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는 《군주론》에서 지도자의 조건으로 ‘비르투' Virtù : 역량를 들었다. 비르투를 갖춘 인물에게 포르투나 Fortuna(행운)까지 따르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역량이 없는 인물은 설사 행운이 따라줘도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역량을 갖추고 행운까지 따른 인물이 시대정신과도 맞아 떨어진다면? 그런 인물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민주당 경선까지만 해도 힐러리에게는 행운이 따랐다. 민주당 경선에서 슈퍼대의원 제도가 없었다면 힐러리는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에게 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운좋게도 경선 결과에 구속되지 않는 수백 명의 특별한 슈퍼 대의원이 있었다.
이들은 2008년 민주당 대선경선 때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힐러리를 버리고 오바마를 지지했다. 2016년 경선에서는 초반부터 슈퍼 대의원들이 힐러리에게 쏠리면서 샌더스가 불러일으킨 변화의 바람은 고비마다 벽에 부닥쳤다. 주류 미디어도 힐러리 편을 들었다. AP 통신이 민주당 최대 지분을 가진 캘리포니아주 경선을 앞두고 힐러리가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확보에 성공했다고 보도하자 그때까지 입장을 유보했던 슈퍼대의원들이 대거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면서 샌더스의 숨통을 끊었다. 캘리포니아가 샌더스에게 넘어 갔다면 힐러리의 본선 경쟁력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정치인 역량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게 권력의지다. 다른 자질은 대체 가능하지만 이건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수많은 명망가들이 정작 정치권에 영입된 후에는 힘을 못 쓰는 이유가 바로 권력의지가 약해서다. 정치인이 비전을 실행하려면 권력을 잡아야 한다. 정당의 존재 목적이 정권 창출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대선 후보를 권력의지라는 잣대로 평가할 때 힐러리는 A플러스급 정치인이었다.
1999년 2월12일.
미 상원은 위증 등의 혐의로 미 하원이 통과시킨 빌 클린턴 대통령 탄핵안을 반대 55표 대 찬성 45표로 부결시켰다. 힐러리는 탄핵 표결을 지켜보지 않았다. 상원이 탄핵안을 처리하는 그 순간에 백악관 관저에서 뉴욕 정치통인 해럴드 익스Harold M. Ickes 와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 출마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익스는 빌 클린턴 정부 초기 백악관 부실장을 지낸 클린턴 부부의 측근이었다.
이 광경은 반세기 전 익스의 선친이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엘리너 루스벨트에게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를 권유했던 장면과 오버랩 된다. 엘리너는 사회운동에 헌신하고 싶다면서 상원의원 출마 권유 에 응하지 않았으나 힐러리는 엘리너와 달랐다.
민주당 지도부는 석 달 전 민주당 패트릭 모이니헌Patrick Moynihan 뉴욕주 상원의원이 2000년 선거에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힐러리의 출마를 종용하고 있었다. 힐러리의 출마 의지는 매우 강했다. 문제는 당선 가능성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힐러리의 진가가 드러났다.
힐러리가 1998년 가을 민주당 후보들의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을 때 힐러리는 빌과의 이혼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해 8월15일 빌이 힐러리에게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실토한 뒤 부부 관계는 사실상 파탄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힐러리는 부부 관계와는 별개로 “나의 대통령을 위해서 싸우기로 결심했다”고 술회했다. 중간선거 지원 유세는 그 일환이었다. 힐러리는 온 몸을 불살랐다.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란 일반의 예상을 깨고 하원 의석을 5석 늘렸다. 재선 대통령 임기 중에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의 의석이 늘어난 것은 1822년 이후 처음이었다. 힐러리의 오랜 정적(政敵)이었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힐러리의 정치적 자산이 불어났다.
빌의 불륜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힐러리는 미국인들의 동정표를 얻게 됐다. 힐러리의 지지율 상승이 그 단적인 증거였다. 힐러리는 불륜 남편에 의해 고통받는 선한 아내가 됐다. 힐러리의 동물적인 정치 감각이 발동됐다. 퍼스트 레이디 이후의 진로를 모색 중이던 힐러리는 빌과 민주당을 살리는 길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민주당이 뭉쳐 있는 상황에선 빌의 탄핵안이 상원에서 가결될 가능성은 0%였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상원이 탄핵안 가결 의석(67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0%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간선거에 올인하는 길만 남는다. 마침 빌은 탄핵안에 발이 묶여서 중간선거 지원에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SOS 신호를 보내자 힐러리는 바로 응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역사적인 승리는 힐러리의 상원의원 선거 출마를 기정 사실로 만들었다. 힐러리는 곤경에 처한 민주당을 구한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 남편 이상으로 미국의 정치적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퍼스트 레이디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힐러리를 ‘대통령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누구보다 힐러리의 잠재력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빌이었다. 빌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부터 힐러리의 판단과 전략을 존중했다.
백악관에 들어와서도 중요한 결정은 항상 힐러리와 상의한 뒤 내렸다. 빌은 “힐러리는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힐러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빌의 불륜이 힐러리의 정치적 자산을 키운 것은 아이러니했다. 빌과의 관계에서도 힐러리는 이전보다 더 힘이 강해졌다. 이제 칼자루는 힐러리가 잡게 됐다. 빌은 힐러리의 용서를 갈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힐러리는 그 즈음 버팔로주립대 학생들과 만나 심경의 일단을 토로했다.
“결혼은 힘든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식이 생기면 부모로서 특별한 의무도 생기게 된다.”
힐러리는 상원에서 빌의 탄핵안이 부결되고 나흘 뒤에 “상원의원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내부적으로는 캠페인 전략을 짜고 있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은 힐러리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열린 해였다.
정치인으로 첫 발을 내딛은 해이고, 오랜 고민 끝에 빌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린 해이다. 상원의원 선거출마 문제와 결혼유지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힐러리는 자서전에서 “상원의원 출마 결정을 내린 뒤 빌과 다시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면서 “빌은 나를 돕고 싶어 했고 나는 빌의 지식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힐러리가 빌의 1급 참모였으나 이제는 그 역할이 바뀌었다. 힐러리는 빌의 정치적 자산을 활용하길 원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빌과의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힐러리는 빌과 이혼하는 대신 ‘정치적 동거’를 선택했다.
클린턴 부부는 8년간의 백악관 생활을 정리할 즈음에 이미 백악관 재입성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클린턴 부부의 백악관 참모들은 그 계획을 ‘The Plan’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힐러리가 재선 대통령이 돼서 클린턴 부부가 백악관 생활을 8년 더 연장한다는 구상이었다. 힐러리는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빌은 미 역사상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 (여성 대통령의 남편)이 되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됐다면 클린턴 부부는 미 역사상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세운 재임 기간(4선에 성공했지만 4선 대통령 취임 직후 숨지는 바람에 12년밖에 재임하지 못했다)을 넘어 16년을 부부가 번갈아가며 집권하게 되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2001년 1월 주니어 부시 당선인에게 백악관을 비워주기 전날 밤, 이삿짐을 꾸리던 빌은 참모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영화 《터미네이터》의 명대사를 나직히 속삭였다.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We’ll be back*(주1)
‘The Plan’의 구상은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실행 시기가 8년 뒤로 늦춰졌다.
빌은 힐러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다.
2010년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빌은 수백 명의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면서 힐러리의 대권 재수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힐러리는 오바마의 내각(국무장관)으로 들어가 재기의 발판을 다졌다. 패장에게 손을 내민 오바마도 특별하지만 적장의 밑으로 들어가 그를 주군처럼 모신 힐러리도 대단하다. 2016년 대선후보 경선도 쉽지 않은 게임이었지만 힐러리는 불굴의 투지로 여성으로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유력 정당의 대선후보가 됐다.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겠다는 일념으로 힐러리는 권력의지를 불태웠으나 많은 미국인들은 힐러리의 권력의지를 권력욕으로 받아들였다.
*주(1) American Evita, Christopher Anderson(2004), HarperCollins Books, p4-9.
'조기자의 미국 정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따로 노는 트럼프와 공화당 (0) | 2020.05.14 |
---|---|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0) | 2020.05.13 |
힐러리 타격한 IS 테러 (0) | 2020.05.12 |
힐러리 발목잡은 ‘힐러리랜드’ Hillaryland (0) | 2020.05.11 |
주류 언론 무력화시킨 트럼프 (0) | 2020.04.30 |
민권 프리즘으로 바라본 트럼프와 힐러리 (0) | 2020.04.30 |
기록적으로 결집한 백인표 (0) | 2020.04.30 |
선거판 흔든 인종 변수 (0) | 2020.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