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이 끝내 무릎을 꿇었다.
2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가 후보 지명을 확정지은 이후에도 트럼프의 주요 공약들이 공화당 강령과 배치된다면서 지지 입장을 유보해왔다. 그 사이 트럼프의 생각이 바뀐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라이언도 “여전히 그와 나 사이에는 이견이 존재하지만 이견 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왜 라이언은 트럼프를 지지했을까? 그는 “트럼프가 보수주의 아젠다를 입법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지만, 그 말을 누가 믿을까. 라이언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
이제 라이언과 트럼프는 한 배를 타게됐다. 그런데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미워한다는 점을 제외하곤 공통점이 많지 않다. 어떤 지점에선 정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이민개혁이다.
이민개혁은 민주당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를 맨먼저 추진했던 대통령은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였다. ‘돌아온 탕자’ 부시 대통령은 거듭난 기독교인이 된 이후 ‘다문화주의’를 신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앵글로 색슨 백인만의 세상을 만들려했던 공화당 우파와는 달랐다. 부시의 이런 관용 정책은 증가세인 히스패닉 표를 따진 정치적 선택이기도 했다. 제수씨(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부인)가 히스패닉이라는 가정사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2007년 부시는 민주당과 손잡고 초당적 이민개혁 법안을 마련했으나 공화당 내부 반발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다.(흥미롭게도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이 법안에는 반대했다. 클린턴 후보가 올해 민주당 경선 TV토론에서 이를 공격 소재로 삼았다.)
2008년 대선에서 히스패닉 표심이 압도적으로 오바마 후보와 민주당 쪽으로 쏠리는 것을 목격한 공화당은 서서히 이민개혁을 수용하는 쪽으로 이동해갔다. 그런데 2010년 중간선거에서 반(反) 이민개혁 성향의 ‘티 파티(보수적 우파 대중운동)’ 계열 의원들이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후보가 되고 대거 당선되면서 당내 기류가 확 변했다. 급기야는 오바마 대통령의 불체자 사면 등 이민개혁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배신자로 몰리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그 대표적 희생양이 공화당 넘버 투였던 에릭 캔터 하원 원내대표다. 캔터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 다음 서열의 거물이었으나 이민 개혁파로 찍혀서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당내 예비경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티 파티 세력이 경선 과정에서 캔터를 낙마시키기 위해 정치 신인인 경제학 교수 출신 후보를 밀었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이민개혁의 경우 캔터의 계보를 잇는 정치인이다. 대통령이 되면 1000만명이 넘는 불법 체류자를 몽땅 추방하겠다는 트럼프와 무슨 대화가 잘 됐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미국 노인이나 저소득층은 연방정부와 주 정부 차원에서 의료 혜택이 주어진다. 노인 의료보험은 메디케어, 저소득층 의료보험은 메디케어로 부른다. 고령화 사회,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이 분야에 들어가는 예산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 돈은 의무지출 예산이어서 매년 연례행사처럼 이뤄지는 백악관과 의회의 연방정부 예산 공방의 단골 소재가 된다. 공화당은 메디케어 수령 나이나 수령자의 부담을 더 높이는 쪽으로 메디케어 시스템을 개혁하자고 주장한다. 각 주의 메디케이드 예산도 대상자와 보장 대상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줄여나가자는 게 공화당의 입장이다. 이런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이 다름아닌 라이언이다. 예산 전문가인 그는 하원 예산위원장 시절 ‘미국의 미래를 위한 로드맵’(A Roadmap for America’ Future)을 통해 연방예산을 21세기 중반까지 균형예산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 핵심 방안 중 하나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개혁이었다. 그는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변화 없이는 미국 예산 문제 통제 불가능하다”면서 “의료보험은 사회적 이슈라기 보다는 경제적 이슈”라고 주장했다. 반면 트럼프는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면서 메디케어는 손도 대지 말자고 한다. 메이케이드나 사회보장연금도 마찬가지다.
대외정책을 놓고도 공화당의 전통적인 ‘국제주의(개입주의)’를 지지하는 라이언과 ‘America First’를 외치며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와는 서로 헌혈을 해줄 수 없는 혈액형이다. 자유무역을 놓고도 두 사람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13회, ‘자유무역에 관한 트럼프의 거짓말’ 참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 공화당이 오바마표 법안을 거의 모두 비토하면서도 흔쾌히 찬성표를 던진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각종 FTA 비준안이었다. 그런 정당의 사실상의 대선후보가 FTA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공화당의 어이없는 현실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웃픈 표정의 라이언이 떠오른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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