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

 일본 제국주의 시절 외무대신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1882~1950)의 손자입니다.
전직 일본 외교관이자 미 프린스턴 대학 교수인 그가 최근,
작금의 미일 밀월관계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일제 전범(戰犯)의 후손이 하는 말이라서
더욱 귀가 솔깃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시기와 질투가 범벅이돼 바라보는 미일 관계를
그는 왜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걸까요?
 
 한 마디로 일본의 자세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근 국가인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는 만신창이로 만들어놓고
-그 것도 역사왜곡과 신사 참배강행 같은 경우없는 행동으로-
대미 관계 강화에만 주력하는 건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웃인 한,중은 무시하면서
미국에게만 알랑대느냐는 말이지요.
백 번 옳은 말이고,
이런 얘기를 일본인의 입을 통해 듣게됐다는 것이
자괴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합니다.
일본의 안하무인격 처신은 미국의 침묵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
일본이 한,중 관계를-특히 떠오르는 중국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이 떠안게될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미국의 침묵이 일본 국수주의자들에게
대 중국 강경노선을 취하도록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미국이 자신들의 노선을 언제까지든 지지할 것이라는 오도된 믿음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지금이라도 일본에게
일본이 조장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의 불안정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주지시켜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러나 역사 문제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서
한,중이 일본과 첨예한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듯이
미국도 일본과는 진주만 공습으로 대표되는 '불행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서
감히 뚜껑을 열어제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의 분석을 뒤집으면,
현 부시 행정부는 일본의 존재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한,중의 역사분쟁까지 거들 여유를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한미일 3국 동맹의 중요성을 설득하기 보다는
그를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태워 엘비스 프레슬리 저택으로 데려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남는 장사'라는 판단을 내린 셈입니다.
 
 일본의 노선은 마치 구한말 갑신정변 직후
일본이 내건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을 연상시킵니다.
문자 그대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는 뜻입니다.
당대의 전략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당시 갑신정변 실패로 중국의 조선 지배권이 강화되자
'일본은 아시아의 대오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함께하고
중국과 조선에 대해서는 이웃이기 때문에 특별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그들을 대하듯 그대로 처분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중국과 조선이 끝내 주권을 지키기 힘들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탈아입구론'은
결국 세계 문명제국이 두 나라의 국토를 분할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일본은 서양과 손잡고 힘을 길러 중국과 조선을 힘으로 병탄해야한다는
제국주의 논리로 발전합니다.
 
 도고 가즈히코의 조부인 도고 시게노리는,
박무덕(朴茂德)이라는 이름의 한국 소년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일본 규슈로 납치돼간
조선의 도공입니다.
조선 도공의 후예인 박무덕 소년이 후에 일본 외교대신에 올라
일본의 태평양 전쟁 개전을 막기위해 분투하게된 운명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물론 그는 일본의 국익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의 손자인 가즈히코 교수 몸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그의 미일 관계 비판이 한국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한미일 3국 공조를 복원하고 중국의 지원까지 얻어내야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를 위해 동분서주해야하는 것은
시한폭탄 같은 '북한'을 머리에 얹고 살아가는 분단 한국의 운명입니다.
부시와 고이즈미의 깨가 쏟아지는 밀월이 부러운 것은 인지상정이나
우리는 왜 부시와 친하게 지내지 않느냐고 되묻는 것은
다소 한가한 문제의식입니다.
9월 미국을 방문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텍사스 크로포트의 부시 목장에 가서 바베큐 파티를 하거나
'에어포스 원'에 동승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많은 양보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우리에겐 사치스런 세리모니입니다.
 
 그런 세리모니에 앞서
도고 가즈히코 교수의 주문대로
미국을 설득해서 한미일 3국 공조를 복원시키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자세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총리의 약속 하나면
정상끼리 만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 약속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절대 못한다고 합니다.
개인의 자유라고 강변합니다.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고이즈미 뒤에 버티고 있습니다.
곤혹스런 미국은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한국 해양조사선이 3일부터
독도 주변 수역에 대한 해류조사 활동에 돌입합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일본은 또 방해하고 나설 것입니다.
고이즈미의 얼굴에서
부시와 함께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을 찾던 당시의 미소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미일의 밀월관계를 곱게 바라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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