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 공화당의 대선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도 대선 주자들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정당 내 유력 인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보이지 않는 경선’(invisible primary)이라고 부른다. 경선을 앞두고 기초 공사를 하는 시점이다. 왜 ‘보이지 않는’ 경선일까. 그건 경선 전에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당 유력 인사나 후원자, 로비스트들의 움직임들은 은밀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경선)를 시발로 민주, 공화당의 경선이 본격화하면 ‘보이지 않는 경선’의 성적표대로 순위가 매겨지곤 한다. 주요 정치인의 지지 선언도 중요하고 후원금 모금액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면 안된다. 일반 유권자에게 어떤 정보가, 얼마나 자주 입력되느냐에 따라서 후보들의 지지율이 출렁거리게 된다. 미디어 노출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경선’의 핵심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달말 각각 민주,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보이지 않는 경선’에서 이미 1위를 차지한 후보였다. 특히 미디어 노출 빈도에서 트럼프는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언론이 클린턴과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만든 셈이다. 

미디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에 밀실에서 결정되던 폐쇄적 후보 선출 방식이 경선 방식으로 바뀌면서 더욱 커졌다. 미디어는 유권자들의 생각과 화제를 좌우한다.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 우선 누군지 알아야 좋아하든 싫어하든 선택이 가능하다. 인지도를 높이는 첩경은 언론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후보들은 신문이나 방송의 광고를 돈을 주고 산다. 그런데 트럼프는 단 한푼도 안들이고 수천만달러 어치의 광고 효과를 냈다. 쇼맨십과 튀는 공약을 통해서다. 트럼프가 지난해 공화당 대선경선 출마 선언을 했을 당시 지지율은 한자리수에 그쳤다. 공화당 유력 정치인 중 그 누구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일반 공화당원 중에서도 트럼프의 출마는 가십거리로 비쳤다. 보통 이런 후보는 미디어가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자주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트럼프는 뉴스를 좇는 미디어의 속성을 역이용했다. 정치인의 금기로 돼있는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언론이 자주 다루자 트럼프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트럼프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지지율이 상승하자 언론은 이제 더 자주 트럼프를 다루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미디어는 시청율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보도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트럼프를 띄우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미디어분석팀이 올초 미국 대선 경선이 시작될 때까지 1년 동안의 미디어 보도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가 미디어 노출로 얻은 광고 효과는 무려 5500만 달러(약 614억원) 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미디어의 과도한 트럼프 보도행태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미디어가 2억 달러에 달하는 광고 효과를 트럼프에게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 미디어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보도가 더 많았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실제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도 싫어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기사는 부음 기사 빼고는 다 좋아한다는 농담도 있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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