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 글에 붙는 댓글을 꼼꼼이 읽는 편이다. 네티즌들이 궁금해하는 대목은 다음 글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다만, 이 글의 관점을 문제삼는 댓글은 대개는 무시한다. 필자는 미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편향·여성 경시 행태나 ‘미국 우선주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쪽에 서 있다. 트럼프는 그런 국수주의, 편가르기 전략으로 공화당 경선에서 재미를 봤다. 하지만 그런 자세로는 더 다양한 미국인의 지지가 필요한 본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본다. 설사 트럼프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현실화시킨 반(反) 세계화 흐름 속에서 미국 대통령이 되는 행운을 잡는다해도 트럼프의 공약으로는 그가 약속한 ‘위대한 미국’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런 필자의 견해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견해도 십분 존중한다. 더욱이 필자의 졸고에 댓글을 다는 성의를 보인 만큼 필자도 나름의 성의를 보이고 싶다. 그래서 이번 회에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트럼프가 지금 클린턴 보다 지지율이 낮은 것은 100% 그의 책임이다.

트럼프가 지난 5월3일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뒤 그의 지지율은 껑충 뛰었다. 주요 정치이벤트 직후에 지지율이 오르는 이른바 ‘컨벤션 효과’ 덕분이다. 클린턴을 추월하는 조사도 나왔다. 이 때 민주당 대선경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경선 맞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의해 발목이 잡혀서 경선을 종결짓지 못하고 있었다.
 당내 도전자들을 모두 정리한 트럼프로서는 후방을 걱정하지 않고 진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통상적인 후보라면 경선 과정에서 제시했던 과격한 공약들-예컨대 무슬림 입국 금지나 불법 체류자 전원 추방,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 쌓기 등-을 순화시키거나, 최소한 그런 공약을 부각시키는 일은 삼갔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달랐다. 멕시코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화당 소속인 수사나 마르티네즈 멕시코주 주지사를 공격하고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각을 세웠다. 인디언 혈통설이 나도는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향해 ‘포카 혼타스’라는 인종차별 표현을 사용하며 비아냥댔다. 트럼프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곤잘로 쿠리엘 연방판사를 겨냥해선 그가 히스패닉 혈통이라서 편파적일 것이라고 예단했다. 쿠리엘 판사는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권자로 멕시코 마약조직 소탕 과정에서 살해 위협까지 받은 인물이었는데도 트럼프의 인종 공격은 피해가지 못했다.
 

 트럼프는 또 올랜도 총격 테러가 발생하자 무슬림 입국 금지 공약을 다시 꺼내들었다. 트럼프의 쿠리엘 판사 비판이나 무슬림 입국 금지 주장과 관련해선 대다수 보수 유권자들도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가 자충수를 두고 있는 사이에 클린턴은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트럼프가 후보 확정 이후 천금같은 50일을 쓸데없는 논란이나 불러일으키며 낭비하고 있는 사이에 클린턴은 트럼프를 가볍게 추월했다. 트럼프의 하락세는 기존 공화당 대선 후보들 보다 가파른 것이다. 아래는 대선을 200일∼100일 앞둔 시점의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율 추이다.

 

 

이제 트럼프에게는 반전의 기회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 여성 후보인 클린턴이 여성 유권자의 호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실시된 월스트리트저널(WSJ)·NBC방송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문대졸 이하 학력의 백인 여성층에서 클린턴을 앞서고 있다. 대다수 백인 남성은 학력에 관계없이 클린턴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가 백인 유권자층에서 클린턴에게 밀리는 곳은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층이다. 트럼프는 이들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고학력 백인 여성표에서 재선에 도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앞섰다. WSJ은 “펜실베이니아나 콜로라도 같은 경합주의 교외 지역에서 트럼프가 표를 얻으려면 고학력 백인 여성표를 가져와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건 트럼프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다만, 폭스뉴스 앵커 메긴 켈리에 대해 “그의 눈에서 피가 나왔다. 다른 데서도 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한 것 같은 여성 비하 발언은 절대 금물이다. 

트럼프가 고학력 여성의 지지를 높일수 있다면 그건 그가 보다 정상적인 후보가 됐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최소한 2012년 대선 당시 롬니가 이긴 주들은 트럼프도 가져올 수 있다.  

 
 

 

롬니는 2012년 대선에서 2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트럼프는 이제 206명에 +알파를 해야 한다.

WSJ은 트럼프가 롬니 승리주를 모두 차지한다는 전제 위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

그 하나가 플로리다 루트다.  플로리다 승리를 전제로 한 전략이다.
트럼프가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가져간 플로리다(선거인단 29명)를 빼앗아오면 대선 승리 전략을 활용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여기에 경합주인 오하이오(18), 아이오와(6), 뉴 햄프셔(4), 메인(4)을 보태면 트럼프가 확보한 선거인단은 267명이 된다. 이제 펜실베이니아(20), 미네소타(100, 위스콘신(10), 콜로라도(9), 미시간주(16) 가운데 하나만 가져오면 당선 조건인 선거인단 270명을 가볍게 넘길 수 있다.

그런데 플로리다의 인종별 구성은 트럼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트럼프 반감이 강한 히스패닉이 30% 가깝게 되고, 흑인 비율도 15%를 넘는다. 10명 중 4명꼴로 트럼프를 싫어하는 히스패닉과 흑인이다.

또 다른 루트가 플로리다를 우회해서 가는 길이다. 플로리다 루트 보다는 좀 험한 코스가 되겠다.

트럼프는 플로리다 대신 아이오와, 메인, 뉴햄프셔에서 승리해야 한다. 트럼프 지지세가 강한 백인 노동자층이 다수 거주하는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까지 가져오면 선거인단 258명을 확보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제 12명을 더 얻어와야 한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세가 강했던 버지니아(13)를 공략할만하다. 버지니아는 오바마가 등장하기 전만해도 공화당의 아성이었다. 트럼프가 공화당 단합만 이뤄낸다면 버지니아 승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나. 그 만큼 트럼프는 있을 법 하지않는 일을 성사시킨 비전통적 후보다. 본선에서도 그런 기적을 만들지 말란 법은 없다. 대신 트럼프가 좀 변해야 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조남규 국제부장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