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부터 2012년까지 역대 6차례 대선을 돌아보면 민주당 후보는 펜실베이니아 등 18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연전연승했다. 그래서 이들 18개 주는 ‘민주당 장벽’Blue Wall 으로 불렸다.
그런데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 성향의 백인 노동자층을 흔들면서 민주당 장벽의 일각을 허물어뜨렸다. ‘러스트 벨트’ 지역이 산재한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주가 대표적이다. 1992년 대선 이후 2012년 대선까지 6차례 선거에서 민주당이 5번 승리한 아이오와주와 4번 승리한 오하이오주 같은 민주당 아성도 트럼프에 의해 점령당했다.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는 무슬림이나 히스패닉을 희생양으로 삼는 트럼프의 편가르기 전략이 백인 노동자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냈다. 트럼프는 본선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런 경선 전략을 고수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45세 이상의 백인 노동자층으로 조사됐다. 역대 대선 투표에서는 통상 이들의 투표율이 낮았다. 그래서 본선 승리를 위해서는 공화당 온건파는 물론이고 중도층과 무당파의 표도 필요했다. 특히 경합주에서는 중도층과 무당파의 향배가 중요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공약을 순화해야 공화당 텐트가 넓어진다고 봤다. 하지만 트럼프는 백인표 결집을 통한 대선 승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트럼프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마이 웨이’ 를 선언했다.
연설 내용 중 불법 체류자 추방,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공약 등은 히스패닉 유권자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았다. 백인 경관이 흑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과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흑인 저격범이 백인 경관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흑백 인종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트럼프는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흑인 사회의 반발은 감수하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트럼프가 이러리라는 것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마이크 펜스Mike Pence 인디애나 주지사를 지명할 때 예상됐다. 펜스 주지사는 여성이나 소수인종 배려와는 거리가 먼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백인 노동자층 결집에 주력했던 공화당 경선 전략을 본선용으로 수정할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 본선은 보수 유권자들 위주로 참가하는 공화당 경선과는 다른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당대회에서 백인 중심의 선거전략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펜스 주지사를 지명하면서 그 전략을 더 강화했다.
2016년 공화당 전당대회가 백인 일색의 잔치로 치러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지는 흑인 대의원 비율이 전체 대의원 2472명 중 49명(약 2%)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배리 골드워터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던 19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흑인 대의원 비율이 1%에 그쳤다.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 표를 잃더라도 백인 표만 결집시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셈법이었다. 그러려면 백인 후보인 힐러리를 소수인종의 대표 주자로, 백인 경찰이 주축인 공권력의 반대편으로, 백인 남성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었다. 이 공식을 따른 공화당 전당대회는 꿈과 비전, 통합을 외쳐온 역대 공화당 전당대회와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의 실정과 미국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부각시키는 날선 발언으로 채워졌다. 연사들은 클린턴 비판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공화당 전성시대를 연 로널드 레이건이나 소수인종까지 포함한 ‘빅 텐트’ 전략을 구사한 주니어 부시 후보 등과는 사뭇 다른 전략이었다.
이번 대선을 ‘백인 대 (對) 소수인종’의 대결구도로 몰아간 트럼프의 극약 처방은 통했다.
백인 유권자가 결집하면 누구든 대통령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백인 유권자로부터 트럼프 수준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후보는 1984년 공화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유일했다. 레이건과 트럼프는 백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후보였지만 방법은 달랐다. 레이건은 통합과 희망의 연설을 통해, 트럼프는 분열과 갈등의 독설을 통해 백인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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