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보수가 분열하고 있다.

보수의 분열은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깜짝 선출되는 드라마를 통해 가시화했다. 트럼프 후보는 공화당 주류와 타협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기조인 자유무역이나 개입주의를 배척했다. 자유무역과 개입주의는 공화당의 전성기를 구가한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정부의 국정 운용 기조다. 레이건과 부시의  보수는 낡은 보수 취급을 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이 커질수록 공화당을 떠받친 핵심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백인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했고 자살률과 마약 범죄율은 치솟았다. 백인의 자존감은 급격히 추락했다. 이들은 워싱턴 정치를 원망했고, 헌신적으로 지지했던 공화당을 성토했다. 그러던 차에 백인 우월주의를 외치는 트럼프가 등장하자 그를 자신들의 대변자로 내세웠다. 이제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 됐다.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는 11월 선거 승리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하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처지이나 최근 내분이 격화되면서 트럼프호는 난파 직전이다.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에 참여했던 보수 인사들은 거의 전원이 트럼프 반대 진영에 남았다. 최근에는 그나마 트럼프에 우호적이었던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마저 트럼프와 선을 긋고 나섰다. 트럼프는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자신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판하자 두 사람을 비토했다. 

 깅리치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만년 야당 공화당을 42년 만에 하원 다수당으로 만들면서 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 정치인이다. 이른바 ‘깅리치 혁명’이다. 그 힘으로 하원의장이 된 깅리치의 정적(政敵)이 다름 아닌 당시 백악관 주인이던 클린턴 부부였다. 특히 깅리치는 퍼스트 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깅리치가 올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의 부통령 러닝 메이트로 이름이 오르내린 데는 이런 배경도 고려됐을 것이다. 트럼프의 낙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깅리치는 트럼프 편에 서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 때리기에 동참했다. 그런 깅리치마저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있다면 트럼프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이미 공화당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중도파 공화당원들은 공화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밀었다. 지금은 굿이나 보자는 관망자로 돌아섰다. 이들에게 트럼프의 편집증적인 히스패닉 공격 행태는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중도 공화당원들은 2008, 2012년 대선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소수인종 증가세를 들고 히스패닉 끌어안기에 나섰다. 그래서 불법 체류자를 합법화하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의 이민개혁에 동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이용해 공화당의 이런 중도화 노력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 여부에 관계없이 보수 유권자들이 인증한 ‘트럼프주의(Trumpism)’의 수용 여부를 놓고 노선 투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공화당 주류는 급속히 재편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백인 노동자층과 기업인, 복음주의 유권자로 이뤄진 공화당 연합은 급속히 구심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면 급진적인 경선 전략을 완화시킬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선후보가 된 이후 발언이 더 거칠어지고 있다.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80%대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2012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는 공화당 성향 투표자의 93% 지지를 받고도 오바마에게 졌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지면 소수인종을 포용하려 했던 레이건, 부시의 정당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남긴 유산은 두고두고 공화당 내분의 불씨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족 하나. 이 글을 정리해서 보내놓은 뒤 트럼프가 매케인과 라이언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번복했다는 외신 기사가 올라왔다. 할 수 없이 기사를 고쳐보낼 수 밖에 없었다. 국외자인 나도 짜증이 나는데 미국 유권자들은, 특히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선출한 백인 노동자층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오락가락 행태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조남규 국제부장 
삽화 = 워싱턴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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