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보수’ 美버지니아주서 재선 확정
비결은 지역민 대변하는 의정활동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는 미국보다 역사가 깊다.
영국의 첫 미국 식민 거류지인 제임스타운 주민들이 1619년 선거로 뽑은 ‘식민지 의회’(House of Burgesses)가 그 기원이다. 4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민의의 전당이다. 버지니아의 주도(州都)이자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방군의 수도였던 리치몬드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버지니아주 의회는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됐다. 남부가 공화당 텃밭으로 변했을 때 버지니아주 의회는 공화당의 아성이 됐다. 정치 성향만 보수적인 게 아니다. 백인을 제외한 소수 인종은 오랫동안 버지니아주 의회 문턱을 넘기 힘들었다.

 버지니아주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이어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한국계의 버지니아주 의회 입성은 2009년 11월에야 실현됐다. 마크 김 하원의원(민주)이 그 주인공이다.

 

                                                                                                           마크 김

김 의원은 공화당세가 강한 버지니아주 35선거구에서 당선됐다. 8만여 유권자 중에서 한인은 몇천명에 불과했다. 한인들이 힘껏 도왔지만 김 의원 본인이 일궈낸 정치적 승리였다. 그는 딕 더빈 미 연방 상원의원(민주·일리노이) 보좌관 출신이다.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가깝게 지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워싱턴DC로 이사할 때는 함께 짐꾸러미를 날랐다. 그런 인연으로 오바마 대선 캠프에 초창기부터 참여했다. 오바마 당선 직후 미 언론은 그를 ‘오바마 사람’으로 분류했다. 지난 대선 때는 버지니아에도 ‘오바마 바람’이 불었다. 그런 만큼 김 의원의 당선에는 오바마 변수도 작용했을 것이다.

 버지니아의 정치 풍토는 오바마 집권 1주년이 되기도 전에 과거로 회귀했다. 2010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당시 기자는 내심 김 의원의 재선을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김 의원은 재선 선거(다음달 8일)가 치러지기도 전에 재선을 확정지었다. 공화당이 김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민 자당 후보를 다른 지역구로 돌리면서
 단독 입후보 국면이 됐다. 오랫동안 국내 선거를 취재해본 기자로서는 이런 상황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어떻게 공화당이 민주당 후보를 밀어줄 수 있을까. 김 의원은 무슨 수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얼마 전 김 의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런 의문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해답은 김 의원의 ‘초당 정치’였다. 김 의원은 의정 활동 과정에서 민주당이 아니라 지역구 주민을 바라보며 뛰었다. 버지니아주 하원은 전체 100명 의원 중 공화당 소속이 61명이다. ‘승자 독식’ 룰에 따라 상·하원의장과 상임위원장 등 리더십 전부가 공화당 차지다. 현실적으로 공화당 도움 없이는 민주당 의원은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김 의원은 지역구민을 위한 법안을 들고 공화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부지런히 설득하러 다녔다. 이런 그를 민주당 일각에서 ‘배신자’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그는 “나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민주당을 대표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을 대표해서 일하고 있다”면서 “민주당, 공화당 따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지역구에 민주당 성향 주민이 55%면 민주당만 가지고도 이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머지 45% 주민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민주당 지도부는 그를 ‘떠오르는 정치인’ 10명에 포함시켰다. 공화당은 지역구민의 지지세가 강한 김 의원의 능력을 인정,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공화당 후보를 다른 지역구로 돌렸다.

 당보다 지역구민을 앞세우고 주민들을 위해서라면 ‘배신자’ 소리도 감수하는 의원. 그런 의원을 내치지 않고 포용한 민주당 지도부. 더 역량있는 상대당 의원을 위해 자당 후보를 내지 않은 공화당 지도부. 그리고 김 의원이 초당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밀어준 지역구민들. 이들 모두가 400년 전통에 걸맞은 버지니아주 의회의 고품격 정치를 가능케 한 주인공들이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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