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이후 힐러리)이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배한 뒤 '살생부'를 만든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끝까지 힐러리에게 충성한 사람은 1등급,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는 7등급. 이렇게 7단계로 분류했는데 이 살생부는 후일 은혜를 갚고 복수를 하는데 활용된다.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나 패배했더라도 후일을 기약하는 후보는 반드시 승인과 패인을 검토하고 선거 공신과 배신자를 정리한다. 2002년 한국 대선이 노무현 당선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내놨을 때도 노무현 진영에서 만들었다는 '살생부'가 나돌았다. 신상필벌은 제대로 된 선거캠프의 작동원리다. 일찍이 권력의 본질을 통찰해본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저서 '군주론'에서 "군주는 신민의 결속과 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랑도 느끼게 하고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굳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권고했다. 오늘날에는 군주를 정치 지도자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다.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 힐러리다.
힐러리는 '의리의 정치인'이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측근들은 끝까지 챙긴다. 배신자는 반드시 응징한다.
"정치에서 의리를 빼면 뭐가 남나?"
2012년 빌 클린턴(이후 빌)이 제이슨 올트마이어 하원의원의 배신 사례를 거론하면서 했다는 이 말에 클린턴 부부의 권력운동 방식이 함축돼 있다.
과거 힐러리의 신세를 졌던 올트마이어는 2008년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중립을 선언, 힐러리에게 배신을 때렸다. 힐러리 살생부에 오른 올트마이어는 4년 뒤 응징당했다. 2012년 민주당 하원의원 예비경선에서 올트마이어는 압도적 우세 속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2008년 힐러리편에 섰던 마크 크리츠에게 졌다. 국무장관인 힐러리를 대신해서 빌이 크리츠를 적극적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올트마이어는 클린턴 부부의 신상필벌이 작동된 수 많은 사례들의 하나일 뿐이다. 클린턴 부부는 왜 배신자를 응징했을까. 2016년 대선을 내다보고 민주당 대선경선을 좌지우지하는 '슈퍼대의원'들에게 '배신은 죽음'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려했을 것이다. 그 전략은 성공했다. 힐러리는 올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일으킨 '샌더스 바람'에 위기를 맞았지만 슈퍼대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가까스로 민주당 후보가 됐다.
배신자를 응징하는 일과 충성파를 챙기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힐러리와는 친해지기가 쉽지 않지만 한번 인연이 맺어지면 배신하지 않는 한 끝까지 간다. 측근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대개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1993~2000)부터 손발을 맞춘 인사들이다. 2008년 민주당 경선 때 힐러리 측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힐러리랜드'(Hillaryland)라는 조어는 지금도 힐러리 최측근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거의 여성들이고 힐러리와는 20년 정도 고락을 함께한 이들이다. 며칠 전 '섹스팅'(음란메시지 주고받기)에 중독된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발표한 후마 애버딘이 힐러리랜드의 일원이다. 애버딘은 과거 남편의 섹스팅이 공개됐을 때마다 그를 용서했으나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힐러리의 두번째 대선 도전에 자신의 개인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힐러리랜드의 전사(戰士)다운 결정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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