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심 외면한 중재안에 큰 실망
‘안하무인’ 日외교 美에 부담될 것

미국이 동해(East Sea) 표기 문제와 관련, ‘일본해(Sea of Japan) 단독 표기’ 입장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된 이후 국내의 대미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지난 8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연방정부 기관인 지명위원회(BGN) 표기 방침에 따라 일본해를 사용한다”면서 일본해 단독 표기 방침을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미국의 입장은 미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견지한 일본해 단독표기 정책과는 차이가 있었다.

IHO에 미국 입장을 전달한 미 군사지리정보국(NOA) 소속의 크리스 앤더슨은 미국이 일본해 단독표기 입장을 IHO에 전달한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해 단독 표기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런 뒤 “미국은 기존 수로 책자(세계 해도 작성의 지침서인 ‘해양과 바다의 경계’)를 개정하는 과정에 동해를 포함시키려 한다”면서 “일본해의 대안 명칭으로 동해가 사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부록에 참고 자료 형식으로 동해라는 명칭을 넣는 전향적 방안을 마련했다”고 부연했다.
 
 국립해양대기청(NOAA) 연안조사국 공보관인 돈 포시더는 한 발 더 나아가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판의 한반도 해역 지도 본문에 각주(footnote)를 달아 동해를 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NOA와 NOAA 소속 당국자 두 명을 IHO 미국 대표로 파견하고 있다. 앤더슨은 IHO 내에서 분쟁 지역 표기 갈등을 조율하는 임시 기구인 해양경계 실무그룹 부의장도 맡고 있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미국은 일본이 한국의 동해·일본해 병기안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동해가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판에 표기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앤더슨은 “우리가 제시한 중재안이 수용되면 동해는 처음으로 IHO 책자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미국의 ‘일본해 단독 표기’ 정책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하지만 미국의 중재안은 한국에서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미국의 중재안을 다룬 본지 보도와 관련, “미국은 일제 시대부터 우리의 뒤통수를 때린 나라다”, “미국이 일본의 로비에 넘어갔다”는 등의 댓글을 달며 미국의 일본 편향 정책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한 네티즌은 “일본이 조선을 강제합병한 이후 동해는 일본해로 바뀌었으나 일본은 패전 이후에도 한국의 바다와 섬을 장악하려는 야욕을 그치지 않고 있다”면서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벌써 잊었느냐”고 질타했다.

미국은 법과 제도, 관행을 중시하는 나라다.

미국의 일본해 단독 표기 관행도 한 지명에 한 명칭만 사용한다는 ‘단일 명칭 정책’에 따른 것이다. 미 당국자는 “해양 표기 명칭이 여러 개면 해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면서 “미국은 IHO가 1929년 ‘해양과 바다의 경계’에서 공식 명칭으로 채택하고 그 이후 널리 쓰인 일본해를 단일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결정적 결함을 안고 있다. 바로 일제의 침략으로 왜곡된 동북아 근대사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는 점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이 없었다면 일본해 표기가 관행으로 굳어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미 행정부는 한·일 역사 갈등에 관한 한 수수방관적 행태를 보였다. 한국과 일본의 싸움에 끼어들어야 득될 게 없다는 계산속이다. 이런 태도는 ‘태평양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궁극적으로 미국에도 득될 게 없다. 34년 동안 일본 외교관으로 봉직했던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의 충고를 다시 소개한다.

“일본의 안하무인 격인 처신은 미국의 침묵에 의해 조장된 측면이 있다. 일본이 한, 중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이 떠안을 것이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세상 읽기, 한겨레] 일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

                                  박명림 연세대 교수


2011년은 전후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기억을 정초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60돌을 맞는 해이다.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넘어설 것인가 차분히 돌아볼 때이다. 특히 일본 대지진 구호성금 제공(한국·동아시아)과 독도·교과서 문제 야기(일본)가 엇물린 상황을 맞아 더욱더 그러하다.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인해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가 거의 무임승차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약은 일본을 인류 최악의 전범국가로부터 합법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게 해주었다. 게다가 조약에 바탕한 미-일 안보동맹은 일본을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안보전략의 요충국가가 되도록 해주었다. 역내 최악의 전쟁 대상이 최고의 동맹 대상으로 변전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핵심 피해국이 조약에 불참함으로 인해 전쟁 배상과 보상 문제 역시 철저히 왜곡되었다. 그 유산은 지금까지 역내 질서 및 동북아인들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

원인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급속한 경제회복과 함께, 국제사회로의 복귀 역시 한국전쟁 때문이었음을 고려할 때 전후 일본의 경제와 안보를 정초한 기축 요인은 한국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체 동북아 지역을 다자주의와 집단안보기구가 부재한 세계 유일지역으로 만들고 말았다. 한국, 필리핀, 대만, 그리고 미국이 잠시 추구했던 역내 다자기구 구축 노력은 일본과 영국의 완강한 반대 속에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일 양자동맹으로 귀결되며 사산하였다. 탈냉전 시기까지 지속되는 동북아 다자주의·집단안보기구 결여는 미-일 동맹체제 구축, 일본 안보 확보와의 역사적 교환물이었던 것이다.

말을 바꾸면 전후 동북아에서 2차 세계대전의 유산·기억·질서는 단기간에 혁명적으로 전변되었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놓은 유산·기억·질서에 의해 대체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후 일본 사회를 규정해온 두 집단의식의 허위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냉전 초기의 ‘침략자·가해자 의식’이 후기로 오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대표되는) ‘희생자·패전 의식’으로 변모되어, 이제 전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후자만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의 영토, 교과서, 참배, 과거 사과, 배상의 문제는 이 알레고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침략과 희생의 이분법에 기초한 후자로의 변모는, 한국전쟁에 의해 이미 실제 내용이 증류된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교과서, 영토, 과거 악행 사과, 배상 문제 등에서 일본을 보편문명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이 허위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대 일본을 주조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은혜와 혜택의 의식’이 일본 국민정신의 하나로 추가되어야 한다. 인접 국가의 비극에 대해, 자국의 경제와 안보를 정초한 데 대한 ‘은혜와 혜택의 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일본의 보편문명국가로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논의의 핵심은 동아시아에서의 2차 세계대전의 유산·기억·질서가 아니라 한국전쟁의 그것들이어야 할 것이다. 즉 세계, 아시아, 일본에서의 일반적 담론구조인 ‘2차 세계대전의 유산과 기억’은 ‘한국전쟁의 유산과 기억’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것은 작게는 한-일 관계 개선과 동아시아 다자주의 건설을 위해, 크게는 동아시아 상호박애와 영구평화를 위해 반드시 점검되고 실현되어야 할 ‘현실’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두 번의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치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놓은 미국이 양대 강국(G2) 시대의 동아시아와 균형있게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첫 번째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일본과 싸웠고, 두 번째 아시아·태평양전쟁(한국전쟁)에서는 중국과 싸웠다. G2 체제(미·중)와 중첩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미·일) 60주년의 시점에, 지진 성금과 독도 문제가 맞물린 상황에 함께 21세기를 건설해야 할 일본의 오늘을 묻는 연유이다. 그를 위해 우리 자신은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주의로 나아갈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가? 21세기의 일본을 묻는 것은 곧 21세기의 세계, 동아시아, 한국을 묻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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