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다음 행선지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까지는
비행기로 6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알타이 산맥넘고
중가리아 분지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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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 본 중가리아 분지-이전엔 몽골 땅이었으나 지금은 중국 땅이 됐습니다>

 
 천산 산맥을 넘으니
조금 뒤 카스피해가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바람의 도시'라는 의미의 바쿠는,
 카스피해에 면한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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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년 가을부터 시작된 칭기스칸의 이슬람권 정벌은
흥미롭게도 노대통령의 이날 동선과 거의 일치합니다.
시속 1000km에 육박하는 속도의 비행기로도 7시간 가까이 걸린 지역을
수십만 군대와 수백만 병참 가축이 함께 이동한 것입니다.
천산은 중국 파미르 고원에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까지
2000km 정도 뻗어있는 산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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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천산 산맥>

 
 칭기스칸 군대는 천산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서쪽으로 내달렸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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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눈을 이고있는 천산 아래 분지로 수 십만의 몽골군이 진군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중가리아 분지가 끝날 즈음,
그 군대 앞에 천산이 길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 바람 속에,
군대는 천산을 넘어야했습니다.
수많은 군대와 가축이 희생됐습니다.
 
 무모한 정벌길이었습니다.
무엇이 칭기스칸의 말머리를 서역으로 돌렸을까요.
 
 배석규는 그의 저서 '칭기스칸, 천년의 제국'에서
칭기스칸의 서역 정벌이 '선택당한 전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칭기스칸은 상인들이 가져온 서쪽 나라 '호레즘' 소식과
그 나라 물품에 관심을 가져
처음엔 교역을 원했다고 합니다.
바쿠 시내 곳곳에 카페트 가게가 많았는데
당시에도 옛 페르시아 지역의 카페트는
주요 교역 물품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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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쿠 시내에는 이런 카페트 상점이 즐비...>
 
  그래서 평화조약을 맺고 교역을 하자는 서신을 보냈는데
여기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칭기스칸이 서신 말미에 친근감을 표시하는 의미로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덧붙인 내용이
호레즘 군주인 무함마드의 심기를 건들였답니다.
무함마드는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상인들을 통해 호레즘 왕국의 정보를 취합해온 칭기스칸과 달리
무함마드는 자신의 역량만 믿고 국제 정세에는 귀를 닫은
어리석은 군주였습니다.
결국 그는 몽골 사절단을 첩자로 몰아붙여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살해했습니다.
칭기스칸은 교류 대신 전쟁을 선택합니다.
 
 후대 이슬람 역사가들은 이 대목을 두고,
땅을 치며 안타까워했다고, 배석규씨는 강조했습니다.
'무함마드의 무모한 행위로
얼마나 많은 이슬람인들이 피를 흘리게 되었느냐'면서.
 
 실제 이슬람 민중들은 지도자를 잘못 만난 죄로
무수한 피를 뿌려야했습니다.
호레즘 왕국은 몽골군에 의해 철저히 유린됩니다.
몽골군은 자신들에 저항하거나
몽골군을 한 사람이라도 희생시킨 도시의 경우,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생긴 것은
고양이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도륙했습니다.
'몽골군에 맞서면 몰살 당한다'는 공포감은
전쟁 대신 투항을 유도하기도 했으니
칭기스칸은 효과적인 심리전을 병행한 셈입니다.
화를 자초한 무함마드는
몽골군의 끈질긴 추격을 피해다니다
결국 병을 얻어 죽습니다.
무함마드의 마지막 은신처는
카스피해의 섬이었습니다.
지금의 아제르바이잔 영토였을지도 모릅니다.
 
 아제르바이잔 역시 호레즘 정벌의 여파로
100여년간 몽골군의 지배를 받게됩니다.
바쿠 시내의 유적지인 '처녀의 망루'에는
몽골 지배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몽골의 '칸'(왕)에게 몸을 바쳐야하는 운명에 놓인
성주의 딸이 바로 이 망루 위에서 카스피해로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져내려옵니다.
딸을 요구한 게 몽골 왕이 아니라
귀족이라는 다른 버전도 있습니다만...
어떻든 지금은 카스피해가 망루 아랫쪽으로
수 백미터나 물러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이 탑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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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아제르바이잔 경제인 오찬 연설 도중
'한국과 아제르바이잔 양국은 외세의 침략을 꿋꿋이 이겨낸
자랑스런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세에는 몽골만 포함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은 후일 제정 러시아의 패권 하에 들어갔고
20세기초 독립을 선언했으나
러시아 볼세비치 혁명군에 접수돼
또 다시 소 연방에 편입됐습니다.
한국을 침략한 외세로는
몽골도 포함돼 있습니다.
몽골과 아제르바이잔, 한국의 얽히고설킨 인연이
새삼스러워지는 순방길입니다.
 
*이번 노대통령 순방은 정상회담 내용 보다
순방과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
대통령의 대북 관련 언급이 더 크게 취급되는 분위기네요.
순방의 주제인 미래의 자원과 에너지 확보 문제도
중요할 것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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