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o Machiavelli)는 저서 '군주론'에서 지도자의 조건으로 ‘비르투’(virtu·역량)를 들었다.
비르투를 갖춘 인물에게 포르투나(fortuna·행운)까지 따르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역량이 없는 인물은 설사 행운이 따라줘도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역량을 갖추고 행운까지 따른 인물이 시대정신과도 맞아떨어진다면? 그런 인물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500년 전 마카이벨리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 대선에서도 각각 민주,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선정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역량이 미국민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CNN 주최 토론에 나선 힐러리 |
정치인 역량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게 권력 의지다. 다른 자질은 대체 가능하지만 이건 누가 대신해줄수 없다. 수많은 명망가들이이 정작 선거전에서는 힘을 못쓰는 이유가 바로 권력 의지가 약해서다. 정치인이 비전을 실행하려면 권력을 잡아야 한다. 정당의 존재 목적이 정권 창출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대선 후보를 권력 의지라는 잣대로 평가할 때 힐러리 클린턴(이하 힐러리)은 A플러스급 정치인이다.
2000년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면서 자기 정치를 본격화했다. 힐러리는 선출직에 나서 당선된 첫번째 퍼스트 레이디다. 당시는 힐러리가 남편이자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백악관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빌과의 결혼생활을 지속할 지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2003년 쓴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이렇게 썼다.
“내 의사 결정(상원 선거 출마) 과정이 가져온 한 가지 소득은 빌과 내가 또 다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둘 다 느긋해지기 시작했다. 빌은 나를 돕고 싶어했고, 나는 그의 전문 지식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빌은 나의 수많은 걱정을 일일이 검토했고, 나의 승산을 신중하게 평가했다. 이제는 형세가 역전되어, 내가 언제나 빌을 위해 맡았던 역할을 빌이 맡고 있었다. 빌은 조언하고, 결정은 내가 내렸다. 내가 출마하면 처음으로 빌에게서 독립하여 내 책임 아래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다.” (웅진닷컴의 ‘살아있는 역사’, 김석희 옮김 인용)
힐러리는 빌과 이혼하는 대신 ‘정치적 동거’를 선택한 셈이다.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빌과 힐러리 |
힐러리가 최근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각별한 부부애를 고려하면, 정치적 동거라는 표현이 좀 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치 칼럼리스트인 크리스토퍼 앤더슨의 저서 ‘아메리칸 에비타’(American Evita)에는 이 보다 더 심한 표현이 등장한다. 앤더슨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인 클린턴 부부는 8년 간의 백악관 생활을 정리할 즈음에 이미 백악관 재입성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썼다. 클린턴 부부의 백악관 참모들은 그 계획을 ‘The Plan’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힐러리가 재선 대통령이 돼서 클린턴 부부가 8년 더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는 구상이다. 힐러리는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빌은 미 역사상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클린턴 부부는 미 역사상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세운 재임 기간(4선에 성공했지만 4선 대통령 취임 직후 숨지는 바람에 12년 밖에 재임하지 못했다)을 넘어 16년을 부부가 번갈아가며 집권하게되면 역사적 기록을 세우게 된다. 앤더슨이 전하는 에피소드 하나.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백악관을 비워주기 전날 밤, 이삿짐을 꾸리던 빌은 참모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We’ll be back)”고 말했다는 것이다.
‘The Plan’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앤더슨이 2004년에 힐러리의 대선 출마를 확신하면서 쓴 책에 나오는 얘기이니 전혀 낭설은 아닐 것이다. 힐러리의 2008년 대선 출마 과정을 짚어보면 앤더슨의 전망은 대부분 그대로 실현된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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