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격(格)이 떨어지고 있다. 16대 국회 전에도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막아야 한다" "제정구 의원은 억압받다 속이 터져 얻은 DJ암 때문에 사망했다"는 등의 상식 이하의 발언이 있었다. 하지만 16대 들어서 개선되기는커녕 악화일로다.지금까지 치러진 대정부질문 9차례가 모두 거친 발언 탓에 국회 일정이 중단되거나 멱살잡이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한나라당은 주로 "청와대는 친북세력"(권오을) "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김용갑) "빨치산 같은 정당"(이규택) 등의 색깔공세로,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는 악의 뿌리"(송석찬)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국회를 파행시켰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듣기에 민망한 발언이 공개석상에서도 거침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개헌의 ''개''자만 나와도 개 패듯이 패줘야 한다"(한나라당 박희태) "충청-호남출신 법관들이 민주당 편을 들고 있다"(" 김용균)는 표현은 적어도 공인의 입장에서는 적절치 않다.

대선후보를 비롯한 각 당의 지도부도 솔선수범은커녕 은근히 소속 의원들의 상대당 깎아내리기를 부추기는 인상이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을과 종로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 한나라당을 ''범죄 정당''이라고 지칭했다. 아무리 정적이지만 범죄정당 운운해서야 대통령후보로서 품위가 없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같은 날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 자식만 썩은 것이 아니라 며느리, 친척, 몽땅 썩었다. 이런 놈의 대통령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대통령 일가를 매도했다.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야 할 정치인의 ''입''이 갈수록 갈등을 증폭시키고 특정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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