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한 힐러리 클린턴(이하 힐러리)은 2003년 상원 군사위 위원이 됐다. 전통과 관행을 중시하는 미 상원에서 초선 의원이 군사위에 배정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기적은 우연이 아니다. 힐러리의 군사위 배정도 그렇다. 힐러리는 상원에 들어간 직후부터 군사위를 주목했고, 오랫동안 기회를 노린 끝에 군사위의 자리가 나자 그 기회를 붙잡았다. 정치 전문가들은 힐러리가 상원 군사위에 집착한 행태를 그의 대통령 꿈과 연결시키곤 했다. 군 최고통수권자(대통령)가 되려한 힐러리가 군 경험을 하기 힘든 여성의 한계를 그런 식으로 극복하려했다는 것이다. 대권 재수 끝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힐러리이고 보면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힐러리는 군사위 활동을 계기로 군심(軍心)을 얻게된다. 힐러리에 관한 군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힐러리는 대학 시절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관련 인사들과 친하게 지냈다. 남편인 빌 클린턴도 대학 시절 베트남전에 반대하면서 베트남전 징병을 회피했다. 클린턴 부부는 보수 성향이 강한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정치인이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힐러리는 군사위 위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이런 인식을 돌려놓기 위해 애썼다. 군 장성들은 힐러리 의원에게서 과거 자신들이 생각해온 힐러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힐러리는 미국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군대를 지지했다. 

힐러리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전쟁 권한을 부여하는 상원 결의안에 찬성했다. 결의안 찬성 기록은 2008년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의 결의안 반대 투표와 대비되면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민주당 좌파가 오바마에게 쏠리는 요인이 됐지만 군의 힐러리에 대한 평판은 좋아졌다.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는 기간에도 힐러리는 공화당원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호흡을 맞추며 오바마 정부 내에서 대외 강경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민주당 내에서 힐러리는 대외정책에 관한 한, ‘매파’(hawks)로 분류된다.

매파 힐러리는 올해 민주당 대선경선에서도 미국의 대외개입 정책에 반대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거센 도전을 받아야 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힐러리를 군수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로 몰아붙였다. 본선에서는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유사한 공격을 받고 있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으로 반복된다더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공화당이 트럼프를 대표 주자로 내세웠다는 것은 한 편의 코미디다.

공화당 행정부에 참여했던 외교 국방 인사들이 지난 주 트럼프 대신 클린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미국에선 정치적 소신에 따라 상대당 대선후보를 지지하곤한다. 2008년 공화당원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같은 흑인인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외교안보 인사들이 집단으로 자신들이 소속된 정당의 대선후보를 비토한 사례는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처음 본다. 이들 중 일부가 트럼프 비토를 넘어서 힐러리 지지까지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힐러리가 외교 안보 인사들로부터 군 통수권자 인증서를 받아든 것이나 다름없다. 힐러리라면 치를 떠는 미국 보수가 ‘매파’ 힐러리는 인정한 셈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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