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초 미국 패권의 위기를 진단한 적이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과 신흥 강대국의 부상, 미국 주도 경제 질서에 충격을 가한 금융위기 등이 미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취지의 기획물이었다.
기자는 1991년 걸프전쟁 승리로 세계적인 군사 패권을 증명한 미국이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경제침체 와중에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나는 재정 적자가 미국의 경제 패권도 약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기자는 그런 전망들이 현실화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사태가 촉발한 미국 경제 패권의 위기는 오바마 정부 들어 더욱 심화됐다. 잇따른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식 금융모델, 경제모델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도전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2조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이 투입됐지만 미국 경제는 여전히 더블딥(이중침체) 전망에 시달리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들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 미 재정적자는 2009 회계연도(2008년 10월∼2009년 9월)에 사상 최고치인 1조4000억달러, 2010 회계연도에는 1조2900억달러를 기록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2011 회계연도 재정적자가 1조28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적자액만도 1조2340억달러에 달해 CBO의 재정적자 추산치를 무색하게 했다.
미 재정적자는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의 지형도를 바꿔놓고 있다.
재정적자 변수는 보수 성향 정치운동인 ‘티 파티’ 세력을 성장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내년 11월 치러지는 미 대선도 재정적자 변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런 재정적자가 올 들어 미국의 군사력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지난 8월 초 국가부도(디폴트) 사태 직전에 합의한 재정적자 감축안에 따라 국방비는 향후 10년 동안 3500억달러가 줄어들게 됐다. 미 의회의 재정적자 감축 특별위원회가 올 추수감사절 전날(11월23일)까지 최대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 국방비는 기존의 3500억달러 외에 추가로 6000억달러가 자동 삭감된다. 오바마 정부가 2012 회계연도에 책정한 국방예산이 6710억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군 수뇌부에서 터져나오는 탄성을 이해할 만하다.
미 국방비 삭감은 당장 2012 회계연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부터 현실화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미국의 국방비 감축이 한·미 동맹에 미칠 파급 효과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얼마 전 미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예산 감축에 따른 미군 전력의 공동화(空洞化)를 걱정하면서 “지속되는 북한, 이란의 핵 개발 보유 위협에도 대비해야 하며 중국의 군사 능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미 대사관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까지 미국의 국방비 감축 기조가 주한미군 복무 정상화 계획 예산 등 한반도 방위 예산까지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로버트 윌러드 미 태평양사령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아·태 지역은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예산에서 우대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한·미 당국자들의 희망과는 별개로 미 의회 내에서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미군의 해외주둔 정책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한·미 동맹도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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