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6·10항쟁 거치며 정치도약…이젠 이념대결 벗고 국민통합을” 

이만섭 전 국회의장(76)은 1963년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2004년 3월 정계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41년 동안 정치를 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을 두 차례(14, 16대) 역임하며 8선의 관록을 쌓았다. 정치권에 몸담기 전에는 정치부 기자로서 자유당 정권 말기부터 한국 정치를 지켜봤다. 가히 ‘헌정 60년의 산증인’이라 부를 만하다. 이 전 의장을 지난 6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정치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물었다.


 

 

 

―지난 헌정사, 정치사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의 헌정사는 영욕이 엇갈린 상처 많은 영광이었어요. 9번 개헌 중에 3번만 국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을 뿐, 나머지는 정권 창출과 연장을 위해 비합법적으로 통과됐거든.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3·15 부정선거,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집권은 한국 정치의 질곡이었지. 다행히 1987년 6·10민주항쟁 당시 6·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 헌법개정이 이뤄졌는데, 20년간 이 헌법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도 민주 시민들, 나라를 사랑하는 지식인들이 노력한 결과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해요.”

―국회 속기록에 국회의원 아닌 인사로는 처음으로 이름이 올랐지요.

“4·19 이후 4대 국회에서 자유당 부정선거 책임자들에 대한 구속동의안이 부결됐을 때였어요. 4·19혁명은 성공했지만 의석에선 여전히 자유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어 부정선거에 개입한 자유당 간부들이 구속을 피할 수 있게 됐지. 이건 민심을 역행하는 거라고 생각한 거야. 2층 기자석에서 부결되는 것을 지켜보다가 화가 나서 ‘이 자유당 도둑놈들아∼’라고 소리를 질렀던 말야. 그랬더니 사회를 보던 민주당 출신의 곽상훈 국회부의장이 기자석을 향해 ‘동아일보 이만섭 기자, 조용하시오’라고 제지해서 속기록에 (이름이) 올랐는데 나중에 삭제했더군.”

―한국 정치가 질적 도약을 이뤘던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 발전 차원에서 4·19학생혁명은 한 단계 도약이었고 6·10항쟁은 제2의 도약이였다고 생각해. 4·19혁명은 부당한 방법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세력을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고, 6·10항쟁은 무력을 동원해 부당하게 정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헌법 정신이 발현된 의거였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극적인 부침을 현장에서 지켜봤는데요.

“전부 다 기억에 남죠.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은 52년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개헌, 54년 사사오입 개헌, 58년 보안법 파동 등을 겪으면서 당내 강경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이후 몰락의 길로 들어섰어. 박정희 정권도 69년 3선개헌과 유신헌법 이후 차지철 실장 같은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종언을 고했구. 어느 정권, 어느 정당이나 강경파가 득세해서 주도권을 잡게 되면 그 정권, 그 정당은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게 내 경험입니다. 항상 정치는 온건하고 합리적이어야 오래가는 법이지.”

―박정희 정권 시절, 여당인 공화당 소속 의원을 지내지 않았습니까.

“나는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을 끝까지 반대했거든. 권력남용, 인권탄압의 책임자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같은 강경파를 쳐내라고 박 대통령에게 요구하다가 정치탄압 받고 8년 동안 정치를 못했어요.”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 온 지도자들을 평가하신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세우는데 초석이 된 분이고 일제 때도 한평생 독립운동하신 분으로 높이 평가해요. 그러나 마지막에 장기집권, 강경정치 하고 부정선거 한 게 오점이 됐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일으키고 민족의 가능성을 개발하고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킨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해. 역시 장기집권, 강경정치, 야당탄압 한 것은 마이너스야. ‘양김’(김대중, 김영삼)은 탄압받으며 민주주의에 공헌한 점을 누가 뭐래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지금까지도 반목하는 양상을 보이는 건 딱해. 두 사람의 반목 때문에 8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민주주의 발전이 늦어진 거 아니겠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요.

“노무현 대통령은 모르겠어. 다만, 노 대통령이 실정한 가장 큰 원인은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는데 당선되자마자 그 당을 두 개로 쪼갰단말야. (민주진영 세력을) 다 합쳐도 힘이 모자랄 텐데 분당시켜서 열린우리당을 만든 게 국정 실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어.”

―헌정 60년의 흐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민심을 잘 살펴야 하고, 말뿐이 아닌 진정한 소통의 정치를 해야 됩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첫째, 국내외 정치 모두 서두르지 말았으면 해요. 소고기 파동도 너무 서두르다 일어났거든. 둘째는 말을 좀 신중히 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노무현 대통령이 말이 많아 말로써 실정했는데 반면교사로 삼아야지. 특히 외교문제와 대북관계에서는 언행을 더욱 신중히 해야 합니다. 셋째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등용했으면 좋겠어요. 능력 있고 훌륭한 분을 적재적소에 쓴다면 100%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인사 해도 국민은 반대 안 해. 깜도 안 되는 사람을 쓰니 문제가 되는 거지.”

―국회를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헌법개정은 어떠한 경우라도 여야 만장일치가 안 되면 통과하지 못 합니다. 아무리 여당이 국회 내에서 개헌 통과의석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야당이 반대하면 안 돼.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서 여야 모두 당리당략을 떠나서 연구하는 게 좋겠고, 개헌 방향은 국정의 중심을 국회로 가져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있는 현 체제에서는 대통령이 아집과 독선으로 흐르기 쉽고, 총리와 장관들이 소신껏 일할 분위기가 되지 않거든.”

―여전히 한국 정치는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를 정체시키는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나 아니면 전부 적이란 배타적 의식이야.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어요. 정권교체가 돼서 지금 여야 모두 상대편 입장에 서 봤으니 이제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와 타협을 해야됩니다. 그리고 이제 국민통합을 해야 해요. 열린 진보나 건전한 보수나 다 똑같애. 이념 대결 치워야 해. 글로벌 시대에 언제까지 전라도, 경상도 할 건가. 중대선거구해서 지역감정 없애고 세대 대결도 없애야 합니다. 국민통합 없이는 선진화도 안 돼요. 국민통합 위해서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헌 60주년, 건국 60주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자가 돼 56년 3대 국회부터 한국 정치를 지켜봤습니다. 초대 제헌 국회는 헌법 만들고 대통령 뽑고 2년 만에 끝났고 2대 국회를 구성하자마자 6·25전쟁이 터졌어요. 그러니 사실상 한평생 정치를 지켜보고, 정치를 한 셈이지. 사람도 회갑이 되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건국 60년이 됐으니 지금부터 새로운 도약을 하는 힘찬 출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글 조남규, 사진 허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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