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7일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단체 회장들이 토론 아닌 토론을 벌이고 있었을 때다. 토론 말미에 정일용 기자협회장이 느닷없이 국가보안법 문제를 꺼내들었다. “국회, 시민단체들과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정보공개법 개정 등을 논의하고, 이때 국가보안법도 같이 얘기해봤으면 좋겠다.”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은 ‘뜬금없이 웬 국가보안법이냐’고 반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의 알권리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묶어서 다루자는 정 회장의 주장에 가타부타 답변하지 않았으나, 이후 구성된 TF에서 정부 측은 ‘그것이 언론계의 요구라면 수용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2004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정한 바 있다.

참여정부로서야 이 문제를 놓고 언론계와 다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단체와 정부 간에 진행된 협의에서 ‘국가보안법이 언론자유의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조항을 공동발표문에 넣기로 합의한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는 정부와 언론계가 손잡고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밀어붙인다 해서 되어질 일도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언론계의 일치된 견해도 아닐뿐더러 그래서도 안 된다. 그 자체가 정치적 쟁점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 회장은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 보도에서 정보 접근권을 축소하는 악법이니까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정 회장은 남북관계를 오랫동안 취재해 왔으며, 2005년 12월 기협회장에 출마할 때 주요 공약으로 ‘국보법 개폐 추진’을 내세운 바 있다. 언론계 대표로 정부의 협상 상대로 나간 인사가 개인적 소신을 언론계 입장인 양 내세운 꼴이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정치권과 논의해야 할 사안을 흥정 대상으로 삼은 정부의 태도도 적절치 않다. 월권도 이만저만한 월권이 아니다.

조남규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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