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출간된 책 한 권이 미국 대선판에 파문을 일으켰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꺾고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시점이었다. 

저자는 힐러리가 퍼스트 레이디이던 시절 백악관 경호원으로 활동했던 게리 J. 번.

 그는 저서 ‘성격의 위기’(Crisis of Character)에서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 시절 엘레노어 먼데일과 백악관에서 밀회를 즐기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엘레노어는 지미 카터 정부의 부통령을 지내고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월터 먼데일의 딸이다.  

“(1996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대통령은 (백악관) 맵 룸에 있었다. 한 경호원이 맵 룸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노크를 먼저 했어야 했다. 엘레노어 먼데일이 보였다. 대통령과 낯 뜨거운 자세를 취한 채. 경호원은 황급히 자리를 떴고 문은 닫혔다.”

엘레노어 먼데일, 빌 클린턴, 모니카 르윈스키

엘레노어는 당시 36살로, 방송 앵커로 활동 중이었다. 2011년 뇌암으로 숨진 엘레노어는 생전에 “빌과는 단지 친구 사이였다”고 말했다. 번은 저서에서 빌과 엘레노어를 불륜 관계로 묘사했다. 번은 동료 경호원의 진술을 인용해 빌이 엘레노어 뿐 아니라 백악관 여성 직원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고 암시했다. 이 백악관 여성 직원은 빌을 탄핵 직전까지 몰고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는 다른 여성이다. 빌이 르윈스키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옆 작은 서재에서 오럴 섹스를 즐긴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다.

 번의 저서는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번의 폭로성 저서는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인들은 빌과 힐러리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있다.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는 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힐러리를 괴롭힌 것은 빌의 바람기였다.

빌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토로했을 때, 힐러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고백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에게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나는 점점 더 분노에 사로잡혔다.…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빌을 철석같이 믿었다는게 분통이 터졌다.…나에게 남은 것은 깊은 슬픔과 실망과 풀리지 않는 분노뿐이었다.…아내로서 나는 빌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 김석희 옮김, 웅진닷컴)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를 결심한 힐러리는 빌과의 결혼 생활을 깨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빌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세월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EPA연합뉴스
빌은 지난달 힐러리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매우 사적인 찬조연설을 했다.  

그 연설은 “1971년 봄, 나는 한 소녀를 만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힐러리와 함께 한 45년을 얘기했다. 르윈스키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부부로서, 정치적 동지로서 함께 해온 애환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 연설을 지켜본 미국인들의 심경은 한 갈래가 아닐 것이다. 두 갈래 길에서 빌을 선택한 힐러리의 결정도 이번 대선에서 새롭게 평가받을 것이다. 힐러리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빌도 함께 백악관으로 돌아간다. ‘퍼스트 젠틀맨’ 빌 클린턴은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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