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1997-12-09|06면 |정치·해설 |컬럼,논단 |997자
96년 국민회의 채영석 의원이 검사의 도박행태를 지적했을 때 검찰은 『검찰조직의 명예를 훼손한 발언』이라며 발끈했다. 일선 검사들은 『채의원이 발언의 근거를 대지 못하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실제 채의원이 그 발언으로 한 시민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되자 검찰은 채의원을 입건,수사를 벌이고 있다.그러던 검찰은 6일 저녁 현직 검사가 제주도까지 가서 도박판을 벌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판당 1만∼50만원씩 오간 수천만원대 도박판이었다.
조사 결과 이 검사는 휴가를 얻어 제주도에 골프를 치러 갔다가 날씨가 나빠 칠 수 없게 되자 대신 도박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도박장까지는 고급 외제승용차로 이동했고 도박판에서는 달러도 나왔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대검 감찰부가 검찰직원 비리에 대해 대대적 감사에 착수한다고 경고하고,이어 서울고검이 서울 의정부 지역 이순호 변호사 「싹쓸이 수임」사건에 연루된 검찰 직원 2명을 해임결정한 직후에 발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 지원으로 연명해야하는 경제위기도 아랑곳 없이 벌인 도박판이었다. 이 사건을 한 조직인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기엔 그가 맡은 직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검찰의 자세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검찰은 먼저 「축소」에 나섰다. 우선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이 공개된 뒤에도 『하필이면 지금같은 시점에 터졌는지 모르겠다』 『차기 정권에서 우선 법조계를 손댄다는 말이 나도는데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는 등의 푸념들이 자성의 목소리보다 높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권 독립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검찰은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왔다. 아직 경찰의 수준이 낮아 수사권을 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얼굴을 가린 채 『손 들어.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경찰의 명령에 따르는 도박검사의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이 검찰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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