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외정책은 동맹을 중시하는 공화당의 기존 노선과 상충된다. 협상용이라고는 하지만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고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수 시절 유력 싱크탱크가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자유의지주의’ Libertarianism 를 표방하는 케이토 연구소 Cato Institute 였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자유의지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이념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한다. 미국 보수를 대표하는 공화당과 유사하지만 대외정책은 공화당과 크게 차별된다. 자유의지주의자들은 미국이 국제분쟁에 개입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당시 케이토 연구소 더그 밴도 Doug Bandow 선임연구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 펜타곤(미 국방부)은 세계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의 국방비를 떠안고 있다. 해마다 미국인들은 수천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은 덜 안전해지고 있다. 이들 부유한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1%를 비용으로 내야 한다.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고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는 한국은 더 부담해야 한다. 1950년 6·25전쟁 때 만들어진 한·미동맹은 시대착오적이며 전적으로 일방적인 동맹이다. 한국은 수퍼파워인 미국에 의존하며 돈을 아끼고 있다” *주(1)
2008년 미 공화당 대선주자로 나섰던 론 폴 Ron Paul 전 하원의원이 대표적인 자유의지주의자다. 당시만 해도 론 폴의 목소리가 미약했지만 지금은 론 폴처럼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이런 기류에 올라탔다. 트럼프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쉽게 풀어보면 이런 취지였다.
‘부자였던 미국이 다른 나라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19조 달러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한국과 일본, 독일, 중국은 부자가 됐다. 기존의 동맹 조약은 일방적이고 낡은 조약이다. 미국에 유리하게 고쳐야 한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 우리가 왜 우리 돈 써가면서 다른 나라를 지켜줘야 하나. 중국은 미국에서 번 돈으로 군사력 키워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서 미국과 미국인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
트럼프의 이런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지만 미국인들의 귀에는 달콤하게 들렸다.
해외 주둔 미군은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세계전략 차원에서 배치된 것이지 주둔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가난한 나라’라는 말도 궤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먹고살기 힘들어진 대다수 미국인은 트럼프에 환호했다. 트럼프가 그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기 때문이다.
외교라는 것이 본래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외교관은 ‘국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외국에 파견되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이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가 국익에 부합한다면 언제든 철수할 것이다.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한 뒤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실행하려 했다. 미국 의회와 미군 사령부가 카터를 설득하지 않았다면 사태는 주한미군을 일부 감축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역대 미국 정부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공화당 정부라고 해서 대북 강경책 일변도였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정부의 대북 정책이 온건했던 것도 아니다. 북핵 6자회담을 만들어낸 대통령은 공화당 주니어 부시였고 북한 영변핵시설 폭격을 실행에 옮기려 했던 대통령은 민주당 빌 클린턴이었다.
무늬만 공화당인 트럼프는 핵을 들고 폭주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초래하는 무역 손실은 감수할 수 있지만 북핵은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전쟁과 평화’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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