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이후 ‘테러’는 미국 대선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9·11테러 이후 첫 대선인 2004년 선거가 특히 그랬다. 그해 재선에 도전한 주니어 부시는 박빙 승부를 펼친 끝에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꺾었다. 부시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맞붙었던 2000년 대선에서는 과반 선거인단(271명)을 확보하며 승리했지만 일반 유권자 득표에서는 54만표 정도 졌다.*(주1)
부시는 첫 번째 재임 기간 내내 ‘반쪽 대통령’이란 조롱을 받아야 했다. 부시는 4년 뒤 선거인단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도 케리를 301만여 표 차로 꺾고 재선에 성공, 체면을 회복했다. 공화당 후보가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민주당 후보를 누른 것은 1992년 대선 이후 처음이었다. 9·11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부시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이 만들어 놓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됐다.
미국이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을 통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했을 때, 프랑스 전략학자 루시앙 푸아리에는 이를 고대 로마의 자마 전투에 비유했다. 로마는 자마 전투 이후 ‘제국’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걸프전 이후 프랑스 전 외무장관인 위 베르 베드린이 이름 붙인 ‘초강국’ Hyperpower 에 걸맞은 세계 패권을 확립한 듯했다. 미국의 지배력은 광범위하고 강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패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과 중국의 부상, 미국 주도 경제 질서에 충격을 가한 금융위기 등이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미군은 걸프전에서 군사력의 절대 우위를 유감없이 전 세계에 선보였다. 더 이상 미군에 대항할 세력은 없으며, 미국은 군사적 헤게모니를 통해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은 도전받기 시작했다.
미국 패권을 흔든 근본적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주니어 부시 대통령은 유엔 결의안을 바탕으로 동맹국의 협조를 얻어 전쟁을 시작한 아버지 부시의 전례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보복 전쟁’에 뛰어 들었다. 결과는 국제적 고립이었다.
과거의 동맹국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은 탓에 미국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비용과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미군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이라크에서 종파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고전했다.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정권은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로 교체됐다. 군사 전술의 측면에서도 걸프전과 나토의 코소보 개입 전쟁 때 통했던 미국식 군사작전은 게릴라전 위주의 비정형 테러 세력을 만나면서 과거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출신인 자크 사피르Jacques Sapir는 저서 《제국은 무너졌다》에서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대하지만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미 군사 패권이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면 미 경제 패권은 20세 말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 와중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미국은 당시 아시아 금융위기 확산과 러시아 금융시장 붕괴를 예상하지 못했고, 2001년 남미 국가들의 부도사태에도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은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해법도 내놓지 못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식 금융모델, 경제모델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도전받기 시작했다.
그 직후 터진 ‘인터넷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 경제는 취약성을 드러낸 채 수술대에 올랐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 직후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미국 경제는 한동안 예전의 활력을 되찾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경기침체 와중에 급속히 불어난 재정 적자도 미국의 경제 패권를 약화시켰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2007년 2월 독일 뮌헨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나는 현대 세계에서 일극 체제는 용인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독불장군식 세계 경영 원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지금도 푸틴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미국과 맞서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연합 EU의 맹주 역할을 하는 국가도 “동맹국은 미국의 인공위성이 아니다(2003년 독일 요슈카 피셔 Joschka Fischer 외무장관)”는 입장을 견지하며 미국의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었다. 2001년 러시아와 중국 주도로 상하이협력기구SCO 가 창설되고 2005년 중국·러시아 합동 군사훈련에 인도와 이란 등이 옵서버로 참여한 일련의 사태도 미국 패권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징후였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지역 패권국가는 최근 들어 협력 범위를 넓혀가며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저서 《미국 외교정책의 대반격》에서 “유럽이 미국의 부상을 막을 수 없었듯이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인도, 유럽의 부상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2016년 6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IS 전사를 자처하는 자생적 극단주의자가 테러를 자행했다. 이를 계기로 테러가 대선 변수로 급부상했다.
테러 위협이 고조된 시기에는 대체로 ‘공화당 후보, 남성 후보, 국가안보 분야 경력이 있는 후보’가, 그리고 ‘강경책을 제시하는 후보’가 더 능력 있는 후보로 비쳐진다. 과거 한국 선거에서 북한의 도발 같은 ‘북풍(北風)’ 변수가 불거지면 보수 정당 후보가 유리해졌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공화당 남성 후보’가 유리하다는 가설은 올랜도 테러 직후 실시된 로이터-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후보를 묻는 질문에서 트럼프(45%)는 힐러리 (41%)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힐러리의 국무장관 재직 중에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 아프가니 스탄 철군 조치를 단행했고 이는 힘의 진공 상태를 초래했다. 미군이 빠진 자리에 이슬람 종파주의와 극단주의 세력이 밀고 들어왔다.
2011년 중동 민주화 과정에서 독재자가 쓰러지자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 국가’IS 가 세력을 확장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기간에 국무장관 시절 이뤄진 힐러리의 리비아 군사개입을 쟁점화했다. 트럼프는 리비아 군사개입으로 미국이 위태롭게됐다고 공격했다. 미국이 시민군 측에 제공한 무기가 IS 로 흘러가 IS의 테러 능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카다피 제거가 과연 필요한 조치였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트럼프는 대선 TV토론에서 “힐러리와 오바마의 시리아 정책으로 지금 시리아에 IS가 생겼다”고 공격했다.
트럼프는 대외정책과 관련해선 공화당의 ‘개입주의’ 기조를 반대했다.
레이건과 주니어 부시 정부에서 대외정책을 담당했던 인사들은 공식적으로 트럼프 반대 입장을 밝혔다. 리처드 아미티지 Richard Armitage 전 국무부 부장관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담당자들은 대다수가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 이들 중 일부는 힐러리 지지 선언까지 했다. 힐러리라면 치를 떠는 미국 보수가 ‘매파 hawks 힐러리'는 인정한 셈이다.트럼프가 ‘America First’를 외치면서 부시 정부가 시작한 이라크 전쟁을 ‘외교 정책의 재앙’으로 매도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부시 집권기를 ‘실패’로 규정짓기도 했다. 참다 못한 부시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리비아 군사작전이 ‘힐러리의 전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2011년 2월 ‘아랍의 봄’이 튀니지와 이집트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리비아에 상륙했다. 한 인권운동가가 리비아 벵가지에서 체포되면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정권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자 시위대도 무장하기 시작했다. 카다피 정부 인사와 일부 군인도 시민군에 합류했다. 시민군은 과도국가위원회를 구성했다.
카다피는 미국의 리비아 공습에 대한 보복 조치로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189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259명이 타고 있던 팬암기를 폭발시킨 장본인이었다. 로널드 레이건이 ‘중동의 미친개’ 라고 불렀던 카다피가 장갑차 부대를 진격시켰다. 대규모 학살 사태 가 예견됐다.
오바마 정부 내에서는 미군 파병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국방장관은 반대론을 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책임지고 있는 게이츠 장관은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리비아 개입을 꺼렸다. 리비아 사태가 미국의 안보상 이해관계와 직결돼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현실주의자였다. 힐러리는 빌의 집권기인 1994년 르완다 인종 분쟁으로 80만 명이 학살당한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면서 미군 파병을 포함한 전방위 조치가 필요하다는 강경론을 펼쳤다.
트럼프 진영에선 힐러리의 호전성도 문제삼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딕 모리스Dick Morris다. 모리스는 힐러리가 아칸소주 퍼스트 레이디일 때부터 선거 전략을 자문했던 정치 컨설턴트다. 공화당과 민주당을 넘나들었던 모리스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진영에 가담해 ‘힐러리 불가론’의 논리를 제공했다. 모리스는 “대통령 힐러리가 오바마처럼 진보적인 경제·사회 정책을 펼칠지, 아니면 빌처럼 중도로 이동할지는 알 수 없지만 대외 정책에서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것이란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주2)
주니어 부시는 테러 덕분에 재선에 성공했지만 힐러리에게는 테러가 감표 요인이 됐다.
*주(1)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은 50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선출하는 선거인단이 뽑는다.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은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1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독식한다. 전체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선거인단 수는 50개 주에 배정된 상원의원 수(100명)와 하원의원 수(435명)에 워싱턴DC 3명을 합한 것이다. 미국 선거인단제도는 50개 주가 하나의 독립된 나라처럼 운용되는 연방제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다. 특정 주의 선거인단은 그 주를 대표하기 때문에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주(2) Armageddon, Dick Morris & Eileen Mcgann(2016), Humanix Books,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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