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직후 ‘오바마의 미국, 새로운 도전’이란 제목의 시리즈 기사를 썼다.

그 중 하나인 ‘벼랑 끝에 선 중산층’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성장의 과실을 즐기며 살아온 미 중산층은 전 세계인의 모델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높은 임금과 의료보험 같은 양질의 복지혜택을 받으며 40년 정도 근무한 후 기업연금 보장을 받으며 은퇴했다. 그리고 안락한 노년을 즐기다 편안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적자생존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화하고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리면서 중산층의 삶은 고단해지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금융위기가 촉발한 최근의 경제 침체는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후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현지에서 목도했다.

미 노동부의 2009년 1월 초 발표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2008년 한 해 동안 사라진 일자리는 250만개에 달했다. 이 같은 수치는 1945년 이래 최대치였다. 실업률은 10%대에 진입했다. 신규 실업자 수는 58만9000명으로 한 주 전에 비해 6만2000여명이 증가했다. 통계는 비인간적이다. 가장의 실직인 초래한 가정 해체의 고통은 통계 이면의 진상이다. 경기침체를 숫자로 읽는 사람들은 그 고통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던 미국 경기침체는 2007년 12월 시작돼 2009년 6월 공식 종료됐다. 경기침체가 경제 수치로는 종료됐지만 미국인들의 삶 속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러 증거가 필요없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후보로 끌어올린 분노의 에너지만으로 충분하다.

올해 미 대선판을 뒤흔든 분노의 진앙은 중산층의 추락이다. 아래는 퓨(Pew)리서치센터가 1970년부터 2014년까지 미 국민들의 가계소득 추이를 조사한 결과다. 

중산층 가계소득 비율이 62%에서 43%로 감소했다. 저소득층 가계 소득도 다소 줄었다. 중산층, 저소득층 가계에서 줄어든 소득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픽은 고소득층 가계로 넘어갔다고 말하고 있다. 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UC버클리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인 로버트 라이시는 저서 ‘슈퍼자본주의(Super Capitalism)’에서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소득 추이를 조사한 뒤 “소득이 대개는 가장 높은 곳(소득 최상층부)으로 갔다”고 진단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저서 ‘한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라면서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하버드 법대 파산법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요즘 트럼프와 맞짱뜨고 있는 워런 상원의원이다)는 2005년 보스턴리뷰에 “미국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지역별 소득 조사 결과는 트럼프가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 사양으로 쇠락한 지역)’에서 강세를 보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센터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같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 지역의 경제적 여건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악화됐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본선을 앞두고 러스트 벨트 지역이 산재해 있는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 미시건, 위스콘신주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주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최근 치러진 6번의 대선에서 모두 승리한 곳이다. 민주당의 장벽(Blue Wall)으로 불리는 민주당의 아성인 것이다. 트럼프가 Blue Wall을 무너뜨리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12회, ‘미국 대선 러스트 벨트에서 결판난다’ 참고>

러스트 벨트 공략에 나선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맹공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한 FTA 협정으로 미국의 일자리를 중국이나 한국 등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서명했다”고 공격하고 다닌다. 본선에서 맞붙게 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국의 무역장벽을 낮춘 NAFTA 협정은 빌 클린턴의 전임인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추진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1992년 대선 직전 재선 캠페인 카드로 NAFTA 협상에 착수했다. 자유무역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화당의 전매 상품이다. 노조 등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에 우호적이지 않다. 자유무역은 세계화를 촉진시키면서 경쟁력을 잃은 미국 산업을 고사시키고, 결과적으로 미국 노동자들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자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임금 면에서 중국이나 멕시코 노동자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부시는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한 직후인 1992년 12월 NAFTA 협정에 서명했다.

NAFTA 협정에 서명하는 부시.

미국 노조 등은 이 협정에 결사 반대했고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했다. 하지만 빌 클린턴은 달랐다. 빌 클린턴은 후보 시절부터 중도층 공략을 위한 ‘제3의 길’을 주창했다. 좌파 민주당원들과는 달리 그는 자유무역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NAFTA 협정의 추가협상에 나섰다. 클린턴 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NAFTA 협정으로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노동·환경 부문 조항을 강화하려 했다. 이는 노조와 민주당 좌파의 요구 사항이다.

클린턴 정부는 추가 협상을 끝낸 이후에야 NAFTA 의회 비준을 추진했다.

의회에서 NAFTA 협정을 성사시킨 것은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하원에서 찬성표를 던진 234명의 의원 중 공화당 의원이 132명이었다. 상원에서도 찬성 61명 중 34명이 공화당 의원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상·하원 모두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이 더 많았다. 클린턴은 의회가 비준한 NAFTA 법안에 서명했다.

NAFTA 이행법안에 서명하는 클린턴.

 

한·미 FTA도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작품이다. 하지만 의회 비준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에서 이뤄졌다. 한·미 FTA 비준 당시에도 가장 격렬히 반대한 세력은 미국 민주당 좌파였다. 공화당은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민주당 중도파는 일자리 창출에 도움에 된다는 이유로 찬성했다. 민주당 좌파의 반발을 의식한 오바마는 망설였지만 결국 2011년 10월 한·미 FTA를 비롯한 3개 FTA 비준안을 의회로 보냈다. 공화당은 당시 오바마 정부의 다른 법안은 거의 모두 비토하고 있었으나 한·미, 미·파나마, 미·콜롬비아 FTA 법안만은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FTA 법안이야말로 민주당 좌파를 제외한 모든 의원들이 초당적으로 처리한 몇 안되는 법안들 중 하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원을 통과한 한·미 FTA 이행법안에 서명한 뒤 미시간을 찾아 “기업과 노동자,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고 세일즈했다.

트럼프는 이런 사실들을 왜곡해가면서 FTA를 마치 민주당이 밀어붙인 협정인양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이렇게 일부 사실을 비틀어서 유권자를 호도하는 발언들이 난무한다.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정치 풍토가 낳은 고질적인 행태들이다. 그런데도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궤변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자유무역 분야에서 민주당 좌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공화당 대선후보. 이변의 미국 대선이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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