새틀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멜 깁슨이

죽기 직전 ‘Freedom’이라고 외치듯이-.

 

  풍경이 아름다운

 펜실베니아주 랭카스터 카운티는 아미쉬의 마을입니다.

 

 



 순교자 새틀러 이야기는 아미쉬 마을의 종교 집회에서

단골로 거론되는 소재라는군요.

형제단을 설립한 펠릭스 만츠는

세계사 시간에 배운 종교 개혁가 쯔빙글리의 동지입니다.

그는 쯔빙글리의 온건 개혁 노선에 실망,

좀 더 급진적인 형제단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스위스 형제단 중에서도 성서를 보다 엄격히 해석하는 부류가

분파해 아미쉬를 이뤘다고 하니,

아미쉬는 흑이면 흑, 백이면 백일 뿐

회색은 존재하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 같습니다.

그러니 박해가 오죽했겠습니까.

이들은 18세기 초반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옵니다.

 

 아미쉬가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Witness’라는 영화일 것입니다.

 



 2005년이  ‘위트니스’ 상영 20주년이었습니다.

랭카스터 카운티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아미쉬 관광붐을 조성하더군요.

그러나 정작 아미쉬들은 관광객의 잦은 발길이 마땅치 않습니다.

영화 속의 존 북(해리슨 포드)이 목격한 脫俗의 아미쉬들이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전기도 없고 전화도 없는 마을,

말과 쟁기로 밭을 갈고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정부의 교육을 거부하고 아이들을 스스로 교육하는 사람들,

옷 색깔과 마차의 형태까지 규제하며 사는 사람들.

저녁엔 램프를 켜고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책을 읽는 사람들.

음식도 불을 때서 해 먹고(연전에 프로판 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도 대신 수동식 펌프을 사용하는 사람들.

 

 한 켠에 빨래판이 놓여진 부엌이며

수동식 펌프 등등이

어쩌면 그렇게도 어린 시절 저의 시골 집과 닮았는지.

 

 선거도 하지 않고

정부 일에도 관여치 않고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 보장이나 의료 보장 혜택도 거부하는 사람들.

새 신랑 신부가 살 집을

공동체가 합심해서 지어주고

경조사는 온 마을이 함께 치러내는 사람들.

 




 

산아 제한 없이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3대가 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공식 교육은 8학년까지만 마치곤

 

남자는 농사일과 목수일에

여자는 가사일과 퀼트 만들기에 종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들.

결혼은 일찍.

대신 Non-Amish와의 결혼은 결사 반대인 사람들.

그들은 미국으로 이주해 온 18세기 당시의 생활 양식을

우주 왕복선이 발사되는 21세기에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미쉬들은 성인이 되면

이런 엄격한 규율에 복종할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 전에 1년 정도 속세 생활을 하는 기간이 있는데

요즘엔 공동체로 복귀하지 않는 젊은이들도 나오고 있답니다.

 

 아미쉬들은 세속의 사람들을 ‘Non-Amish’라고 부릅니다.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이 엄격하더군요.

바로 새틀러 같은 순교자들의 후예냐, 아니냐는 판단이지요.

문명의 결과물인 편리함이나 쾌락, 사치 등과 같은

세속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순교자의 삶을 따르지 않는 만큼 그 후예가 아니라는 식입니다.

이러다 보니,

아미쉬들은 물질 문명의 수용 정도에 따라

보수와 진보(New Order Amish)로 나뉘어 있습니다.

보수파는 특히 ‘Old Order Amish’라고 부르는데

흔히 아미쉬라고 하면 이들을 지칭합니다.

마차만 보면 타고 있는 아미쉬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알 수 있다는데,

보수 아미쉬는 쇠 바퀴에 천으로 된 문을 선호하는 반면

진보 아미쉬는 고무 바퀴에 여닫는 문을 선호한다는군요.

최근엔 마차 뒤에 불빛에 반사되는 삼각 표지를 설치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양측이 설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자동차와 마차 간 추돌사고가 빈발한데 따른 대책으로

펜실베니아주가 마차의 삼각 표지 부착을 의무화한데 따른 것이지요.

이제 진보 아미쉬는 마차에 삼각 표지 뿐 아니라

헤드라이트와 백 미러, 좌우 깜빡이까지 달고 다니지만(젊은

아미쉬 중엔 차를 몰고 다니는 이들도 다수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차 앞서 달리는 이 마차는 진보 성향인 듯 합니다>

 

보수적인 아미쉬들은 아직도

밤 운전할 때 랜턴을 매다는 것이 고작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세계화와 기술 우선주의에 반대하고

환경론자들인 점에서는 같습니다.

랭카스터 아미쉬 마을의 가이드는

“아미쉬는 기술 문명이 싫어서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좋아서 피한다. 기술 문명이 가족 구성원들의 사이를

멀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아미쉬들의 상부상조 정신이나

가정 중심주의(이혼은 못한다는군요),

 


자작농 중심의

자급자족 체제 등은

 

 물질 문명의 화신이랄만한 미국의 주류 문화와는

정 반대의 끝에 위치한 문화입니다.

요즘은 주류 문화에 지친

미국인들이 아미쉬의 삶을 기웃거립니다.

그렇다 해도 대다수에게

아미쉬는 별난 족속입니다.

아미쉬는 외양부터가 별나긴 합니다.

남자들은 결혼하면 콧수염은 깎고 턱수염만 기르니…

 

그러나 내게는

한 아미쉬 농부의 다음과 같은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별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배고플 때 먹고

그리고 저녁에 잠자리에 듭니다”

 

 어쩌면 주류 문화 속에서 갈증을 느끼며 사는 우리들이야말로

별난 족속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후기:아미쉬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따라서 일부 사진은 빌 콜먼의 작품을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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