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5월16일 미국 상원 본회의장.
이날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앤드루 존슨 대통령(17대)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재선 당시 부통령으로,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존슨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존슨 대통령은 의회가 남북전쟁 패전 주(州)에 대한 가혹한 조치나 행정부에 대한 과도한 간섭을 담은 법률안을 제안하면 거부권으로 맞섰다. 존슨 탄핵안은 양측의 갈등이 쌓이고 쌓인 끝에 과격한 공화당 의원들이 뽑아든 극약 처방이었다.
탄핵안의 핵심은 존슨 대통령의 에드윈 스탠턴 국방장관 해임이 공무원 임기법을 위반하고 의회를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퓰리처상 수상 저서인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범우사)은 현직 대통령 탄핵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한 의원을 기리고 있는데, 바로 캔자스주 상원의원인 에드먼드 로스다.
당시 연방에 가입된 27개 주의 상원의원은 54명으로, 탄핵안 가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2인 36표였다. 의석 수 42석인 공화당은 탄핵안 통과를 자신했다. 그런데 공화당 의원 6명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탄핵 반대 입장을 밝히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민주당 의원 12명은 반대표가 확실한 만큼 공화당으로선 남은 소속의원 36명 전원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이들 중 로스를 제외한 의원들은 모두 찬성 입장이었다.
마침내 로스가 투표할 차례가 됐다. 이미 24명의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한 뒤였다. 로스만 찬성하면 존슨 탄핵안이 가결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상원의 탄핵 표결을 주재한 연방 대법원장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로스 의원, 피고 앤드루 존슨은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의원들과 방청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캔자스 출신의 젊은 초선 상원의원에게 쏠렸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무죄요!”라고 외쳤다.
35 대 19, 단 한 표 차이로 공화당 과격파의 대통령 탄핵 기도는 무산됐고 대통령은 살아났다. 대신 로스의 정치 인생은 막을 내렸다. 동료 의원들은 ‘반역자 로스’(무죄라고 외친 이후 로스가 얻은 별명)를 저주했다.
존슨 대통령은 퇴임 후 상원의원으로 다시 의회에 입성했으나 그를 지지했던 로스 등 7명의 공화당 의원은 단 한 명도 재선되지 못했다. 캔자스로 돌아온 로스 의원은 냉대와 질병,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로스 의원은 왜 반대표를 던졌을까. 그는 탄핵 소동이 있은 지 몇 년 후에 그 이유를 털어놨다.
“만약 대통령이 당파적 이유로 축출된다면 대통령직의 권위는 크게 실추될 것이며, 행정부는 입법부의 종속적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존슨 탄핵안은 당파 독재정치를 초래하고 국가조차 위험에 빠뜨렸을 것이다.”
로스는 탄핵 표결 직후 부인에게 “오늘 나를 저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일이 오면 나를 축복할 것이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나의 가치 있는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미 가장 큰 위험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해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예언대로, 역사는 그를 국익을 지키다 정치적 순교를 당한 영웅으로 재평가했다.
국익을 위해선 당 지도부와 지역구민의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의원. 온갖 편견과 오도된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물거품 같은 인기를 경멸하고, 전라도나 경상도, 다른 어느 지역의 의원이 아닌 대한민국 의원으로서, 당 내의 반역자라는 오명은 기꺼이 감수하는 의원.
자신의 정치적 무덤을 들여다보면서도 진실과 거짓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실의 길을 걸어가는 의원.
19대 국회에선 이런 의원들을 보고 싶다.
조남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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