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취급 몰몬교 극복한 롬니의 질주
신앙보다 리더십 중시하는 성숙한 민도
1928년 미국 대선은 후보의 종교가 본격적으로 쟁점이 된 최초의 선거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앨 스미스 뉴욕 주지사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미 선거사상 가톨릭 신자가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이때 선거가 처음이었다. 그러자 허버트 후버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은 “가톨릭 대통령은 교황의 하수인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며 종교를 쟁점화했다. 후버는 “정교 분립이 헌법에 명문화된 상황에서 선출직 후보의 종교를 문제 삼는 것은 편협한 태도”라면서 거리를 뒀지만, 스미스는 종교 문제로 선거 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예상대로 결과는 후버의 압승으로 끝났다. 스미스는 프로테스탄트(신교도)가 많은 남부에서 대패했다. 종교 문제는 스미스의 주요 패인 중 하나로 분석됐다.
당시만 해도 미국민들은 ‘프로테스탄트인 백인 남성’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이 강했다. 언론도 이런 ‘조건’에서 벗어난 대선 후보들에 대해선 예외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일반인들의 ‘상식’을 따랐다. 존 F 케네디는 이런 ‘비상식의 상식’을 깨뜨린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 벽을 뛰어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60년 대선에 나선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신교도인 휴버트 험프리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케네디는 종교 문제를 ‘관용’의 문제로 바꾸는 전략을 구사했다. 현실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미국 사회의 비주류인 상황에서 종교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캐슬린 H 재미슨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저서인 ‘대통령 만들기’(Packaging the presidency)에서 “60년 당시 미국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20∼30%로 추정됐으나 프로테스탄트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유권자 집단이었다”면서 “하지만 일단 문제가 관용 또는 편협의 문제로 되자 험프리는 교살당해 버렸다”고 썼다. 국민들은 더 이상 가톨릭 대통령을 꺼리지 않게 됐다. 이런 기류를 읽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 진영은 케네디와의 본선 대결에서 종교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는 재임 기간 교황청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후 가톨릭은 미 정치인의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게 됐다.
케네디
롬니
2008년 대선에선 몰몬교가 도마에 올랐다. 몰몬교 신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몰몬교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전개됐다. 롬니의 증조부는 몰몬교도들이 19세기 신교도의 핍박을 피해 서부로 이동, 유타주에 정착할 당시 교인들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롬니는 몰몬교 재단의 브리검영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 선교 활동을 벌이고 매사추세츠주에서 교구장을 지낸 독실한 몰몬교도다. 롬니는 끝내 몰몬교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미국 내에서 몰몬교도는 약 600만명에 불과한 소수파다. 일부 신교도들은 몰몬교를 ‘이단’으로 간주한다. 롬니가 넘어야 할 벽은 케네디가 뛰어넘었던 벽보다 더 높은 것처럼 보였다.
그 롬니가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경선에서 연승을 기록하며 ‘대세론’을 굳혀가고 있다. 그 배경엔 과거보다 확대된 미국민의 관용 정신이 깔려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7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몰몬교 신앙은 대선 후보의 결격 사유가 아니라고 응답했다. 올 초 열린 공화당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복음주의 신교도들은 같은 신교도인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12%)나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11%)보다 롬니(15%)를 더 많이 지지했다. 신교도들의 이런 선택은 일부 복음주의 목사들이 “몰몬교는 이단이며 롬니도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복음주의 교인들은 그에게 투표해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2012년 미 대선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미국민들의 종교적 관용 정신이 또 한번 빛을 발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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