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대선 후보(소속 정당)와 언론의 관계다.

언론은 속성상 비판적이나 대선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그 강도는 다르다. 미국 신문은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때문에 이런 입장이 지면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지지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정치와 언론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사이로 표현되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특정 매체는 특정 정당과 좀 더 가깝거나 좀 더 먼 경우가 많다.

올해 대선에서도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다수 매체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뉴욕포스트 등 일부 매체는 공화당 후보 자리를 예약한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그렇다 보니 기사의 중립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사의 소재를 선택하고 뉴스 밸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매체의 판단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미 대선 기사를 훑어보다 보면 NYT나 워싱턴포스트(WP) 같은 신문에선 트럼프 비판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트럼프의 여성 편력을 다룬 NYT의 최근 기사는 압권이다. 발끈한 트럼프가 NYT를 향해 “망해가는 신문”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화당에 우호적이다. 방송도 매체별로 정치 성향이 갈린다. 대체로 ABC,CBS 방송은 민주당, FOX는 공화당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 보수같지 않은 보수 후보인 트럼프는 비위가 뒤틀리면 FOX와도 일전 불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양측의 관계도 개선될 것이다.

주류 매체의 공격이 해당 후보에게 항상 손해인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대안 매체들이 즐비한 상황에서는 주류 매체의 공격이 해당 후보의 상승 동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자신을 주류 매체의 부당한 공격을 받는 ‘희생자’로 묘사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펼치기도 했다. 미당 서정주의 시구를 패러디하자면, 트럼프를 키운 건 팔할이 언론이다. 그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행태로 미디어의 관심을 폭발시키고, 필요하면 특정 매체와 맞짱을 뜨는 공격적 행보로 대중적 인지도와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당파적이고 편향적인 언론이 트럼프에게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미국 언론의 당파성은 미 정치권의 양극화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미 정치권의 양극화는 정쟁을 부르고, 정쟁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아웃 사이더’인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후보로 밀어올렸다. <1회, ‘샌더스·트럼프가 뜬 진짜 이유’ 참고> 그러고 보면 미 언론은 트럼프를 띄운 공신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공화당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집권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역임했던 애리 프라이셔는 언론에 불만이 많았다. 대변인을 마치고 펴낸 저서(‘Taking Heat’)에서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공화당원이었던 인사의 불만인 만큼 그 대상은 주로 진보 매체였다. 아직도 “논평과 보도가 구분돼 있는 미국 언론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프라이셔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프라이셔와는 반대로 FOX 등 보수 매체의 편향적 보도 행태가 미 정치를 망가뜨린 주범 중 하나라는 견해도 많다. 어느 쪽이든 미 언론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에선 의견이 같다. 다음은 프라이셔의 증언이다.

<2000년 12월 12일 미 연방대법원이 공화당 조지 W.부시(아들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줬을 때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맞붙었던 부시 후보는 플로리다주 재검표가 끝까지 진행됐다면 대선에서 패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재검표 중단 판결을 내린 덕분에 간발의 차이로(선거인단 271 대 266) 승리할 수 있었다.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는 고어 후보에게 밀렸다. 한국처럼 국민 직선제였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대법원 판결이 단 1표 차이인 5 대 4로 아슬아슬하게 결정됐다고 강조했다.

방송들은, “분열된 대법원이 앨 고어 후보의 백악관 행을 좌절시켰다”(NBC), “분열된 대법원, 억울한 소수”(ABC)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4일 전,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역시 1표 차이인 4 대 3으로 고어 후보의 손을 들어줬을 때는 보도의 뉘앙스가 달랐다. 플로리다 대법원이 분열됐다는 표현도 없었고 소수의 억울함도 거론되지 않았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축하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플로리다 대법원 판결로 고어 진영은 대선 이후 투쟁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고어 후보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똑같이 박빙인 두 판결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연방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반복해서 알렸다. 만약 고어 후보가 승리했다면 1표 차 승리라는 사실 정도만 의무적으로 보도했을 뿐 전체적 주안점은 ‘대법원의 분열’이 아닌 ‘고어 후보의 최종 승리’가 됐을 것이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1년 1월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이나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전례를 따라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낙태를 포함한 가족계획 운동을 펼치는 해외 단체들에게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한 명령이다. 아버지 부시는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기조대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아버지 부시의 결정을 뒤집었다. 이번엔 아들 부시가 클린턴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낙태를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장 차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결정을 대부분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반기지 않은 듯 했다.

“왜 하필 취임 첫 날에 그런 명령을 발동하느냐”

“낙태 금지가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순위 문제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래서 클린턴이 행정 명령을 발동할 당시의 브리핑 기록을 찾아봤다.

기자들의 질문 내용부터가 달랐다.

당시 기자들은 “이번 조치를 여군들의 낙태 등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할 계획은 없느냐”는 지지성 질문 2개를 포함해 6개의 질문을 던졌다. 반면 나는 그 보다 7 배는 많은 질문에 시달렸고 대부분 적대적이었다.

방송 보도도 마찬가지였다.

ABC 앵커 피터 제닝스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 보도한 내용을 비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오늘 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 20 주년을 맞아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1993년 1월 22일)

“부시 대통령은 오늘 레이건의 정책을 되살리는 결정을 통해 낙태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을 기쁘게 했습니다”(2001년 1월 22일)

다음은 CBS 앵커인 댄 래더의 보도 내용.

“오늘 클린턴 대통령은 해외 가족계획 운동 단체를 지원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 레이건·부시 정부 시절의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했습니다”(1993년 1월 22일)

“오늘은 부시 대통령의 공식 임기 첫 날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오늘 공화당 내의 우익 인사들을 기쁘게 하는 조치를 신속히 취했습니다”(2001년 1월 22일)

이른바 중립성을 사명으로 한다는 방송사들이 클린턴 대통령의 낙태권 옹호 결정은 객관적으로 보도한 반면 부시 대통령의 반대 입장은 당파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만약 미디어들이 좀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면 기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사뭇 달라질 것이다.

보도와 논평의 경계선이 모호해져 가는 현상도 미디어의 당파성을 부채질하는 요인 중 하나다.

뉴욕 타임스의 빌 켈러 전 편집국장은 “뉴욕 타임스의 1면을 장식하는 기사 중 상당 부분이, 만약 20년 전이라면 ‘견해가 너무 개입된’(opinionated) 기사라는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켈러 국장은 이런 풍토를 고치겠다는 취지로 말하지 않았다. 단지 뉴욕 타임스가 뉴스를 다루는 방법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다.

이런 점들을 모두 고려한다면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대다수 저널리즘 교수와 언론인들이 민주당에 치우쳐 있고 언론의 보도 행태마저 논평 지향적인 현실이다. 미디어 내부에 이념적 편향성이 없다고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신문 기자들이 수시로 TV에 출연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시대가 됐다. 10년 전 만해도 기자가 기자를 인터뷰하고 기자가 자신의 관점을 밝히는 장면은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기자들의 관점이 날로 여론에 전파되고 자신들이 쓰는 기사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언론들은 1993년 클린턴 행정부의 예산 증액안을 ‘적자 감축안’이라고 부른다. 정확한 표현은 ‘세금 증액’(tax hike)이다. 하원 원내총무를 지낸 딕 게파트가 2003년 부시 대통령이 성사시킨 세금 감축안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세금 감축안을 폐지하면 결과적으로 ‘세금 증액안’(tax hike)이 된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는 게파트 구상에 ‘세금 감축 폐지안’(repeal of tax cuts)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통상 헤드 라인은 글자 수를 줄이는 것이 원칙이다. 이 경우 편집자는 ‘repeal of tax cuts’ 보다는 ‘tax hike’를 제목으로 뽑았어야 편집 기술상으로도 옳다. 공화당은 예산 적자를 정부가 지출을 늘린 결과로 이해한다. 민주당은 세금을 감축한 탓에 적자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언론이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언론은 공화당 편에 서 있지 않다.>

여러분은 프라이셔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인 필 버넷이 2004년 말 취임 직후 인터넷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진보적 편향성을 띤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그런 비판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버넷 국장은 “그런 편향성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자기 비판이 필요하다. 이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돼야 할 사안으로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답변했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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