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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은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공화당을 심판한 선거로 기록될 전망이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2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동북부 5개주 경선을 싹쓸이하면서 트럼프의 후보 지명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트럼프 대항마’로 나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트럼프의 독주를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7월 ‘중재 전당대회’ 경선에서 트럼프 대신 다른 후보를 세우려던 공화당 주류의 구상은 차질을 빚게됐다. 

원래 공화당 주류가 밀던 후보는 크루즈가 아니었다. 주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했다. 부시가 낙마한 뒤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루비오마저 ‘트럼프 돌풍’에 쓰러지자 우선 트럼프의 후보 지명부터 막고보자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크루즈였다. <8회 ‘공화당 주류와 크루즈의 오월동주(吳越同舟)’ 참고> 크루즈는 우파 대중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전폭적 지원 아래 정치권에 입문했다. 티 파티 세력은 응집력이 강하지만 소수파다. 보수 진영의 절반 가량은 ‘다소 보수적(somewhat conservative)’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온건·중도 보수’로 부를 수도 있다. 온건·중도라고 해서 모든 쟁점에서 온건하거나 중도라는 말은 아니다. 쟁점마다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다. 티 파티 세력처럼 소신이 뚜렷한 우파 전사(戰士)가 아니다. 바로 이런 ‘다소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띄웠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 “‘다소 보수적’이라고 밝힌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주(州)가 트럼프는 18개인 반면 크루즈는 3개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고졸 이하 유권자 지지에서 승리한 주도 트럼프는 18곳인데 크루즈는 4곳에 그쳤다. ‘고졸 이하 학력’은 대체로 ‘블루 칼라’로 지칭되는 백인 노동자층과 겹친다.

블루 칼라는 원래 민주당 성향이었다. 그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행정부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행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뉴딜은 정부 재정을 풀어서 대공황으로 무너진 농민과 노동자, 노인 등을 구제한 조치다. 실업자 구제 조치와 각종 사회보장 정책이 도입됐다. 

사진 = GETTY IMAGES
뉴딜의 수혜자인 백인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뉴딜 연합’의 주력군이 됐다. 이후 백인 노동자들(저소득, 저학력 백인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의 정치 성향 변화는 미국 대선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아래는 역대 미국 대선 결과를 시각화한 지도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주는 파란색,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주는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다.

 

 

남부가 오랫동안 민주당의 텃밭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루스벨트가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1932년, 1936년, 1940년, 1944년 대선은 미 전역이 파란색으로 도배돼 있다.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가 각각 승리한 1960년, 1964년 대선에서도 남부는 민주당의 아성이었다. 이 때까지는 백인 노동자들이 ‘뉴딜 연합’에 남아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린든 존슨 행정부가 흑인 인권 보호를 위한 민권법 제정에 나서면서 남부의 백인 노동자들이 공화당으로 말을 바꿔타게 된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공격한 공화당은 남부 백인들의 적이나 다름 없었다.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의 노예였던 흑인과 친구가 되느니 자신들을 공격했던 북부 백인들과 화해하는 편을 택한 셈이다.

이제 1968년 대선 이후로는 남부에서 파란색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됐다. (1976년 대선과 1992·1996년 대선은 예외다. 민주당이 각각 남부 조지아주 출신인 지미 카터와 남부 아칸소주 출신의 빌 클린턴을 후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1980년, 1984년 선거는 압권이다. 남부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아성인 동북부와 서부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레이건 시대에 미 전역의 백인 노동자들이 대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향했다. 이른바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이다. 보수 진영의 논객들이 민주당을 ‘엘리트의 정당’, 집안 배경이 좋은 ‘강남 좌파의 정당’으로 색칠하는 배경엔 백인 노동자를 포함한 레이건 민주당원들을 공화당에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낙태나 동성애, 신앙 같은 문화적 변수들도 백인 노동자들을 보수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북부·서부주에선 민주당이, 남부·중부주에서는 공화당이 우세한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2년 미 대선 결과도 그렇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챙긴 선거인단 332명의 대부분은 동북부, 서부 주에서 챙긴 것이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중부와 남부 주를 석권하고도 선거인단이 206명에 그쳤다.

사족이지만 위와 같은 그래픽은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위 그래픽만 보면 공화당이 승리한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은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레이건 이후 공화당원으로 변신한 백인 노동자들은 이번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 공화당 주류 후보 대신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왜 그랬을까. 공화당이 2008년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백인 노동자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뉴욕 데이비드 레터만 스튜디오 근처 구직판을 목에 걸고 서있는 한 실직자. AP = 연합
2008년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가 흑인이여서가 아니다. 그 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겼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2008년 대선은 금융위기를 부른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정(失政)을 응징한 선거였다.1997년 한국 대선에서 국민들이 외환위기를 부른 김영삼 정부를 심판했듯이. 공화당은 대선 뿐 아니라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당시 민심은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국민들 편에서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화당은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이념투쟁에 몰두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경기부양법안 반대투쟁이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76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방안부터 마련했다. 정부 돈을 풀어서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가 돌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정부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런 방식의 재정지출 정책으로 효과를 봤다. 모두 알고 있듯이 뉴딜 정책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처방전에 따른 것이었다. 케인스는 정부가 재정지출 등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이런 생각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시했고,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권고를 받아들여 재정지출 규모를 크게 늘렸다. ‘케인스주의’로 통칭되는 경기회복책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료사진
하지만 2009년 1월28일 미 하원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은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 상징적인 예고편이었다. 공화당은 왜 경제를 살리자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법안에 반대했을까. 당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에릭 캔터는 “재정지출 정책은 경제는 회생시키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키우는 구닥다리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캔터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민의 세금을 깎아주는 게 우선이라고 제안했다. 굳이 부양책을 쓰려거든 부양 지출 만큼 다른 부처의 지출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먹히지 않자 부양법안에 반대한 것이다.

공화당의 이런 기조는 공화당 우파의 시조격인 배리 골드워터의 생각이다. 골드워터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평생을 케인스의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었던 하이예크는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활동을 제약하는 정부의 개입은 비효율적이며 경기침체와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정부의 개입이 파시즘과 같은 폭정을 낳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이예크는 1944년 출간한 저서 ‘예종(隸從)의 길’에서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우파의 전체주의든 좌파의 사회주의든 정부가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선 똑같이 나쁜 체제였다. 오바마 정부의 처방이 맞는지, 공화당의 반대가 옳은 길인지를 놓고는 보수, 진보 진영이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있다. 케인스와 하이예크가 평생을 싸웠던 것 처럼 어떤 경제정책이 효과적인지를 좌우하는 변수는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불이 났으면 불부터 꺼야한다. 그런데 공화당은 불을끄기 보다는 소방관의 불끄는 방법이 잘못됐다면서 소방호스를 잠궈버렸다.

경기부양 조치만이 아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협상 과정에서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는데 전력 투구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백인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공화당원들은 오바마의 경기부양 조치나 사회보장 정책을 더 선호했다는 점이다.

2014년 ‘시카고카운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 의원 등 지도부의 50%가 사회보장 예산 삭감에 찬성한 반면 일반 공화당원들은 10%만이 삭감에 찬성했다. 그럼 트럼프는? 트럼프 후보는 “사회보장 예산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민 개혁과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일반 공화당원들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화당이 우파 논리에 발목이 잡혀서 부질없는 정쟁을 벌이는 사이에 트럼프가 밑바닥 공화당원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지도자를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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