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북측의 예측불가성이었다.

기자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할 줄로 알고 몇 시간 앞서 행사장에서 대기하다 허탕을 치곤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 마지막 날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공동식수를 할 것으로 예상하고 표지석을 준비해갔다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신 나오는 바람에 되가져 온 것도 그런 정황 속에서였다.

지난 14일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이 “북한에 가져간 표지석에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두 정상의 이름이 들어 있어 표지석을 설치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을 때만 해도 표지석 파문은 해프닝으로 비쳤다. 두 정상의 공동식수가 무산된 만큼 두 정상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을 설치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김만복 국정원장이 한참 뒤 다시 방북해 설치한 표지석엔 노 대통령 이름만 넣었다는 것이다.

천 대변인은 당초 가져간 표지석을 설치하지 못한 데 대해 ‘북한에서 표지석을 퇴짜 놓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비판하면서 “상식을 가지고 최소한 앞뒤를 따져보고 기사를 써야 할 것”이라고 훈계했다.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가 준비해갔다가 되가져온 250kg짜리 표지석.(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김만복 국정원장이 지난해 12춸18일 방북해 설치한 70kg짜리 표지석.


그러나 정작 앞뒤를 따져봐야 할 사람은 천 대변인 본인이다.

천 대변인의 해명과 달리 첫 번째 표지석엔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라고만 표기돼 있었던 사실이 15일 확인됐기 때문이다. 두 표지석 모두 노 대통령의 이름만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북측과 문구까지 합의한 첫 번째 표지석은 왜 설치하지 못했는가. 당초 만든 250㎏짜리 표지석이 나중에 설치된 70㎏짜리로 축소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천 대변인이 ‘상식을 가지고 앞뒤를 따져보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답할 차례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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