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이변이었다.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겉으로는 침묵했던 이른바 ‘샤이 트럼프’ shy Trump 가 주류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의 힐러리 승리 예측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차원을 넘어 미국인이 망가진 정치시스템을 복원시키기 위한 주연으로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트럼프는 공직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아웃사이더로 불리지만 미국 사회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형성해온 관용과 공존, 예의와 염치의 문화에 독설을 내뱉으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인 이기심과 분노를 권력 획득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기존의 정치 문화와 관행을 뒤엎은 아웃사이더였다. 트럼프는 세계 일등 국가였던 미국이 쇠퇴하고 있으며 이는 워싱턴 정치의 무능하고 유약한 리더십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미국 정치는 온갖 정치자금에 발목이 잡혀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돌보는 대신 엘리트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해 왔다고 주장했다.
힐러리는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는 후보였지만 워싱턴 정치 속 에 안주했던 탓에 미국인들을 상대로 첫 여성 대통령의 역사성을 제대로 납득시킬 수 없었다. 평범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힐러리가 선거에서 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평범한 미국인을 우습게 보는 정치인과 미국에 손해를 끼친 나라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은 토마스 홉스(1588~1679)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절대 권력으로 고안해낸 ‘리바이어던’Leviathan*(주1)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낸 셈이다.
국왕 권력의 약화로 내전이 발생하는 바람에 평범한 국민들이 고통받았던 17세기 영국의 상황과 기득권층의 탐욕으로 경제·사회적 모순이 심화된 탓에 평범한 미국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21세기의 미국은 시대를 넘어선 유사성을 띠고 있다. 홉스가 절대주권을 지닌 국가(리바이어던)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듯이 미국인들은 기득권층을 제어할 수 있는 대통령을 해결책으로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에게 실제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2016년 대선에서 대다수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워싱턴 정치인들을 혼내줄 수 있다고 믿었다.
‘반(反) 정치’anti-politics 의 정치인인 트럼프류의 대선 주자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제도권 정치와 엘리트 기득권층을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미국 우선주의, 백인 우월주의를 바탕에 깔고 소수인종과 여성 차별,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 등을 표출했다. 트럼프는 수십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반 정치 흐름 속에서 그 진면목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반 정치 세력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의 깃발 아래로 총집결했다. 공화, 민주 양당의 기성 정치질서에 실망한 반 정치 세력들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의 나팔 소리에 일제히 호응했다.
1968년 미국독립당American Independence Party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 는 트럼프의 원조로 볼 수 있다.
월러스는 “대통령 취임 이후 90일 안에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으면 즉각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면서 고립주의 외교노선을 천명했다.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은 방위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외 원조에 대해서는 ‘쥐구멍에 돈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결사반대했다. 소외된 백인 노동자층을 집중 공략한 월러스는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 보장은 더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월러스는 민주당 소속으로 앨라배마 주지사가 됐지만 민주당이 추진한 민권법을 반대했다.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처럼 민권운동 과정에서 연방정부가 주정부의 권한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 민권운동에 반대했으나
인종차별이라는 결과에선 도긴개긴이다.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지지를 받았으나 공개적으로 그들의 지지를 접수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않았다. 월러스는 공화당 리처드 닉슨, 민주당 허버트 험프리와의 본선 대결에서 5개 주(앨라배마, 아칸소, 조지아, 루이 지애나, 미시시피)에서 승리했다. 월러스는 공화, 민주당이 아닌 제3 당 후보로 출마해 선거인단(46명)을 획득한 마지막 후보였다. 월러스는 인종차별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1992년 대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섰던 로스 페로 Ross Perot 는 ‘기업인 대통령’ businessman president 을 꿈꾼 트럼프의 초기 버전이었다. 텍사스 출신인 페로는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 복무했다. 전역 후 IBM에 입사했다가 창업, 탁월한 경영 수완으로 40 살이 되기 전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페로는 일자리 해외 아웃 소싱Outsourcing 금지, 북미자유무역협정 반대공약 등을 내걸고 단숨에 공화당 시니어 부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와 3자 구도를 만들었다. 기성 정치권에 분노한 민심이 페로 열풍을 만들어냈고 페로는 그해 6월 갤럽 조사에서 지지율 39%로 1위로 올라섰다.(시니어 부시 31%, 빌 클린턴 25%)
혜성처럼 나타나 대선 구도를 흔들었던 페로는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돌연 대선 포기를 선언했다. 대선을 한 달여 남겨두고 다시 대선 캠페인을 재개했으나 이미 대선 포기 선언으로 대선 동력이 약화된 상황이었다. 그는 트럼프처럼 자기 돈으로 선거를 치렀다. 페로는 “우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 하다” We need deeds, not words 면서 워싱턴 정치인들을 비판했다. 또 “정부는 엉망이다. 정부 사람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왕족처럼 살고 있지만 우리들은 평범함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투잡을 뛰어야 한다”면서 대중의 정치 불신을 부추겼다.
페로는 일반 유권자 투표의 18.9%를 얻었다.(빌 클린턴 43%, 시니어 부시 37.4%) 선거인단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일반 유권자 득표율은 1912년 대선에서 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래 제3당 후보로는 가장 높았다. 1995년 개혁당을 창당하고 1996년 대선에도 출마,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8.4%를 득표했다. 페로는 2016년 대선에서 어느 후보도 지지 하지 않았다.
페로가 만든 개혁당은 트럼프도 뛰어들었던 2000년 대선후보 경쟁 과정에서 내홍에 휩싸였다. 당시 팻 뷰캐넌Pat Buchanan 후보 추종자들이 뛰쳐나와 2002년 4월 만든 당이 미국우선주의당America First Party 이다. 미국우선주의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개혁당보다 더 우파적이다. 대외정책은 극단적인 고립주의를 기조로 삼았다. 미군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모든 국제기구와 세계무역기구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도록 했다. 주니어 부시 공화당 정부가 결정한 2003년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다. 전쟁은 의회만 선포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제법정의 판결 효력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경제 강령에는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과 소수인종 채용 할당제 폐지, 불법 체류자 합법화 반대, 연방정부 권한 축소, 낙태 반대, 총기 보유와 관련한 모든 형태의 규제 반대를 명시했다. 주택도 시개발부와 교육부 등을 폐지하고 공립학교에 연방자금을 투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학교에서 기도를 부활하고 십계명 등 기독교 상징물을 게시해야 한다고 명기했다. 소득세는 헌법적 근거가 없는 세금으로 전면 폐지하도록 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미국우선주의 당 강령을 대거 공약에 포함시켰다. 대외정책 기조는 아예 미국우선 주의당의 당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대선주자는 아니지만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미네소타 주지사에 당선된 제시 벤추라Jesse Ventura 는 트럼프가 롤 모델로 삼았던 정치인이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 해군 폭파대원이었던 벤추라는 전역 후 프로레슬러 생활을 하다 영화계에 진출, 아놀드 슈워제네거 Arnold Schwarzenegger 와 함께 영화 《프레데터》 Predator, 《런닝맨》 The Running man 을 찍었다. 1990년 11월 벤추라가 미네소타 브루클린 파크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그의 당선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 다. 평소 장기 집권해온 현직 시장을 거침없이 비판해온 벤추라는 엔터테이너 기질을 십분 발휘하면서 ‘기성 정치권에 맞서는 보통사람의 대변인’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켰다. 벤추라는 1998년 개혁당 후보로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민주, 공화당 후보를 상대로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벤추라는 “정치권을 심판하자” 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로비자금 없는 정치를 주창하면서 유력 정당 후보들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인터넷을 활용한 풀뿌리 캠페인은 벤추라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벤추라의 미네소타 주지사 당선은 개혁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최고위 공직이었고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트럼프는 벤추라의 당선 소식에 고무됐던 듯하다. 트럼프는 2000년 대선에서 개혁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벤추라의 당선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벤치마킹하겠다고 밝혔다.
월러스나 페로, 벤추라, 트럼프는 모두 포퓰리스트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모두 기득권층에 맞서 다수 국민의 이익을 지켜주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정 정치를 타도 대상으로 삼는다.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는 거의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로 뽑힌 선량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포퓰리스트가 힘을 얻는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거나 국가적 위기가 닥쳐오면 포퓰리스트의 힘이 더 커진다. 그때 정치권 밖에서 ‘메시아’를 자처하는 인물이 나타나 대중을 현혹한다.
2016년 미국은 포퓰리스트가 등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워싱턴 정치는 고장나 있었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싫다는 무당파가 늘어 났다. 정치 냉소주의가 만연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중산층과 서민의 삶은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인 노동자층의 처지는 흑인층보다 높은 자살률이 웅변하고 있었다. 인종 갈등과 테러는 미국인들의 삶을 더 긴장시켰다. 백인들은 해마다 늘어나는 소수인종 수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디어의 선정주의, 상업주의는 포퓰리스트를 띄워줄 준비가 돼 있었다. 그때 성공신화와 포스가 느껴지는 외모, 쇼맨십으로 무장한 트럼프가 등장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조기자의 미국 정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필로그 (0) | 2020.06.04 |
---|---|
트럼프의 미국 (0) | 2020.05.31 |
‘거래’하는 대통령 (0) | 2020.05.27 |
트럼프 리스크 (0) | 2020.05.17 |
소진되는 미국의 인내력 (0) | 2020.05.16 |
트럼프의 대북 '레드라인' (0) | 2020.05.15 |
따로 노는 트럼프와 공화당 (0) | 2020.05.14 |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0) | 2020.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