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미국 의회의 정쟁 사례(오바마 케어)
2016년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 표출된 공화당의 난맥상은 길을 잃은 미국 보수주의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공화당 주류가 어쩔 수 없이 트럼프 대항마로 내세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공화당을 구해낼 지도자감은 아니다. 공화당 동료 의원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크루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와 싸우면서 인지도를 키운 대표적 정치인이다. 우파 대중 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도움으로 상원의원이 됐고 공화당 보다는 티 파티를 대변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외자가 보기에도 트럼프나 크루즈 중 한 사람을 대선후보로 세워야 하는 공화당의 처지가 딱하다.
트럼프를 띄운 힘은 국민을 신물나게 한 ‘워싱턴 정쟁’이었다. <1회 ‘샌더스·트럼프가 뜬 진짜 이유’ 참고> 그 정쟁의 한 복판에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해온 강경파 크루즈가 있었다. <8회 ‘공화당 주류와 크루즈의 오월동주(吳越同舟)’ 참고>
정쟁 없는 정치도, 타협 없는 정치도 무의미하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로 불리는 이유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공화당 우파의 문제는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좋게 표현하면 소신에 투철한 정치라고 할 수 있지만 대개는 이런 부류가 의회를 싸움판으로 만든다. 미국 대선경선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만큼 당분간 미 정치권에서 벌어졌던 정쟁 사례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대표적 정쟁 사례가 2013년 미국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초래한 공화당의 ‘오바마 케어’(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의료보험개혁법안, 정식 명칭은 ‘환자 보호 및 적정 가격의 의료서비스를 위한 법령’) 반대 투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의료보험 개혁은 민주당 정부의 오랜 숙원이었다.
미국의 의료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맹장이라도 터지면 수 천 만원의 병원비를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밥은 굶어도 보험은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제대로 된 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소 월 100만원은 부담해야 한다. 질병 이력이 있는 사람이 보험에 들려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 것도 병력이 있으면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는데 직장에서 잘리면 의료보험도 사라진다.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영세 기업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 국민 수 천 만명이 보험 없이 하루 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가족 중 누군가 큰 병에 걸리면 파산하기 일쑤다. 전체 개인 파산의 대부분이 의료비 부담에 따른 파산이다. 특파원 시절 필자도 병원가기가 무서웠다. 임산부들이 출산을 한 뒤 하루 만에 퇴원했다는 말도 들었다. 하루 수 백만원에 이르는 입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오바마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기 이전의 미국 현실이었다. 단언컨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완비된 한국은 적어도 의료보험에 관한 한, 미국 보다 선진국이다.
오바마 정부 이전에도 수많은 의료개혁 시도가 있었다. 1912년 진보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전국민 의료보험 공약을 내건 이래 해리 트루먼이나 지미 카터 민주당 정부는 물론 공화당 정부인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대통령도 나름의 의료개혁을 추진했다. 그 만큼 미국의 의료 시스템 개혁은 역대 정부의 난제 중의 난제였다. 의료개혁에 있어서는 린든 존슨 민주당 정부의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제도)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가 가장 획기적이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크게 누르고 승리한 바로 그 존슨이다. 존슨 정부는 1964년 대선과 의회선거에서 압승한 동력을 바탕으로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개혁을 성사시켰다. 그 이후로는 오바마 케어 외에 그 어떤 의료개혁 법안도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 100일 안에 의료개혁안을 내놓겠다고 선언하고 야심차게 의료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국 의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이 때 대통령 직속의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다름아닌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실시되는 힐러리 클린턴은 당시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공적(公敵)이 됐다.
오바마 이전의 의료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보험 회사나 제약업체도 반대했고 이들의 로비를 받은 의원들도 비협조적이었다. 기존에 의료보험에 가입해있는 국민들도 전국민 의료보험을 선호하지 않았다. 여유 계층에서는 왜 내가 다른 사람의 의료보험 비용까지 부담해야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런 여론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 보다 어려운 법이다.
그걸 오바마 정부가 해냈다. 2010년 3월 미국 의회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공약한 지 100년만에 의료보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2008년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었다. 역사적인 법안이었다. 100년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난관들을 뚫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뤄낸 것이라서 그런 것이다.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평가한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의료보험개혁은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후 오바마 정부가 겪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은 상당 부분 의료보험개혁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로 매도됐고 민주당 의원들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공화당은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크루즈가 그 선봉에 서 있다. 크루즈는 2013년 오바마 케어의 집행예산이 새해 예산안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에 나서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불렀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으로 인해 일시 폐쇄 되었음을 알리는 팻말.
EPA=연합. 자료사진
오바마 케어는 공화당 측이 위헌 소송을 제기하면서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연방대법원에서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보수파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5 대 4로 합헌 판결이 나온 사실은 모두가 알고있는 그대로다. 오바마 케어의 실효성을 놓고는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필자처럼 필요한 개혁이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고,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사회주의적 조치라고 반대하는 국민도 있다. 공화당은 집권할 경우 오바마 케어부터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는 조치도 오바마 케어를 만들어내는 조치 못지 않은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오바마 케어 반대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오바마 케어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크루즈가 올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 케어 폐지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공화당 주류가 어쩔 수 없이 트럼프 대항마로 내세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공화당을 구해낼 지도자감은 아니다. 공화당 동료 의원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크루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와 싸우면서 인지도를 키운 대표적 정치인이다. 우파 대중 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도움으로 상원의원이 됐고 공화당 보다는 티 파티를 대변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외자가 보기에도 트럼프나 크루즈 중 한 사람을 대선후보로 세워야 하는 공화당의 처지가 딱하다.
정쟁 없는 정치도, 타협 없는 정치도 무의미하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로 불리는 이유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공화당 우파의 문제는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좋게 표현하면 소신에 투철한 정치라고 할 수 있지만 대개는 이런 부류가 의회를 싸움판으로 만든다. 미국 대선경선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만큼 당분간 미 정치권에서 벌어졌던 정쟁 사례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미국의 의료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맹장이라도 터지면 수 천 만원의 병원비를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밥은 굶어도 보험은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제대로 된 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소 월 100만원은 부담해야 한다. 질병 이력이 있는 사람이 보험에 들려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 것도 병력이 있으면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는데 직장에서 잘리면 의료보험도 사라진다.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영세 기업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 국민 수 천 만명이 보험 없이 하루 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가족 중 누군가 큰 병에 걸리면 파산하기 일쑤다. 전체 개인 파산의 대부분이 의료비 부담에 따른 파산이다. 특파원 시절 필자도 병원가기가 무서웠다. 임산부들이 출산을 한 뒤 하루 만에 퇴원했다는 말도 들었다. 하루 수 백만원에 이르는 입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오바마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기 이전의 미국 현실이었다. 단언컨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완비된 한국은 적어도 의료보험에 관한 한, 미국 보다 선진국이다.
그걸 오바마 정부가 해냈다. 2010년 3월 미국 의회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공약한 지 100년만에 의료보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2008년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었다. 역사적인 법안이었다. 100년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난관들을 뚫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뤄낸 것이라서 그런 것이다.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평가한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의료보험개혁은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후 오바마 정부가 겪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은 상당 부분 의료보험개혁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로 매도됐고 민주당 의원들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공화당은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크루즈가 그 선봉에 서 있다. 크루즈는 2013년 오바마 케어의 집행예산이 새해 예산안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에 나서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불렀다.
EPA=연합.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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